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스 메르틴 저/배명자 역 | 다산북스
'아비투스'는 프랑스 철학자인 피에르 부르디외의 책 ≪구별 짓기≫에 등장하는 용어다. 아비투스는 다른 사람과 나를 구별 짓게 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과 태도를 말하는데, 이것은 본인이 속한 계층과 지위에 따라 더욱 뚜렷하게 구별된다. 이 책에서는 이런 아비투스의 의미와 함께, 본인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드러나는 아비투스의 7가지 모습에 대해 설명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최상위 계층으로 올라가려면 잘 다듬어진 아비투스가 필요하며, 이를 체화한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더 높은 사회적 지위에 도달하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 따라서 심리, 문화, 지식, 경제, 신체, 언어, 사회 등의 7가지 자본을 중심으로 스스로를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이러한 자본들을 획득하고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타고난 재능과 주어진 환경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천적인 노력으로도 각각의 자본들을 충분히 개발할 수 있음을 이야기하며 독자들에게 희망을 준다. 각각의 자본을 체계적으로 개발하여 품격을 갖춘 인간이 될 수 있는 구체적 방법들을 이 책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대학 시절 느낀 문화적인 충격도 생각났다. 모두 서울대에 다녔지만, 부모님의 경제력과 문화적 배경이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친구들은 졸업 후 진로에서도 큰 차이를 보였다. 어떤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대기업이나 로펌과 같은 좋은 자리로 진출하는 반면, 또 다른 친구들은 정보나 인맥, 문화적 코드 자체를 모른 채 혼자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였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단순히 능력만의 문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문화적 자본과 사회적 네트워크의 차이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이 책을 읽으며 그런 경험들은 좀 더 구체화가 되었다. 특히 문화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이 얼마나 은밀하면서도 강력하게 작용하는지 알 수 있었다. 어떤 아비투스인지에 따라 기회의 문이 열리기도 닫히기도 한다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아비투스는 일상의 작은 순간들에서도 드러난다. 예를 들어 같은 카페에서도 어떤 메뉴를 선택하는지, 어떤 브랜드를 선호하는지, 어떤 취미를 갖고 있는지, 심지어 어떤 말투와 표정을 짓는지까지도 모두 그 사람의 아비투스를 반영한다. 이런 것들이 쌓여서 그 사람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만들고, 사회적 관계와 기회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얼마 전 시청한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라는 TV 프로그램에서의 이도와 정목 간의 이별 장면에서도 이러한 아비투스의 차이를 엿볼 수 있었다. "결이 안 맞는 것 같다."라고 했던 정목의 말도 어쩌면 아비투스의 문제일 수 있었다. 둘은 그동안 살아온 배경도 달랐고 서로를 이해할 마음의 여유도 부족했다. 너무나도 다른 아비투스를 가진 두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철저한 계급주의 사상이라는 생각에 거부감이 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것이 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다시 뒤적거리게 되는 그런 책이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것 같아 씁쓸하지만, 그 현실을 인정하고 나서야 비로소 진정한 변화의 출발점에 설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의 의미는 체념이 아니라 성장을 통한 돌파구 찾기이므로.
이 책이 주는 메시지는 결코 절망적이거나 회의적이지 않다. 비록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조건들이 다르더라도,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자신의 아비투스를 개선해 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현실을 인정하되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진정한 자신만의 품격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