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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an Choi Jul 28. 2024

조선 직장인 열전

신동욱 저 | 국민출판사

만에 재밌는 책 하나를 읽었다. 이 책은 조선 시대의 왕을 CEO로, 우리가 잘 아는 조선 시대의 유명한 역사 속 대신들을 주식회사 조선의 직장인들로 묘사하며, 선조들의 직장인으로서의 삶에 대해, 그리고 그 속에서의 대인관계와 처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잘 와닿지 않는 외국의 사례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선조들도 조직에서 힘든 사회생활을 해야 했던, 비슷한 처지의 직장 선배였다는 점이 위로가 되는 책이다. 또한 역사 속 이야기들을 현대의 직장생활접목하여 풀어낸 저자의 글솜씨도 큰 재미 포인트다.


아등바등 매일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픈 직장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 책이 고맙다. 훌륭한 모습들 가득했던 위인전에서선조들의 모습 아니라, 좌절했지만 다시 일어섰던, 성공만 이어질 줄 알았지실패로 마감했던, 그들의 모습에서 나를 성찰할 수 있어서다.


이 책에는 총 17명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나는 그중에서도 상사와의 관계, 사내정치, 자기계발에 대한 시사점이 담겨 있었던 정도전과 하륜, 황희, 신숙주, 이황의 이야기에 특별한 관심이 갔다. 아마도 내가 가장 고민하고 있는 주제들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신권 중심 정치라는 자신의 신념을 달성하기 위해 상사인 이성계를 선택하고 이용했으며 결국 왕으로 만드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웠던 정도전. 조선의 설계자로서 매번 실력을 증명해 보였으나, 자신만의 성장과 그것을 위한 리더의 이용에만 관심을 두었던 탓에 결국 두 번째 정권 창출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저자는 상사는 부하 직원의 실력을 이용하고 부하 직원은 상사의 지위를 이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두 번째 리더로 이방석을 선택한 정도전의 실패를 덧붙여 언급하며 후배, 동료들과의 상생 없이 자신의 성장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필패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성계의 와병 이후, 힘없이 몰락했던 정도전처럼.


(31p) 정도전은 이성계의 명성과 지위를 이용하였고, 이성계는 정도전의 지략과 실력을 이용하여 두 사람은 함께 성장하고 성공하였다. 하지만 두 번째 리더로 이방석을 선택한 전략은 실패하고 만다. 팔로워로서 자신의 성장에만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중략) 정도전이 결국 죽음이라는 실패를 맞이한 이유는 한 가지가 더 있다. 리더와의 관계에만 집중한 나머지 주변의 인심을 잃었다는 것이다. 잠재적인 경쟁자까지 무자비하게 숙청하면서 그를 적대시하는 세력을 양산하였다. 결국 이성계가 와병 중에 있어 그를 지켜주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정도전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허무하게 몰락해버리고 만다.


정도전과 달리, 하륜은 실력과 처세 능력을 동시에 갖춘 인물이었다. 한때 가족처럼 지낸 동료들에 대한  무자비한 잔혹한 숙청을 단행했던 정도전의 모습을 지켜본 하륜, 그리고 정도전의 견제와 괴롭힘에 시달리며 평생 빛을 보지 못할 것 같은 하륜이었지만 조용히 준비하며 자신만의 타이밍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이방원이라는 기회를 잡게 되었다. 또한 태종의 언어, 즉 상사언어를 정확히 눈치껏 이해하면서도 절대 선을 넘지 않는 탁월한 처세 덕분에 직장에서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숙청의 대상이 된 이숙번과 달리, 70세가 넘어서도 태종이 은퇴를 만류할 만큼 신임을 얻지 않았겠는가.


(51p) 하륜은 태종이 언어를 정확히 이해한 신하였다. 태종은 "왕위를 넘길게"라고 말했지만 사실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왕위는 털끝만큼도 건드리지 마"였다. 하륜은 신하의 본분을 지킨다는 마음이 있었기에 그 말의 진의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고 이숙번과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하륜이 서릿발 같은 태종의 치세에서도 오랫동안 평탄하게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인 셈이다. (중략) 예를 들어 상사가 "그 건은 언제 보고받을 수 있나?"라고 물어본다면 나의 보고 계획 일정이 궁금한 것이 아니다. 급하고 중요한 건이라 어떻게 되고 있는지 무척 궁금하니 빨리 보고하라는 뜻이다.


한편 황희 정승의 이야기도 재밌게 읽었다. 늘상 세종대왕이 가장 신임하는 오른팔이자 훌륭한 정승으로만 기억되는 황희이지만, 처음 섬긴 왕이었던 태종의 의중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상사와의 소통에 실패해 4년 동안 유배당했다는 이야기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황희는 그 이후 자신을 다시 불러준 세종과의 관계에서 철저히 상사의 의중을 헤아리려 노력하였다.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 출신보다 실력을 중요시하는 의중을 헤아려 장영실의 기용을 후원했으며, 내불당 건립을 추진한 세종의 뜻을 전하기 위해 이를 반대한 손자뻘 유생들을 84세의 나이에 일일이 찾아다녔던 것이다.


(71p) 혹시라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상사의 잘못을 지적하는 말을 한 적은 없는가? 그것은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태종이 황희의 조언을 왕권에 대한 위협으로 보았듯이 상사는 그 말의 잘잘못을 판단하기보다 자신의 지위가 공격받는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직언보다는 우회적으로 리더가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말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업무를 진행하고 상사에게 의견을 제시할 때 상사와의 올바른 소통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내가 아무리 일을 잘하고 옳은 의견을 이야기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일지 결정은 상사가 하는 것이다. 나의 성과를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상사와 주파수를 잘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신숙주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신숙주는 변절자의 이미지로 역사 속에서 기억되지만 책에서는 그를 '좋은' 사내정치의 달인으로 재평가하고 있다. 부정적 뉘앙스가 많은 사내정치에 대해 저자는 단언한다. 필요악이고 양면의 칼이지만 적절히 사용한다면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한 현실적 수단이라고.


저자는 신숙주를 이렇게 평가한다. 사내정치가 필요한 순간에 그것을 적절히 활용하였으며, 자신의 사리사욕과 권력욕에 매몰된 한명회와 달리, 동료들의 신뢰를 쌓는 것에 보다 더 노력했다는 것, 그에게 사내정치란 실력을 발휘하고 유능한 관료로서 인정받는 수단이었을 뿐이었다는 것이다.


(120p) 결국 신숙주는 영의정까지 오르며 잘 나가는 직장인으로 승승장구하다 천수를 누리고 죽었지만 성삼문은 세조에 의해 강제 폐위된 단종을 복위하려다 실패하여 지독한 고문 끝에 능지처참당한다. 이로써 후세를 신숙주를 변절의 대명사로 낙인찍었고, 성삼문은 충신의 대명사로 추앙하였다. 누가 역사의 승리자이고, 패배자인지 쉽사리 단정할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신숙주도 성삼문도 나름의 판단과 결정에 따라 스스로 옳다고 믿은 길을 용기 있게 걸어갔다는 점이다.


(128p) 사내정치가 있는 회사에서 나를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동료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다. 업무적으로나 사적으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가 성실하고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나를 신뢰하는 동료들이 있다면 그들은 나를 보호해 주는 든든한 보호막이 될 수 있다. 사내정치로 인해 누군가의 공격을 받더라도 그 동료의 도움을 얻을 수도 있다.


관직에 있으면서도 끊임없는 자기계발을 했던 이황의 이야기도 인상 깊었다. 이황은 관직에서도 충분한 역량을 발휘하면서도 끊임없이 꾸준하게 학문 연구에 힘썼다. 자기 일은 제대로 하면서도 자기계발을 같이 병행했고 그러다 결국 성리학의 대가로 인정받게 될 정도로 자신의 실력을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자기계발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점에 백번 공감한다. 최소한 나의 업무 영역에서만큼은 상사보다도 많이 알겠다는 각오로 공부해야 한다. 또한 꼭 업무와 관련된 것이 아니더라도 나의 관심사가 있다면 그것에 대해 스스로 발전시켜 보는 것도 필요하다.


(206p) 이황은 임금에게 은퇴 의사를 밝힘에 앞서서 왜 자신이 은퇴해야 하는지 스스로를 냉정하게 살펴보았다. 우리도 스스로에 대한 객관화 과정을 통해 강점과 약점을 분석해 보고 나의 진짜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회사가 나를 계속 채용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또 얼마나 오래 직장에서 나의 효용가치가 유지될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러한 객관적이고 냉정한 평가 아래 긴장감을 가지고 자기계발에 힘써야 한다.




책의 구성도 만족스러웠다. 다소 지루할 수도 있는 역사 이야기를 그대로 풀어놓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 사실의 언급 뒤에 그것 적용할 수 있는 직장생활의 지혜를 끄집어내면서, 챕터 마지막 부분의 3줄 요약으로 깔끔한 정리까지 해주는 부분이 특히 그랬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식회사 조선의 임원들의 모습을 통해, 상사와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것, 직장동료를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 평판 관리를 통해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차별화하기에 앞서 기본적인 업무 실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 빠른 성공보다 오래 지속가능한 직장생활이 더 중요하다는 것 등을 배우고 깨달을 수 있었다.


'조선'이라는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이어갔던 그들의 이야기는 내게 앞으로 남은 직장생활에서 어떻게 생존하고 처세해야 할지 원점에서 생각해 보게 만든다. 직장인이라면 여름휴가 때 꼭 한번 읽어보며 남은 직장생활에 대한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잡아보면 좋을 책이다.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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