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 1%의 영감을 더한다면

AI에서 엣지(edge)를 찾는 방법

by Ryan Choi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 대부분은 이 말을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격언으로 받아들이곤 한다. 하지만 에디슨의 진짜 의도는 달랐다. 모두가 99%의 노력을 기울일 때, 승부를 가르는 것은 바로 그 1%의 영감에서 온다는 뜻이었다. 노력은 기본이고, 작은 차이가 큰 격차를 만든다는 이야기다.


지금처럼 이 말이 절실하게 다가오는 시대가 있을까. AI가 일상 속에 스며들면서, 다시금 에디슨의 이 말을 떠올린다. 이제 곧 모두가 AI를 능숙하게 다루게 될 것이다. 프롬프트 작성은 기본 소양이 될 것이고, AI의 활용은 컴퓨터나 인터넷 사용만큼이나 당연해질 것이다. 그때 우리를 구별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뾰족함이 없으면 모든 것은 클리셰가 된다. 아무리 좋은 생각도 반복되면 진부해진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고 정리하는 데 탁월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한계를 드러낸다. AI가 제공하는 답변은 과거의 축적된 지식을 기반으로 한다. 독창적인 통찰이나 관점, 예리한 비판은 AI의 영역 밖에 있다.


문제는 우리가 점점 더 이 평균값을 산출하는 AI에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AI가 제공하는 답변들은 세련되지만 안전하다. 누구도 불편하게 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는다. AI는 날카로운 직언을 하지 못한다. 상대방의 맹점을 정확히 찌르는 조언, 듣기 불편하지만 꼭 필요한 진실은 말하지 못한다.


며칠 전 후배가 찾아왔다. 커리어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며 "AI한테도 물어봤는데요."라고 말했다. 나는 조금 냉정하게 AI가 해줄 수 없는 말을 했다. "네가 그 일을 하면 안 되는 이유는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야. 네가 정말 원하지 않기 때문이야. 그냥 부모님이 원하는 길이잖아." 후배는 잠시 멈칫거렸다.


ChatGPT만 봐도 우리의 질문에 대해 날카로운 직언보다는 부드러운 공감을 해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진짜 돌파구는 불편한 질문에서 나온다. 날카로운 질문은 때로는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고, 용기와 책임감을 요구한다. 하지만 AI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차별화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먹다가 문득 깨달았다. 이 집 김치찌개가 특별한 것은 완전히 새로운 맛이어서가 아니었다. 익숙한 맛에서 미세하게 감지되는 된장의 깊이, 바로 그 하나의 차이였다. 사람들은 낯선 것보다는 익숙한 것에 새로움이 더해질 때, 비로소 '맛있다'라고 말한다.


AI 활용도 마찬가지다. AI가 제공하는 익숙하고 안정적인 정보 위에, 당신만의 독특한 관점 하나를 얹는 것. 전통적인 김치찌개에 된장을 더하듯, 클래식한 커피에 특별한 향을 첨가하듯, 바로 그런 것이 차별화의 시작이다. AI가 정리해 준 99%에 나의 1%를 더하는 것, 그것이 엣지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몇 년 전 영어 공부를 위해 달변가로 유명한 오바마의 연설 영상을 반복해서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오바마의 연설 중 짧은 침묵의 힘을 보았다. 몇 초간의 침묵. 청중은 조용해졌고, 모두의 시선이 오바마에게 집중됐다. 그리고 그가 다시 입을 열었을 때, 그 말은 더 깊게 울렸다. 침묵은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했다.


연설에서의 침묵, 대화 중의 여백, 눈빛으로 전하는 공감. 이런 맥락과 분위기는 결코 AI가 재현할 수가 없다. 타이밍의 예술, 감정의 뉘앙스, 관계의 역학은 여전히 인간만이 다룰 수 있는 고유한 영역이다. 날카로운 진실,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른 새로운 통찰, 익숙함에 새로움 하나를 더하는 것도 바로 그런 결이다.


AI는 내가 가진 독특한 경험, 편견, 실패, 깨달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내가 겪은 구체적인 상황들, 나만의 가치관,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 이런 것들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엣지다. AI가 제공하는 평이하고 일반적인 답변에 너와 나의 구체적 경험들을 접목시킬 때, 비로소 살아있는 지식이 될 수 있다.


최근에는 의도적으로 AI의 답변에 반대해 보는 연습을 한다. AI가 "A가 좋다"라고 하면 "왜 B는 안 될까?"를 생각한다. AI가 정리해 준 몇 가지 방법을 보면서 그 방법들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을 상상한다. AI에게 1차 답변을 받은 후 "왜?"를 세 번 정도 더 물으면, 비로소 내가 정말 알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보이기 시작한다.


또한 서로 다른 분야의 지식을 의도적으로 연결하려 노력해 본다. AI는 카테고리 안에서 작동한다. 경영학은 경영학 데이터로, 심리학은 심리학 데이터로 학습한다. 하지만 진짜 혁신은 경계에서 일어난다. 경영학과 심리학 사이, 예술과 과학 사이, 철학과 기술 사이. 그 틈새에서 아무도 보지 못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AI는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무너졌고, 무엇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는지 모른다. 이 구체성이 바로 엣지다. 많이 읽고, 많이 경험하고, 많이 실패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나만의 렌즈로 세상을 보고 해석하는 것, 그것이 AI 시대의 진짜 자산이 아닐까. 그래서 나의 구체적인 경험들을 이곳에 기록해 보려고 노력한다.


결국 AI에서 엣지를 찾는 방법은 도구를 얼마나 잘 쓰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도구가 주는 답변 너머에서 무엇을 발견하는지에 달려 있다. 그렇기에 진짜 엣지는 AI에게 '무엇을 물을 것인가'와 AI가 준 정보를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할 것인가'라는 고민에서 비롯된다. AI는 답을 주지만, 질문과 적용은 여전히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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