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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분실과 지옥의 시작

"맨날 자기계발 운운하더니 꼴좋다."

by Ryan Choi

휴대폰을 잃어버리는 것이 이렇게 큰 파장을 일으킬 줄 몰랐다. 술에 취해 어디선가 떨어뜨린 그 작은 기계 하나가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연락처, 사진, 메모, 일정... 그 안에 담긴 내 삶의 조각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다행스럽게도 백업은 어느 정도 되어 있었다.) 하지만 진짜 지옥은 그 순간 드러난 내 모습을 마주하는 것이었다. 휴대폰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나의 민낯을 제대로 마주하게 된 것이다.


"맨날 자기계발 운운하더니 꼴좋다." 와이프의 말이 가슴에 비수처럼 박혔다. 평소 자기계발서를 읽고, 운동을 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던 내가 술에 취해 휴대폰 하나 제대로 간수하지 못했다니. 그 순간 내가 얼마나 허울뿐인 사람이었는지 깨달았다. 말로는 늘 자기계발과 성장을 외치며 그렇게 스스로를 믿어 왔지만, 사실은 기본적인 자기 관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모순된 존재였던 것이다.


어디선가 보았던 말, "술이 인간을 망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그 자체로 망가져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줄 뿐이다."라는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술을 핑계로 삼고 싶었지만, 결국 술은 내 안에 이미 있던 무책임함과 나태함을 드러냈을 뿐이었다. 평소에 소홀히 하고,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던 건강과 술자리 습관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술은 단지 그 모든 것을 표면 위로 끌어올린 촉매제였을 뿐이다.


그동안 내가 추구했던 자기계발이 얼마나 피상적이었는지도 깨달았다.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목표를 세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진짜 성장은 일상의 작은 순간들에서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것이었다. 휴대폰을 잘 챙기고, 약속을 지키고, 가족에게 신뢰받는 사람이 되는 것. 그런 기본적인 것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계발을 논하는 것은 모래 위에 성을 짓는 것과 같았다.


무엇보다 가족에게 실망을 안긴 것이 가장 큰 고통이었다. 아내는 나를 믿고 의지했을 텐데, 그 신뢰를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아들에게도 아빠의 이런 부끄러운 모습을 차마 보여주긴 어려웠다.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부모로서의 책임감이 얼마나 부족했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내가 추구하는 성장이 혼자만의 것이어서는 안 되고, 가족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진정한 변화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자책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구체적인 변화를 시작해야 한다. 먼저 음주 습관을 점검하고, 평소 소홀히 했던 작은 일들에 더 신경 쓰기로 했다. 자기계발서를 읽는 것보다 일상에서 약속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명심하려 한다. 가족과의 소통도 늘리고, 건강에도 좀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싶다. 내 행동 하나하나가 그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더 깊이 생각해보려 한다.


휴대폰 분실 후 지난 1주일, 난 지옥 속에 있었다. 이번 일은 분명 고통스러웠지만, 내게 꼭 필요한 깨달음을 주었다. 진짜 성장은 화려한 목표나 거창한 계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작은 책임감, 가족에 대한 신뢰,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정직함에서 시작된다. 휴대폰을 잃어버린 그 순간이 오히려 진정한 성장이 무엇인지 알려준 전환점이 되었다. 이제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허상이 아닌 진실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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