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끗의 차이가 인생의 갈래길을 만든다.
지인과의 대화에서 문득 깨달은 것이 있었다. 같은 사람을 두고도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라고 말할 때와 '고집이 센 사람'이라고 말할 때 전혀 다른 느낌이 든다는 것이었다. 둘 다 자기 생각을 잘 굽히지 않는다는 의미지만, 전자는 어딘가 긍정적인 뉘앙스가 있는 반면, 후자는 피하고 싶은 사람의 전형으로 느껴진다. 이 미묘한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주관과 아집의 가장 큰 차이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있느냐 없느냐에 있었다. 주관이 뚜렷한 사람 역시 자신의 신념을 쉽게 굽히지 않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상대방을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보인다. 반면 아집이 강한 사람은 오로지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여기며, 타인의 감정이나 입장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듣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말만 하며 상대방의 이야기는 귀담아듣지 않는 사람도 있다. 둘 다 자신의 생각을 고수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러나 전자와는 서로를 이해하며 대화가 깊어질 수 있지만, 후자와는 대화 자체가 단절되기 일쑤다.
개인이 주관을 갖는다는 것은 분명 중요하다. 남들의 의견에 무작정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가치관을 세우는 것은 성숙한 인격의 기초가 된다. 하지만 여기서 흥미로운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주관을 갖겠다는 같은 의도에서 출발했음에도, 어떤 사람은 더욱 깊이 있는 사고를 하게 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점점 더 편협해진다. 이 차이는 어디서 생기는 걸까?
나는 그 답을 '방향성'에서 찾을 수 있었다. 건전한 주관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세우되 끊임없이 검증하고 보완한다. 정원사가 식물을 기르듯, 자신의 신념을 돌보고 가꾸어 나간다. 반면 아집에 빠진 사람은 한 번 세운 생각을 더 이상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굳혀버린다. 전자는 그 자기 생각의 옳음을 증명하려 노력하고, 후자는 그 옳음을 의심하기를 거부한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이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다. 어떤 사람은 상대방의 관점을 듣고 "그런 각도에서 볼 수도 있겠네."라며 자신의 시야를 넓힌다. 새로운 창문을 하나 더 연 것처럼, 세상을 보는 방법이 하나 더 늘어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자신의 창문만이 유일한 진실임을 확신하며 "넌 정말 모르는구나."라고 상대방을 깎아내린다.
아집의 가장 무서운 점은 자신의 좁은 시야를 전부인 양 착각한다는 것이다. 제한된 경험과 편협한 관점으로 세상을 재단한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무지를 무지인 줄 모르는 상태,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무지이다. 반면 진정한 주관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솔직히 인정한다. 확신과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겸손함을 동시에 품는다.
결국 나만의 독창적인 식견을 갖는다는 것은 남과 다르기 위해 억지로 튀려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관점을 수용하고, 깊이 있게 사고하고, 자신의 경험과 성찰을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다. 마치 강물이 여러 지류를 받아들이며 더욱 풍성해지듯, 이렇게 만들어진 개성은 유연성과 포용력을 동반하며,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조화를 이룬다.
돌이켜보면 내가 존경했던 사람들은 모두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타인의 의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마치 뿌리는 깊게 내리되 가지는 유연하게 흔들리는 나무처럼 말이다. 아마도 이것이 뚜렷한 주관과 완고한 아집을 가르는 가장 명확한 기준일 거다.
주관이 뚜렷한 것과 아집이 강한 것은 겉보기에는 비슷해 보이지만, 실상은 한 끗 차이다. 그런데 이 작은 차이가 만들어내는 결과는 천양지차다. 마치 처음엔 거의 평행했던 두 선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멀어지듯, 그 한 끗의 차이가 결국 인생의 갈래길을 만들어낸다. 차이를 성장의 기회로 보느냐, 자신에 대한 위협으로 보느냐에 따라 인생의 궤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아집이 점점 더 강해지는 몇몇의 사람들을 지켜보며, 이 차이를 명확히 인식하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점검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성숙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그동안 내가 고수하던 여러 생각들이 살아있는 주관인지, 아니면 굳어버린 죽은 아집인지 경계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