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엽 저 | 유노북스
지난 주말, 책 제목에 이끌려 동네 도서관에서 읽은 책이다. 사십 대의 중반을 지나고 있는 내게 마흔과 오십이라는 단어는 꽤나 민감하게 느껴진다. 이 책의 서문에도 있듯이, 내 나이는 이제 인생의 중간쯤에 서서 지금껏 잘 살아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자문해 볼 시기인 것이다.
저자는 20여 년을 삼성전자에서 일하다가 직장을 그만두고 야생으로 나온 뒤, 혼란하고 갈피를 잡기 어려웠던 시기에 마음을 붙잡기 위해 ≪논어≫를 읽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논어≫ 관련 책 100여 권을 읽고 베껴 쓰고 정리하면서 삶의 기준이 바로 세워지고 인생이 바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 책은 ≪논어≫의 여러 내용 중에서도 저자가 뽑은 30개의 어구를 기초로, 공자의 가르침과 그것을 통해 깨닫게 된 삶의 진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나 역시도 남은 직장생활과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만의 단단한 삶의 기준도 만들어 보고 싶어졌다.
이 책에서 읽은 몇 가지 인상 깊은 구절을 적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68~70p) 불환무위(不患無位) - 상대방이 아니라 자기를 걱정하라. / <학이> 16장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남을 알지 못함을 걱정하라. (중략) 상사가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상사를 잘 모름을 걱정해야 비로소 문제의 실마리를 풀 수 있습니다. 팀원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팀원을 잘 모름을 걱정해야 비로소 문제가 풀립니다. 아내가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아내를 잘 모름을 걱정해야 평화가 찾아옵니다. 아이가 나를 잘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아이를 잘 모름을 걱정해야 비로소 문제가 해결됩니다."
직장생활에서는 나와 맞지 않는 상사나 팀원에 대한 불만이 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배우자나 아이에게 나의 수고와 노력을 인정받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논어≫는 말한다. 그럴 때마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기보다 내가 남을 더 알지 못함을 걱정하라는 것.
(76~84p) 학이불사(學而不思) - 배우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배워야 한다. / <양화> 8장
"첫 번째, 인을 좋아하되,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어리석어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 지혜를 좋아하되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방탕해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세 번째, 믿음을 좋아하되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자신을 해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네 번째, 곧기를 좋아하되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가혹해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섯 번째, 용기를 좋아하되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난폭해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섯 번째, 굳셈을 좋아하되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거만해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섯 가지 내용 중에서도 특히 나는 세 번째 내용에 눈길이 갔다. 지나치게 스스로를 믿게 되면 내가 잘못된 길에 빠지더라도 그것을 인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기 수양을 통해 자기 자신을 단속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 분명하다.
(85~89p) 유공유문(唯恐有聞) -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가? / <위정> 17장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정 아는 것이다. (중략) 성격이 거칠고 충동적인 제자로 알려진 자로지만 그의 인품과 덕성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습니다. 실행과 실천을 하지도 못하면서 스승의 가르침을 계속 받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많이 듣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많이 읽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누구에게 듣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언제 듣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얼마나 듣든, 읽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어떤 마음으로 듣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249~251p) 근자열(近者悅) -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라. / <자로> 16장
"누구나 세상의 중심은 나 자신이기에 내가 기쁘면 내 주변도 밝아집니다. 내가 우울하면 내 주변도 어두워집니다. 그러니 내가 제외되면 세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나를 기쁘게 만드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기쁘게 해 주거나 내가 나를 기쁘게 하는 방법입니다. (중략) 나를 기쁘게 하는 방법은 내가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기쁨은 그가 멈추면 나도 멈추어야 합니다. 그러니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내가 꽃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만들어 준 꽃이 아니라 스스로 피어나는 꽃이어야 합니다."
(265~271p) 요산요수(樂山樂水) - 인생을 잡아 주는 두 개의 축 / <옹야> 21장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자는 물을 좋아하고 인자는 산을 좋아한다. 지자는 동적이고 인자는 정적이다. 저자는 즐겁게 살고 인자는 오래 산다. (중략) 직장생활도 이와 비슷합니다. 직장 생활의 전반전은 지자의 삶이 더 어울립니다. 빠른 변화에 따른 학습과 함께 활동적으로 사원, 대리, 과장 시절을 보내야 실력과 함께 강점을 갖춰서 조직에서 더 인정받는 사람이 됩니다. 직장생활의 후반전은 인자의 삶이 더 어울립니다. 산 같은 포용의 마음으로 직원들을 감싸 주고 사랑으로 이끌어 주면 조직에서의 장기근속은 당연한 결과가 될 것입니다."
위에서 인용한 부분처럼, 조언은 결국 듣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는 것이니 내가 어떤 마음으로 듣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라는 말, 가까이 있는 사람 중 가장 소중한 사람인 바로 자기 자신을 기쁘게 만들며 살아가야 한다는 말, 직장생활의 후반전은 '지자'보다 '인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들도 기억에 남았다.
책을 다 읽고 났더니 제목이 어색하게 느껴졌던 이유를 알았다. '마흔과 오십 사이'가 아니라 '마흔과 쉰 사이'로 해야 자연스러운 표현일 텐데, 왜 이렇게 제목을 지었던 것일까? 그건 요즘 '쉰'이라는 말을 잘 안 쓰기도 하지만, 왠지 그 어감의 부정적 의미 때문일 것이리라 추측해 본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느낀 것은 결국 모든 변화와 성장의 출발점이 바로 '나 자신'에 있다는 점이었다. 저자가 ≪논어≫를 통해 삶의 기준을 세웠듯이, 나 역시 지금이야말로 외부의 인정이나 평가에 휘둘리지 않는 나만의 단단한 내적 기준을 만들어야 할 때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결국 모든 것은 내가 잘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