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공명 병에 걸린 사람들
명절의 어느 식사 자리에서, 동네 카페에서, 때로는 직장의 회의실에서 종종 그런 사람들을 만난다. 천하삼분지계를 논하듯 세상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가진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 "서울시는 그래서 문제야", "우리나라 경제가 이 지경인 게 다 이유가 있어"라며 복잡한 현실을 몇 마디로 정리해 버리는 사람들.
처음에는 유독 나이 지긋하신 분들에게서 그런 경향이 강하길래 그저 꼰대 문화의 일부려니 했다. 하지만 가만히 보니 단순히 나이나 세대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는 게 적으면 적을수록 더 확신에 찬다는 것. 진짜 전문가들은 늘 조심스러운데, 정작 피상적인 지식만 가진 사람들이 단언하고 단정 짓는다.
오래 살았다는 것, 한때 작은 무언가를 성취했다는 것이 모든 영역에서의 통찰력을 보장하지는 않는데 말이다. 더 흥미로운 건 그들이 갇혀 있는 정보의 섬이다. 같은 유튜브 채널, 같은 신문, 같은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돌고 도는 정보들. 그 안에서는 모든 게 명확하고 선명해 보이지만 진짜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
복잡한 경제 현상도, 미묘한 정치적 맥락도, 다층적으로 얽혀있는 사회 문제도 단 하나의 원인과 해법으로 환원된다. 확증편향의 악순환 속에서 자신의 판단은 점점 더 견고해지고, 의심의 여지는 사라진다. "내가 살아온 세월이 있는데"라는 말이 모든 논리적 반박을 차단하는 주문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더 큰 문제는 배우려는 의지 자체가 약해진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이미 '어른'이라는 지위를 얻었고, '선배'로서 존중받기를 기대하는 상황에서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라고 인정하는 건 체면이 상하는 일이다. 그래서 모르면서도 아는 척하고, 불확실하면서도 확신에 차 말한다.
산업화 시대를 겪었던 일부 세대에게 세상은 비교적 선명했을지 모른다. 열심히 일하면 성공하고, 문제에는 분명한 해법이 있었던 시절. 하지만 지금의 세상은 그때와 다르다. 한 분야의 성공이 다른 분야의 통찰력을 보장하지 않고, 과거의 경험칙이 현재에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 시대다.
그런데도 여전히 옛날 방식으로 세상을 재단하려 든다. 마치 제갈공명이 된 것처럼. 물론 나이가 들면서 점점 새로운 것을 배우기가 어려워지는 건 맞다. 하지만 모두 다 그렇게 되는 걸까? 그건 아니다. 주변을 보면 여전히 배우고, 질문하고, "잘 모르겠네"라고 솔직하게 말할 줄 아는 어른들도 존재한다.
진짜 지혜로운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모르는지를 안다. 그래서 제갈공명 병은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배우지 않으려는 지적 게으름의 산물이다. 진정한 지혜는 끊임없이 배우려는 겸손에서 나온다. 그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에.
확신에 사로잡힌 사람은 스스로를 멍청하게 만든다. 모든 답을 안다고 믿을 때 성장은 멈추고 가능성은 닫히기 때문이다. 제갈공명 병은 남 이야기가 아니다. 나이와 무관하게 내면의 오만함이 자라나는 순간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그들을 보며 한숨 쉴 시간에 겸손하자. 내가 모르는 세계가 아직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