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하지만 만만하지 않습니다

정문정 저 | 문학동네

by Ryan Choi
(14p) "제가 알게 된 말하기와 글쓰기 간의 차이를 썼고, 이 차이를 활용해 어떻게 하면 자기표현을 부드러우면서도 명확하게 할 수 있을지 정리했습니다. 말하기 기술을 제대로 연마하면 좀 더 따스한 글을 쓸 수 있고, 글쓰기 기술을 제대로 연마하면 논리가 촘촘한 말하기를 할 수 있습니다. (중략) 우리는 부드러우면서도 정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명확하면서도 날카롭지 않게 말할 수 있습니다. 다정하지만 만만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신을 선명하고도 품위 있게 표현하고 싶은 분에게 이 책이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책 앞부분에 쓰여있는 이 글에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대부분의 이유가 담겨있다. 최근 나의 고민 중 하나는 어떻게 하면 말을 좀 더 부드럽고 너그럽게 하면서도 내 의도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마지막 챕터에 있는 '분노는 우아하게, 거절은 단호하게'라는 부분의 내용이 궁금하기도 했다.


정확하게 말하려다 보면 자꾸 뾰족해진다. 친절하게 말하려다 보면 메시지가 모호해진다. 그런데 우아하게 분노를 할 수 있다니, 그런 방법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실천하고 싶었다. 예의가 없거나 무식한 상대방에게도 그들을 배려하며 말하면서 불편한 진실을 명확히 전달할 수 있다면 너무나도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40대가 되고 나서는 예전보다 얼굴이 두꺼워져서 말도 곧잘 하게 되었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말보다는 글이 편한 사람이다. 글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 좀 더 생각을 정돈하여 전달할 수 있어 더 좋다. 그리고 그런 측면에서 말하기와 글쓰기의 차이에 대해 구분 짓고 상세하게 설명해 준 저자의 글에 공감하게 되었다.


(20p) "글쓰기의 중요한 한 태도 중 하나는 확신하지 않는 것입니다. 에세이 같은 글은 고민에 천착한 과정과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이해해 보고자 노력한 흔적을 섬세하게 표현할수록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선언하듯 단호하게 쓰면 읽는 이가 부담스럽게 느낄 수 있죠. (중략) 반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강의를 할 때는 주제의식이 명확해야 합니다. 청중들의 집중력은 그리 강하지 않아서 강사의 이야기를 더 들을지 말지가 초반 오 분 내로 결정이 납니다."


독자와 청자의 입장에서 글쓰기와 말하기의 차이점을 언급한 부분이다. 저자는 이야기한다. 글쓰기와 말하기는 각기 다른 에너지가 사용된다고. 사실 글과 말은 그 성격과 쓰임새, 지향점이 너무나도 다르다. 그래서 그것의 대상이 되는 독자와 청자를 서로 다르게 배려해야 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인 것이다.


(26p) "사유가 촘촘하게 이어지도록 글을 쓴다면 접속사가 필요 없다는 것, '부사'로 감정이나 상태를 강조하는 대신 '묘사'로 보여주라는 것이 글쓰기 작법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침입니다. 반면 말하기에서는 "너무너무 좋아"처럼 부사를 많이 쓰면 감정이 풍부해 보일 수 있고, 접속사를 잘 활용하면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지요. 저는 이 같은 차이가 말과 글이 각각 무엇을 지향하는지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글을 쓸 때 접속사를 남발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는 자주 들어보긴 했었다. 하지만 말하기에서는 오히려 접속사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이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질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글쓰기는 섬세한 묘사가 필요한 반면, 말하기는 부사를 사용하여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이다.


저자는 말하기와 글쓰기를 키워드로 설명한다. 먼저 말하기에서는 '공감과 배려'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듣는 사람이 어디까지 이해했는지 체크하며 더 친절한 표현을 찾도록 애써야 한다는 것. 반면, 글쓰기에서는 '논리와 정리'를 강조한다. 논리 정연하고 매끄럽게 정돈된 세심한 표현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67p) "책마다 반드시 들어가 있는 사람들의 소변 주머니를 확인하면서 저는 그 어떤 이의 눈부심도 보이는 대로만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잘되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그 성취 뒤에 얼마나 많은 좌절과 고생이 있었을까 싶고, 외모가 아름다운 사람을 보면 그로 인해 가졌을 기회도 물론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가 겪었을 오해 같은 것이 그려지는 듯합니다. (중략) 까마득해 보이는 사람일수록 한 발 잘못 디디는 순간 낭떠러지로 떨어질지도 모를 아슬아슬함을 안고 산다는 걸 끝내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소변 주머니'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소변 주머니'는 저마다의 실패담, 콤플렉스, 트라우마를 상징하는 단어다. 타인의 마음들이 너무도 궁금했던 저자는 책을 통해 그 비밀을 알게 되었고, 아무리 잘나고 밝은 사람일지라도 그들의 삶 속에 상상조차 못한 어둠과 불안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92p) "상대에게서 좋은 특성을 알아보고, 함께 이야기할 공통점을 발굴하고 지적할 점을 찾아낼 에너지로 칭찬할 거리를 꺼내어 언급해 주는 다정함이 관계를 꾸준하게 이어가게 합니다. 우리는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약간의 거짓말을 연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때의 거짓말은 상대를 속이는 말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꼭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다 말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지요. 비난하는 말하기, 지적하는 말하기에서 벗어나 친절하게 말하는 연습을 시작해야 합니다."


옳음과 친절함 중에서는 친절함을 선택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내 마음을 찔렀다. 지금껏 나는 친절함 보다는 옳음을 선택한 경우가 더 많았으니까. 저자는 솔직히 말해버리고 싶다는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고 말한다. "친절해야 한다. 네가 만나는 사람들 모두 힘겨운 싸움을 하는 중이니까."라는 대사를 인용하며.


공감과 위로에 대한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직간접적으로 자신이 경험한 것에만 의존하다 보면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상황 위주로만 타인을 판단하게 된다는 것, 진정한 위로에 필요한 것은 대단하고 디테일한 표현에 있지 않고 얼마나 집중해서 듣는지, 그 사람에 와닿기 위한 간절한 마음에 있다는 것.


(141p) "... '나는 이럴 때 이렇게 힘들어요.'라는 자기 연민의 일기에 '혹시 당신도 이럴 때, 이렇게 힘들지 않나요?' 하고 주변을 돌아보는 다정함이 담길 때, 그 이야기는 비로소 보편적인 에세이가 될 수 있습니다. (중략) 일기의 세계에서 충분히 자기를 탐구한 후 에세이의 세계로 넘어가 보길 권합니다."
(143p) "특별한 경험을 해서 특별한 에세이를 쓰는 게 아니고 평범한 경험에서도 특별함을 뽑아내는 사람이 작가입니다."


일기와 에세이를 비교한 글에서 '평범함'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기도 했다. 저자 덕분에 글쓰기에서는 평범함이 콤플렉스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독자들에게 설득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장점으로 발휘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일기에서 에세이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공감과 다정함이 필요함도 알았다.


내가 가장 클라이맥스로 여기는 챕터는 바로 즉각적인 분노 대신 우아하게 요구하는 방법이 담긴 마지막 챕터이다. 저자는 본인의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꺼내어 이야기하며 불편한 것을 정확히 말하고, 원하는 것을 우아하게 알리는 일이 얼마나 어른스러운 행동인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저자가 제안하는 방식은 바로 '비폭력 대화' 방식이다. 상대방이 느낄 불편함이나 부정적인 요소를 최대한 제거하고 정확하게 원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요구하고,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으면서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대응은 차분하게 하는 방법. 저자의 조언들 하나하나가 모두 쓸모가 있었다.


실제 삶에 적용하기 좋을 뿐만 아니라, 최근의 나에게 꼭 필요한 내용들이기도 했다. 객관적으로 상황을 들여다보고 상대방에게 표현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는 구체적으로 요청하는 것, 나와 상대방의 존엄을 지키면서도 우아하게 원하는 바를 이야기하는 것은 교양인이라면 누구나 배우고 익혀야 하는 것이기에.


이 책을 읽으며 좋았던 점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가슴에 와닿는 내용이 나와 줄을 긋거나 표시를 하고 싶어질 때, 저자가 마치 그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이, 그 부분에 하이라이트 표시를 해둔 점이었다. 독자를 향한 친절하고 세심한 저자의 마음과 출판사의 배려가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저자가 묘사한 몇몇 사례들을 읽으며 내가 경험했던 안 좋은 기억들과 그것에 연관된 사람들이 함께 떠올라 힘들기도 했다. 하지만 책 전체에서 느껴지는 저자의 섬세한 감정선과 사람과 세상에 대한 배려를 느끼며 오랜만에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책을 덮으며, 나도 '나와 타인을 향한 다정함'을 배우고 싶어졌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인공지능은 생각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