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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정리하며

나의 과거를 마주하는 일

by Ryan Choi

대체공휴일이 낀 휴일을 맞이하여 책장 정리를 했다. 그간 사다 놓은 책들을 책장에 다 꽂지 못해, 사이사이 빈 공간에 이리저리 끼워놓거나 쌓아두곤 했었는데 언젠가 한번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책장 속에 꽂힌 책들을 하나씩 확인하고 정리하면서 나의 과거의 흔적을 마주하게 되었다. 오래된 책들 사이로 스며든 추억의 조각들이 다시 나와 조용히 내 기억의 문을 두드렸다.


그동안 직장생활하면서 주로 읽었던 책들은 대부분 실용서 위주였다. 경제, 경영 관련 서적이나 자기계발서, 아니면 데이터 분석이나 인공지능 분야의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런 실용서들 사이에, 철학 책과 한때 심취했던 문학 평론서들이 함께 있었다. 그땐 내게 큰 의미였지만 지금은 쓸모없어 보이는 그 책들을 손에 들고 버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버리려던 한 권의 책 앞표지에 적힌 선배의 글귀가 내 손을 멈추게 했다. 그 글귀 하나에 책은 다시 책장에 조심스럽게 꽂혔고, 나는 그 순간 대학 시절의 풍경을 떠올렸다.


"다른 책들은 모르겠는데, 이 책만큼은 나의 욕심을 마지막 순간까지도 부추긴다. 이 책이 너에게 행복한 글 읽기의 경험을 안겨주길 바란다. 2001년 10월 22일 선배 ㅇㅇㅇ"


김현의 ≪전체에 대한 통찰≫이라는 책 앞표지에 만년필로 꾹꾹 눌러쓴 선배의 글. 꿈으로 가득했던 순수했던 그 시절, 무한한 가능성을 믿었던 그 시간들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이 책뿐만이 아니다. 다른 한쪽 칸에는 CEO와 멋진 기업가를 꿈꾸며 읽었던 성공한 이들의 이야기들과 위대한 인물들의 삶을 담은 책들이 책장 가득 꽂혀 있었다. 유독 그런 책이 많았다.


그 책들 속에는 사회 초년생 시절의 열정과 기대, 온전히 펼쳐보지 못한 수많은 꿈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책을 정리하며 나는 그 시절의 나를 만났고, 부족했지만 순수했던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여러 책들에 메모한 서툰 손글씨와 책 사이에 끼워진 빛바랜 쪽지들은 나의 과거를 증언하고 있었다.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찼던 대학 시절과 사회 초년생 시절, 그 순수한 시간들을 마주하니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졌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그때의 방황과 고민, 꿈꾸던 시간들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어냈다. 실패한 듯했던 순간들, 포기했던 꿈들도 결국 나를 이루는 소중한 시간들이었음이 분명했다.


때로는 아쉬움으로, 때로는 향수로 가득한 그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내심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욱 값졌을 나의 여정이었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책장을 정리하며 나의 과거를 마주했다. 과거의 모든 꿈과 기억들이 오늘의 나를 섬세하게 빚어낸 소중한 여정이었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이제는 지금 이 순간의 나를 그대로 사랑하고 보듬으며 존중해 보련다.


먼 미래에 다시 찾아볼, 나의 빛나는 현재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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