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규 저 | 쌤앤파커스
한 분야에서 롱런하는 사람들의 비결을 알고 싶었다. 어떤 분야든 오랜 기간 좋은 평판을 듣는 사람은 분명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잠깐은 남들을 속일 수 있지만, 긴 시간을 본인의 진실된 모습을 숨긴 채 살아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매력적이다. TV에서나 볼 수 있는 이경규 님의 평소 생각들을 정제된 글로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름 고급 정보인 것이다. 책 속의 몇몇 구절들을 읽으며 이경규 님이 오랫동안 활동하면서도 후배들의 존경을 받아왔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14p) "가끔, 사는 것이 농담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것도 아주 완벽한 농담. 어떤 일에 한없이 마음을 졸이다가도 지나고서 보면 허허 웃음이 나온다. 웃으면서 삶을 끝낼 수 있다면 우리 모두 인생을 무사히 농담으로 그려내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모두가 각자 인생의 희극 배우들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이 글에서 삶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한다. 희극 배우는 비단 이경규 님만이 아니라는 것. 이 책을 읽는 독자 모두가 결국은 각자의 인생에서 희극 배우라는 것. 완벽한 농담과 웃음으로 본인의 인생을 그려내며 그렇게 살아간다면 그 인생은 즐겁지 않겠는가.
(36p) "고독은 언젠가 나를 지키는 방패가 되어주고, 긴장은 실수를 막는 방어막이 되어줄 것이다. 기회는 혼자 있는 시간에 찾아온다. 그렇기에 혼자 사색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싶을수록 침묵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의 공황장애 발작 경험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늘 긴장해 있었던 본인의 삶에 대해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항상 주변에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구절을 읽으며 이 분의 내공은 오히려 저런 고독과 사색의 시간에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62p) "일본 유학 1년을 빼고는 40여 년간 단 한 주도 녹화를 쉰 적이 없다. 아파도 주사를 맞고 촬영에 들어갔고, 다치면 방송에 지장이 있으니까 위험한 운동도 피했다. 술도 조심했다. (중략) 실수하면 누구에게라도 바로 사과했다. 까불지 않았다. 그게 40년을 버틴 비결이다."
수많은 반짝 스타들이 스쳐갔다. 하지만 결국 예능 분야에서 오래 살아남는 사람들은 '성실함'으로 무장된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하게도 모든 분야에서 필요한 덕목이다. 긴 세월 동안 단 한 주도 쉰 적 없이 꾸준히 활동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94p) "선풍기 바람은 어디서 왔는지 아니까 덜 시원하고, 자연 바람은 어디서 왔는지 모르니까 더 시원한 거야. 인생도 마찬가지야. 어디서 왔는지 모르니까 아름다운 거야.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다 알면 얼마나 재미없겠어."
저자는 불확실함이야말로 인생을 아름답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말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새로운 도전은 성장에 필수적이다. 아마도 저자는 그 불확실성 속에서 새롭게 도전을 했고 그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을 극복했기에 지금의 위치에 올랐을 것이다.
(140p) "방송과 영화, 두 개의 기둥이 내 인생을 든든하게 받쳐준다. 하나가 무너지더라도 다른 하나가 버팀목이 되어 준다. 우리 인생에는 본캐 외에 부캐도 필요하다. 그게 삶의 동력이 된다. 나 역시 방송국 문을 두드리면서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이중생활을 계속해왔다. 힘들지만, 그게 나를 버티게 했다."
어느 예능에 나와, "코미디는 내 직업, 영화는 내 꿈"이라고 말했던 이경규 님. 나 역시도 여러 부캐들을 만들기 위해 계속 노력 중이다. 이 브런치스토리 작가도 내 소중한 부캐 중 하나이다. 때론 힘들고 지치는 일상 속에서 글쓰기는 내게 큰 버팀목이 된다.
(204p) "찾다가 끝나는 것이 삶이다. (중략) 수천 억분의 1의 존재가, 수억 년의 시간 속 찰나를 살다가는 존재가 무슨 대단한 의미를 찾으려 하나. 어쩌면 그게 답일지도 모른다. 모른다는 답. 삶의 본질이 뭐냐고? 모르는 게 본질이다. 그래서 계속 찾는다. 찾다가 끝난다. 그게 삶이다."
세상 속 여러 사건들의 원인은 알아낼 수 없는 것이 더 많다. 그리고 이 내용은 성경의 욥기와도 맞닿아있다. 욥의 친구들은 '인과응보'라는 것으로 욥의 고난을 설명했지만, 결국 그 누구도 하나님의 크고 깊은 뜻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은 신의 영역이었기에.
그렇기에 나의 존재 이유를 찾기 위해 방황하기보다는 일상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더 낫다. '삶의 본질은 모르는 게 본질이고, 계속 찾다가 끝나는 것이 바로 삶'이라는 이 문구를 읽으며 본인의 내면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저자의 모습을 떠올렸다.
(213p) "많은 분들이 이야기합니다. 박수칠 때 떠나라. 박수칠 때 왜 떠납니까? 한 사람이라도 박수를 안 칠 때까지, 그때까지 활동하겠습니다."
이 말은 단순히 인기를 위해서가 아닌, 자신의 일에 대한 진정한 사랑과 관객에 대한 존중을 드러낸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일반적인 조언을 거부하고, 마지막까지 무대에 서겠다는 그의 다짐은 40년 이상 방송계에서 살아남은 그의 장수 비결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며 어떤 분야에서든,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진심과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기억했다. 그래서 이 책은 그가 단순한 '예능인'이 아닌, 자신의 일에 온 마음을 다하려는 진정한 '프로페셔널'임을 증명하는 선언문과도 같다.
코미디언 이경규 님의 에세이집이다. 평소에 이경규 님처럼 평생 현역으로 진실되게 살아가길 원했다면, 이 책을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예능 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될 수 있는 깊은 통찰을 책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