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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an Choi Aug 14. 2023

악한 사람이 더 잘 나가는 이유

그리고, 선한 사람이 불행을 겪는 이유

세상에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어린 시절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던 문제들 중 하나는 왜 악한 사람이 더 잘 나가고, 선한 사람이 불행을 겪느냐는 것이었다.


분명 동화책에 적혀있는 내용으로 보나, 어른들의 말씀으로 보나, 분명 착한 일을 한 사람은 복을 받고 나쁜 일을 한 사람은 벌을 받는다고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그런 경우보다 악한 사람이 더 잘 나가는 경우를 더 많이 목격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오히려 이와 반대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어차피 착한 사람이 손해 보는 세상이라면, 답답하게 바보같이 살지 말고, 세상의 이치를 따르며, 남이 조금 피해를 보더라도 나에게 이득이 되는 행동을 먼저 하는 것이 더 옳은 행동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말이다.


지난주부터 구약성경의 <욥기>를 읽고, 교회에서 설교 말씀을 들으며, 어린 시절에 고민했던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조금씩 찾아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내 나름대로 어설프나마 찾아본 3가지 포인트를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보았다.



1. 인간의 판단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


성경은 <욥기>를 통해, 인과응보의 세계관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한다. 욥기에 등장하는 욥은 10명의 자녀와 함께 경건하게 살아가던, 동방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인해, 소유하고 있던 막대한 재산과 자녀들을 모두 잃게 되며, 본인도 피부병에 걸리는 등 큰 불행을 겪게 된다.


그러고 나서 찾아온 욥의 세 친구들은 이야기한다. 욥이 지금 불행을 겪고 있는 것은, 분명 욥이나 욥의 자식들이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사실 이러한 말은 세상적인 생각으로는 충분히 설명이 가능한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동안 선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일을 하면 벌을 받는다고 알고 있기 때문에.


하지만 욥은 당당하게 말한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다고. 그리고 끝까지 신을 원망하거나 신앙을 버리지 않고 버틴다.

"(욥기 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만약 욥의 친구들의 말이 전부 맞다면, 지금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선한 행동을 했던 결과로 인해 그런 혜택을 누리는 것이고, 불행하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크든 작든 죄를 저질렀기에 그에 대한 대가를 받고 있는 것이라고 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하지만 욥의 친구들의 설명에는 큰 오류가 있다. 그것은 그들의 논리로는 악한 사람이 잘 살고, 선한 사람이 불행한 이유에 대해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결국, <욥기>의 핵심은 인간의 시각에서는 하나님의 뜻과 이 세상의 규칙을 전부 이해할 수 없다는  있다.



2. 우연으로 가득 찬 인생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은 우연적인 요소들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인생에서 만나는 여러 사건들은 순수하게 임의의 사건으로 둘러싸인 랜덤 게임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렇게 본다면, 행복한 사건이나 불행한 사건 모두가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행동과 어떤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긴 어렵다. 어느 정도는 불확실성 속에 주어진 랜덤 한 사건의 결과물이라고 봐야 맞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앞서 설명이 되지 않는 악한 사람이 잘 살고, 선한 사람이 불행한 이유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오히려 과거부터 지금까지 인간에게 세뇌된 권선징악, 인과응보의 논리를 의심해 보는 것이 좀 더 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린 시절부터 세뇌된 권선징악과 인과응보의 논리를 걷어내고 냉정하게 눈을 씻고 본다면, 행복과 불행이라는 것이 선한 행동이나 악한 행동의 결과로 직접적으로 이어진다고 보긴 어렵기 때문이다.



3. 지금은 나쁜 일이 나중에는 좋은 일이 되기도 한다.


또한 현재의 행복이나 불행을 인생 전체의 결과로 단정 짓기는 어렵다. 지금의 나쁜 일이 나중에는 좋은 일이 되기도 하고, 때론 좋은 일이었지만 시간이 흘러 나쁜 일이 되기도 하는 법이니 말이다.


지금 남들보다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좀 더 많이 안다고 해서, 풍부한 경험들을 쌓았다고 해서, 그것이 과연 나중에도 좋을 것인가는 분명 생각해 볼 일이다.


그래서 늘 겸손해야 한다. 좋은 일은 영원히 갈 수 없기에. 그리고 쉽게 절망에 빠지는 것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슬픔도 영원하지는 않기에.


그렇게 본다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미래는 예측할 수 없는 것이기에, 단지 앞으로 남아있는 밝은 미래를 기대하며 일상을 탄탄하게 지켜나가는 이야말로 유일하게 가치 있는 행동이지 않을까.




내가 사회생활을 하며 알게 된 어르신이 한 분 계시다. 그분은 강남 쪽에 건물을 몇 채 보유한 소위 '알부자' 중 한 명이다. 그분에게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근무했던 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 아들의 취업을 조금 도와주며 어르신과 친해지게 되었는데, 최근 연락이 닿아, 다시 말씀을 들어보니 아들이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본인이 소유한 건물의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 소식을 전하시며, 아들이 더 큰 일을 하길 바랐는데, 믿을 구석을 만들어준 것이 오히려 그 아이의 앞날을 망친 것이 아닌가 후회가 되기도 하고, 쉽게 회사를 그만둔 것이 자기 탓인 것만 같아 안타깝다는 말씀을 하셨다. 자식에게 넉넉하고 편안한 삶을 지켜주고 싶었던 그분의 꿈이 의도와는 다르게 이루어진 것이다.


비단 이런 경우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이와 유사한 사례를 찾아보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욥기>에서도 끝까지 신앙을 버리지 않은 욥에게 결국 이전보다 더 많은 재산과 자손을 주셨듯이, 지금의 행복이나 불행이 앞으로의 행복이나 불행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아직도 여전히 완전한 해답을 찾지는 못했다. 아마 살아있는 동안 명확한 해답을 찾기는 어렵다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간의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에 몰두하며 그 '결과'만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 맡긴 채 나에게 예비하신 이 세상에서의 역할을 담담히 해나가는 데에 삶의 가치가 있다는 점이다.


선함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선함을 추구하는 행위 자체에서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것이지, 그 행위에 대한 대가를 기대하며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대가를 기대하는 것이 아닌 '과정'에서의 즐거움을 느끼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내면의 평화를 얻는 것. 그것이 선하게 사는 삶, 본연의 의미일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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