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눌린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하려면
학창 시절에 나는 늘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다녔다. 책과 공책, 필통과 각종 학용품으로 가득 찬 가방은 어깨를 짓누르고 등을 구부리게 했다. 그날 그 책들을 다 공부하지도 않는데 그때는 왠지 모를 불안감과 압박에 교과서와 참고서, 문제집을 한가득 짊어지고 다녔던 것이다.
그때의 그 무거움은 단순히 물리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완벽하게 준비되어야 한다는 강박, 모든 것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불안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공부하지도 않을 책들을 잔뜩 짊어지고 다니며 나의 불안감과 부담감,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해소해보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우연히 학원에서 만난 친구 한 명은 놀랍도록 가벼운 짐을 지고 다녔다. 문제집 한 권, 샤프 한 자루 정도가 가방 속에 있는 전부였다. 처음에는 공부를 하러 온 건지 놀러 온 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한번 놀라게 되었다. 그 친구가 그 학교에서 전교 1등이었다는 사실을 듣고서.
세월이 흐르며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진정한 효율성은 많은 것을 갖추는 데 있지 않고, 필요한 것만을 정확히 아는 데 있다는 것을. 무거운 가방은 준비된 상태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결정하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마음과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하는 혼란의 상징이었다는 사실을.
가벼움에는 자유가 있다. 그리고 꼭 필요한 것만 갖추는 사람은 본질에 집중할 수 있다. 불필요한 짐을 관리하는 데 낭비되지 않고 창의적인 생각과 문제 해결에 온전히 투입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 친구가 단 한 자루의 펜으로도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의 무거운 가방은 내 불안과 공허함을 채우려는 시도였다. 모든 상황에 대비하고 싶었던 마음, 어떤 질문에도 답할 준비가 되어 있기를 바랐던 욕망이 그 무게를 만들어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무거운 가방은 내 어깨뿐만 아니라 생각의 날개도 짓눌렀던 것이다.
어른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일과 일상에서의 진정한 효율성은 힘을 빼고 편안해질 때 찾아온다는 것을. 그래서 무엇이 정말 중요한지 알고, 나머지는 과감히 내려놓는 용기가 필요하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하려는 강박에서 벗어나, 필요한 것에만 집중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이제 나는 가벼움의 철학을 실천하려 노력 중이다. 물리적인 짐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짐도 줄이면서 힘을 빼고 편안해야 일도 일상의 삶도 잘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불필요한 걱정, 과도한 준비, 완벽주의의 무게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진정한 창의성과 생산성이 피어난다는 사실을 매일 배우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삶의 가장 큰 역설 중 하나는 '덜 갖춤으로써 더 많이 얻는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엇이든 손에 쥐고 다 가지려고 애쓰기보다, 정말 중요한 것만을 남기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를 통해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가벼움을 얻고, 그 가벼움이 우리를 더 멀리 더 높이 날게 하는 것이다.
매일 아침 자문한다. '오늘 정말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질문은 단지 가방 속 물건들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짊어지고 다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오늘도 매 순간 이 질문과 답변을 통해 더 가벼운 삶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