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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an Choi Dec 05. 2022

이제 염색하지 않기로 했다.

40대, 흰 머리로 살아가기

몇 달 전부터 흰 머리를 염색하지 않고, 그대로 둔 채 지내보는 중이다.


30대 초반부터 스멀스멀 나오기 시작한 흰 머리(이제 새치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가 이제는 머리숱의 절반 이상을 뒤덮는 통에 그동안은 거의 3~4주 만에 한 번씩 염색을 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염색하지 않는다. 자연스러움을 즐기는 중이다.


염색하지 않기로 결심한 후, 처음 1~2달은 여기저기에 듬성듬성 흰 머리가 보여 지저분해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전체적으로 골고루 회색 톤이 되어 나름 자연스러워졌다. 한 동안은 흰 머리가 많이 나는 것이 몹시 속상한 적도 있었다. 매달 염색을 한다는 사실이, 내가 늙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서글펐다. 하지만 이제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흰_머리로_살아가려면_넘어야_할_산


한국 사회에서 흰 머리로 살아가려면 몇 가지 넘어야 할 산이 있다.


첫째, 부모님의 산이다. 당연히 모든 부모들은 아직도 자식이 어리게만 보일 것이다. 그런 자식이 흰 머리를 성성하게 드러내 놓고 다니면 좋아할 부모가 과연 몇이나 될까. 하지만 부모님에게도 현재의 내 모습을 일깨워드릴 필요도 있다. 내 자식도 이제 한 가정의 가장이자, 한 아이의 아버지이며, 40대를 담담히 살아내고 있는 아재임을. 이제는 부모님에게 종속된 내가 아니라, 하나의 독립된 개체임을 말이다.  


둘째, 직장 상사의 산이다. 흰 머리로 살아보겠다고 결심하고 염색하지 않고 2~3달 정도를 버텨보았다. 그랬더니 언제부터인가 윗 분들이 나의 흰 머리를 훑어보며 한 마디씩 툭툭 던지는 것이 아닌가. 나보고 반항하는거냐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하시는 분도 있었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윗사람 눈치, 아랫사람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40대쯤 되면 자기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이 반드시 필요하고, 십수 년 간의 업무 경험을 통해 어느 정도의 통찰력도 생긴다. 흰 머리 하나가 뭐가 그리 대수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직장 상사에게 흰 머리 유지하는 것 하나까지 눈치 봐야 한다면 참으로 서글픈 인생이다. 40대가 되면, 흰 머리 유지하는 것 정도쯤은 직장 상사에게 눈치 보지 않을 정도로 만만하게 보이지 않고, 업무에서도 자신감이 있어야 하며, 윗사람과의 신뢰 관계도 탄탄히 유지되어야 한다. 당연히 자기가 맡은 업무는 충실하게 잘 해낸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셋째, 자기 자신의 산이다. 흰 머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니... 머리가 왜 그래요?" 이 말을 여러 사람에게 수도 없이 들어야 한다. 그러면 앵무새같이 반복적으로 이유를 말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 초반에는 나도 몇 가지 이유를 준비해서 대답해주었지만, 지금은 "그냥 이렇게 살려고요."라거나 "이렇게 하니까 멋있지 않나요?"라고 되묻는다. 다른 사람의 따가운 시선을 이겨내고 자기 확신과 주관을 지켜나가야 흰 머리를 유지할 수 있다.



#흰_머리와_자기_긍정


20~30대에는 누가 나에 대해 안 좋은 평가를 내리거나 불편한 지적을 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그것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었다. "나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이렇다"라며 쏘아붙이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부정하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다. 그 사람이 바라보는 나의 모습이 내가 모르는 나의 모습일 수 있기에. 그리고 그 사람이 본 나의 모습이 진짜 나의 모습일 수도 있기에.

 

40대의 나에게 찾아온 흰 머리도 이제는 그 상태 그대로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의 모습을, 나의 흰 머리를 자연스럽게, 온전히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은 나의 모습에 만족하고 있는 중이다. 머리 결도 전에 비해 좋아졌다. 염색을 자주 할 때는 머리 결이 푸석하고 뻣뻣했었는데 지금은 실크처럼 부드러워졌다.


 

#Going_Grey를_위한_팁


다만, 흰 머리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해야 할 것이 있다.


첫째, 흰 머리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보색 샴푸를 써야 한다. 흰 머리는 기존의 검은 머리에 비해 윤기가 좀 덜하고 푸석푸석해 보이기도 한다. 때문에 일반 샴푸가 아니라, 보색 샴푸를 쓰는 것이 좋다. 보색 샴푸의 '보색'은 색깔을 보호해준다는 의미의 보색(保色)이 아니라, 정말 purple의 그 보라색을 의미한다. 보색 샴푸를 주기적으로 쓰면, 흰 머리가 밝고 빛나게 유지된다. 일반적으로 보색 샴푸는 염색한 머리를 유지하는 데 쓰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나처럼 흰 머리를 관리하고 싶은 사람에게도 유용하다. 특히 보색 샴푸는 흰 머리가 나기 시작하는 초반에 듬성듬성 보이는 머리카락의 노란 끼를 잡는데 매우 효과적이다.


둘째, 흰 머리가 특정 부위에만 나는 분들에게는 추천하지 않는다. 흰 머리는 골고루 나야 예쁘다. 만약 옆 머리에만 흰 머리가 있다거나 뒷 쪽에만 흰 머리가 나는 사람은 좀 더 기다리시라. 흰 머리가 전체 머리에 골고루 있어야 제대로 된 관리를 할 수 있다.  


셋째, 피부 관리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흰 머리가 나면 당연히 늙어 보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전보다 피부관리도 더 신경 써야 하고, 면도도 더 깔끔하게 해야 한다. 헤어스타일도 왁스나 포마드 같은 헤어 제품으로 깔끔하게 관리하는 것이 좋다. 흰 머리를 멋있게 유지하려면 당연히 준비해야 할 것들이다.


+ 현재 제 머리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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