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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an Choi Nov 29. 2022

지하철 단상

서로 다른 배려의 농도

#지하철의_인간군상 


출퇴근길 지하철에서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관찰할 수 있다.


평소보다 조금 늦었던 어느 날, 나는 사람들로 꽉 찬 지하철 칸에 몸을 싣게 되었다. 그리고 탄 지 얼마 되지 않아 내 등에 몸을 기대어 중심을 잡으려 하는 사람을 만났다. 발 디딜 틈이 없으니 서로 조금씩 밀쳐대는 거야 넓은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다손 쳐도 남의 등에 자신의 몸무게를 의지하려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니 몹시도 당황스러웠다.


잠시 당황스러움을 가라앉히고 등에 힘을 살짝 빼서 내 등에 실린 그 사람의 체중을 덜어내 보았다. 그랬더니 다시 내 등을 찾아 가까이 다가오더니 또다시 내 등에 자신의 몸을 기대는 것이 아닌가. 다행히 내릴 때가 되어 등으로 그 사람을 슬쩍 밀친 후 지하철에서 내리면서 그 사람을 쳐다보았는데, 마스크를 쓰고 있어 정확치는 않았지만 왜 쳐다보냐는 표정으로 엷은 미소를 띠고 있었던 그 사람.


어느 날에는 듣고 싶지 않은 통화내용이 들릴 때도 있다. 새롭게 들어간 직장에서 상사에게 몹쓸 말을 듣고 퇴사하려고 했는데, 퇴사 이야기를 꺼냈더니 자신을 겁박해서 너무 무서웠다는 한 신입사원의 이야기, 오랜만에 아들 집에 다녀왔더니 며느리가 섭섭하게 대접해줘서 속상했다는 시어머니의 이야기, 전화로 여자친구와 남사스러운 닭살 행각을 벌이고 있는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어느 남자의 이야기. 때론 큰소리로 악다구니를 쓰며 누군가와 말다툼을 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배려의_농도 


각자가 느끼고 생각하는 배려의 기준과 농도는 서로 조금씩 다른 것 같다. 


내가 생각했던 배려의 수준이 있고, 상대방이 생각하는 배려의 수준이 있다. 배려는 때론 일방적이다. 나는 배려한다고 많은 것을 양보했지만 상대방은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거나(호의가 둘리가 되는 과정), 나는 별 게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상대방은 대단한 배려로 생각하여 자기의 배려를 알아주길 바랄 때(생색내기의 불편함)의 모습들이 그것이다.


무엇이든 내가 직접 해봐야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있다. 배려도 마찬가지다.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만이 배려의 의미를 이해하고 상대방의 배려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다.


이 글을 쓰며, 지하철에서의 '배려없음'을 불편하게만 느낄 것이 아니라 대가를 바라지 않는 배려를 내가 먼저 베푸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내가 베푼 작은 배려 하나로 누군가가 좀 더 편했다면 그것만으로도 배려의 역할은 충분하다. 그리고 남에게 받은 배려에는 당연히 충분한 감사의 표시를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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