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yan Choi Jun 12. 2024

쓸 만한 인간

박정민 저 | 상상출판

매번 경제학이나 경영학, 데이터, AI, 뇌과학, 자기계발 등 비슷비슷한 주제의 책들을 읽다가 이번엔 왠지 무겁지 않은 책을 읽고 싶었다. 그리고 그간 보던 책들에서 나오는 진지한 이야기들이 슬슬 지겨워질 때쯤 이 책 ≪쓸 만한 인간≫을 만났다.


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책이다. 배우 박정민의 책이다. 영화 <파수꾼>, <동주>, <사바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등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준 바로 그 배우 말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재기발랄'하다는 단어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재능이 많은 친구다. '에세이는 이렇게 쓰는 것'이라는 좋은 샘플을 보여주는 책이다. 생활 속에서 흔히 쓰는 구어체로 쓰여있으면서 잘 읽히고 재미까지 있다. 나도 이렇게 재기발랄한 문체로 글을 쓰고 싶지만, 난 16가지 MBTI 유형 중 소위 '노잼'이라고 불리는 ISTJ다. 생긴 대로 살아야 하나.

나중에 만나면 대화가 잘 통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책을 읽고 났더니, 내적 친밀감이 생겼나 보다. 맞다. 난 노잼이라 재밌고 밝은 사람 좋아한다. 뿐만 아니라, 뭔가  책에 나오는 노랫말이나 감성, 유머 코드 유독 잘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나처럼 80년대 생(난 82년생, 배우 박정민은 87년생)이더라.


재밌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구절들이 많다. 주말 하루는 충분히 맡겨볼 가치가 있는 좋은 책이다. 그리고 기분이 좋아질 필요가 있는 그 언젠가의 순간을 아껴두었다가 저자의 다음 책도 읽어보고 싶다.


나도 언젠간 이 책의 저자처럼 솔직담백한 글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그전엔 이 책의 제목처럼 '쓸 만한 인간'부터 되어야 할 테다. 책의 말이 좋았다. "어차피 끝내는 전부 잘될 테니 말이다." 그래, 될거다. 


(45~46p) '형님, 새해에는 조금이나마 복 드릴 수 있는 정민이가 되겠습니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복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 <새해 복> 中 -
(62p) '가만히 보면, 모두가 의외로 살아 있다.' 제목도 없는 이 한 문장의 시를 보면서 갑자기 많은 생각이 든다. 살고는 있구나. 굉장히 의외지만 다들 살아 있긴 하구나. 죽지 못해 살더라도 살아는 있구나. 꽤나 큰 메리트다. 살아 있다는 것 말이다. 밥을 먹을 수도 있고 잠을 잘 수도 꿈을 꿀 수도 있다. - <수첩> 中 -
(69p) 행복했으면 좋겠다.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으면 좋겠다. 꼭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찌질하다의 반대말이 뭔가. 특별하다? 잘 나간다? 머리에 젤 바르는 상남자 스타일? 아니, 찌질하다의 반대말은, 찌질했었다. 라고 할 수 있겠다. 모두, 행복하시라. - <찌질이> 中 -
(70p) "목이 마를 때 물을 생각하듯이, 자연스럽게 다가올 그때를 기다려. 충실히, 성실히, 절실히. 길게." 서른일곱 살의 박원상 선배님이 스무 살의 내게 해주셨던 말씀이다. 술 먹고 하신 말씀이라 본인은 기억 못 하시겠지만, 당시 그 말에 용기를 얻은 배우 지망생 박정민은 아직도 그 문장을 마음에 품고 지낸다. - <노력의 천재> 中 -
(79p) 대사가 참 비슷하다. "성우야, 행복하니? 우리들 중에 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놈은 너밖에 없잖아." 성우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술을 들이킨다. 애잔하다. 나도 언제 어디선가 저런 표정으로 한숨을 쉬어본 적이 있는 것도 같다. 그리고 말이다. 동네 술집에 들어가면 대부분 어른들이 다 저런 표정이다. 다들 나름대로 이겨내야 할 일들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다들 이겨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 <와이키키 브라더스> 中 -
(97p) "그 병이 정민 씨가 사는 데 있어서 나쁘지만은 않을 겁니다." 이러한 강박증세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다고 한다. 만약 그런 사람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당신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는 또 다른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솔직하게 누군가에게는 털어놓길 바란다. 혼자 갖고 있으면 곪는다. 뱉는 순간이 어렵지 뱉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랬다.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강하다고. 그리고 나도 생각보다 강한 사람이더라는 것이다. - <강박> 中 -
(259p)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이 위선은 아닐까 곱씹고 곱씹는다. 어떤 것들이 내 안에 퇴적돼서 이렇게 돼버린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 그 감정들을 누구나 볼 수 있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쏟아버리는 이 용기, 혹은 객기도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그저 어떠면 이 감정이 나만 겪는 건 아닐 거라는 일종의 희망에 기대서 지금 이렇게 '쓰고' 있는 걸까. (중략) 만약 이런 구질구질한 비관을 가진 이가 어딘가에 또 있다면, 여기서 나도 그러고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너만 그런 게 아니니까 네가 그렇게 특별한 비극을 겪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내게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라고 말해주는 건 20년 전 에메랄드 캐슬뿐이다. 그래, 우리는 알고 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는 사실을. - <불행> 中 -
매거진의 이전글 나쁜 감정을 삶의 무기로 바꾸는 기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