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하고 싶은 마음 vs. 착한 사람이고 싶은 마음
대화 중 상대의 잘못된 말이나 행동을 목격할 때면, 마음속에서 불쑥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하나하나 다 지적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지만, 동시에 착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이 그 충동을 억누른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진정성과 표면적 친절함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정직한 피드백을 주고 싶은 마음과 관계를 해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충돌하는 그 지점에서, 후자를 선택하며 스스로를 속이곤 한다.
모든 것을 다 지적하고 바로 잡으려는 행동은 겉보기에는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대방의 성장 기회를 빼앗게 된다.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고 정답을 제시해 버리면, 그들은 자신만의 생각을 해볼 기회를 잃는다. 진정한 배려는 침묵하며 기다리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는 것 역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미묘한 경계선을 찾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모든 것을 지적하려 들거나, 반대로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려 할 때, 사람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긴다. 과도한 지적은 상대방을 위축시키고 방어적으로 만들며, 지나친 침묵은 진정성 없는 관계로 이어진다. 쓴소리를 피하려 하는 사람들은 갈등을 피하려다가 오히려 더 큰 거리감을 만든다. 착한 사람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평화를 유지하려다가 소통의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착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때론 우리를 비겁하게 만든다. 진실을 말하는 용기보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 것을 우선시하게 되면, 진정성을 잃고 가면을 쓴 채 살아가게 된다. 그래서 착한 사람 콤플렉스는 상대방에게도, 나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진정한 친절은 상대방이 듣기 좋아할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말을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에 있는 것이다.
착한 모습만 보이고 싶은 마음 뒤에는 종종 비겁한 감정이 숨어있다. 갈등을 피하고 싶고, 미움받기 싫고, 편안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욕구가 진실을 말할 용기를 앗아간다. 이런 비겁한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배려'라는 이름으로 포장할 때는 더 큰 문제가 된다. 그것은 결국 거짓된 평화를 위해 불편한 진실을 희생하는 선택을 반복하게 되는 위선적인 행동이다.
이런 갈등은 직장에서도, 집에서 자식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동료의 잘못된 업무 처리를 지적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아이가 실수했을 때 바로 잡아줄지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기다릴지 망설인다. 상사에게 의견을 제시하고 싶지만 평가가 걱정되어 침묵하고, 자녀에게 쓴소리를 해야 하지만 좋은 부모로 보이고 싶어 망설인다. 관계의 성격이 다를 뿐, 근본적인 갈등의 구조는 동일하다.
지적하고 싶은 마음과 착한 모습만 보이고 싶은 비겁한 감정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것은 인생 전반에 걸친 과제다. 나도 매번 같은 상황에서 똑같이 망설이고, 후회하고, 다음엔 다르게 하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또다시 비슷한 선택을 반복한다. 비겁함을 인정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데, 관계에서 진정성을 잃지 않는 것은 더욱 어렵다. 완벽한 답은 없겠지만, 끊임없이 고민하며 그래도 조금이나마 좋은 답을 찾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