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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an Choi Mar 28. 2023

용서는 결국 나를 위한 것이다.

최근의 사적 복수 드라마를 보며

직장생활을 하며 크게 분노가 치민 적이 두 번 있었다. 


둘 다 사람 때문이었는데,  중 한 번은 그 사람에 대한 분노가 이직을 하게 중요한 이유로 작용했었고, 다른 한 번은 부서가 바뀌고 그 사람과 마주칠 일이 없어지면자연스럽게 분노의 불씨가 사그라들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그때 당시에는 분노를 참기 힘들어서 퇴근 후 집에 와서도 그 화시질 않았고, 심지어 잠을 자면서도 내가 사람을 해코지하는 꿈을 꿀 정도였다.


하지만 남을 미워하다가는 오히려 내가 더 상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를 위해 써야 , 내 인생의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분노의 대상인 그 사람에게만 쏟게 되면, 아까운 시간과 에너지가 내 인생에서 하찮은 존재일 뿐인 그 사람을 미워하는데 다 낭비되고 만다.


그 당시 나 역시도 그랬던 것 같다. 제 분에 못 이겨 나 자신을 못살게 굴었고, 상대방을 증오하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다 쓴 나머지, 정작 나를 돌아보고 발전시키는 일은 전혀 하지 못했었다.


신문기사에서 이런 뉴스를 본 기억이 난다. 사형제도가 거의 폐지되다시피 한 우리나라에서 살인범은 감옥에서 편하게 살다가 죽거나, 심지어 모범수로 풀려나는 경우도 있는데, 정작 피해자 가족은 살인범에 대한 분노로 본인을 상하게 하다가 스트레스로 인해 범인보다 먼저 죽는 경우가 많다는... 그런 슬픈 뉴스를 말이다.


최근 인기를 끄는 드라마의 대부분은 사적 복수를 다루고 있다. <더 글로리>, <모범택시> 등과 같은 드라마들이 바로 그것이다. 드라마이고 허구이기에 주인공들의 복수는 사이다같이 통쾌하고 시원하다. 현실에서는 그런 복수가 일어나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라면, 복수를 다짐하며 그 사람을 증오하는 마음으로 가득 찬 그 주인공은 이미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 분노로 가득 찬 마음이 자기 자신을 병들게 하고 약하게 만들어 버렸을 것이기에. 그렇지 않다면, 분노로 자기 자신을 활활 불태워 복수를 다짐했던 그 상대방보다 더 악해져 버리거나.


당연히 용서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나 역시도 어떤 사람에게 크나큰 화를 입고 매일같이 분노하고 증오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깊은 마음속 상처는 감히 이해하지도, 영원히 공감하지도 못할 것이다.


하지만 용서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용서는 상대방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기 위해서가 결코 아니다. 용서는 바로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용서해야 비로소 그 증오의 대상, 분노의 대상을 나에게서 떠나보낼 수 있다. 그리고 그 빈 곳을 다시 사랑과 행복의 시간들로 채워나갈 수 있게 된다.


지난 주일, 목사님 설교에 감명받아 끄적거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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