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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an Choi May 22. 2023

결혼과 연애기간, 그리고 overfitting

연애기간이 길면, 결혼생활도 과연 성공적일까?

얼마 전, 한 후배가 나에게 상담을 신청했다. 요지는 너무 결혼하고 싶은 상대방이 있는데 연애기간이 좀 짧아 망설여진다는 것이었다. 결혼이라는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너무 쉽게 내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함께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후배의 질문에, 불현듯 'overfitting'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머신러닝 분야에서는 overfitting이라는 이슈가 있다. 대부분의 머신러닝 알고리즘은 학습 데이터(training data)를 기반으로 모델을 만들고, 이 모델로 실제 데이터(test data)를 예측 또는 분류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방식인데, 이때 학습 데이터에 대해 과하게 학습이 이루어지면, 학습 데이터 이외의 다른 데이터에 대해서는 모델이 제대로 동작하지 못하게 된다. 바로 이 현상을 overfitting이라고 한다.


결국, 너무 학습 데이터에 길들여지면, 실제 상황에 제대로 대응을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연애기간이 길면 결혼생활도 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것은 연애기간이 길수록 상대방에 대해 더욱 많은 것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상대방과 함께 있을 때 벌어지는 다양한 상황에 대해 학습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혼과 연애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독립사건(independent event)'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렇기에 연애기간에 보이는 상대방의 모습에 과하게 학습이 이루어져서 그 행동패턴이 결혼생활에도 그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일 수 있다. 연애기간에 겪은 경험의 overfitting인 것.


연애기간에 보이는 상대방의 모습은 실제 모습이 아닌, 잘 짜인 가식의 모습일 수도 있고, 그 사람의 전체 모습이 아닐 수 있다. 오랜 기간 보아왔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전체 인생의 모든 행동패턴을 전부 파악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만들어진 모델의 성능(경험치)도 제각각이다. 어떤 사람은 다른 여러 이성과의 연애경험이 많아 쉽게 상대방의 행동패턴을 읽을 수 있는 반면, 연애경험이 적은 사람은 쉽게 상대방을 파악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경험상 결혼은 연애 때와는 다른, 함께 살면서 겪어야 하는 새로운 사건들이 더 많다. 그리고 둘 간의 문제가 아닌,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함께 얽히는 사건들도 존재한다. 거기에 부부 사이에 자녀까지 생기게 되면 그 문제는 고차방정식의 풀이만큼이나 높은 난이도가 될 가능성이 다. 결혼생활에는 연애기간 동안 학습하지 않았던 새롭고 다양한 사건들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연애기간이 길면 결혼생활에도 유사한 행동패턴이 나올 가능성이 높지만, 연애기간이 짧아도 결혼해서 잘 사는 사람이 있는 반면, 연애기간이 길어도 결혼해서 금방 이혼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본인이 확률이 높은 바로 그 범주에 속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본인의 사례는 여러 샘플 중 고작 1개뿐이니.


그래서 후배의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이것이었다. "연애기간이 길어도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어. 마음 가는 대로 하는 수밖에. 결혼도 랜덤게임이야." 다소 무책임한 답변이었지만, 결국 모든 것은 그 후배의 '운'이라는 결론이었다.


결혼의 성공 여부는 복불복이라는... 내 답변을 듣는 후배의 표정을 보니, 다시는 나에게 상담을 요청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허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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