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를 보고 나서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마지막 편에 보면, 송 과장이 김낙수에게 이런 말을 건네는 장면이 나온다. "존경합니다. 진심으로요." 그 짧은 대사가 화면에 머무는 동안, 나는 묘한 부러움 같은 걸 느꼈다.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말을 진심으로 건넨 적이 있었던가. 이 드라마는 그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를, 그것이 가능한 순간이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축복인지를 절절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되묻게 되었다. 나는 과연 진심으로 존경할 만한 상사를 만나본 적이 있었는가. 그 질문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렸다. 대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는데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존경할 만한 상사를 만나지 못했다는 건, 단순히 운이 없었다는 뜻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내가 아직 누군가를 제대로 존경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뜻일 수도 있으니까.
'존경'이라는 감정은 상대방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불완전함 가운데 빛나는 어떠한 일관성을 발견할 때 찾아온다. 그 사람만의 원칙과 그것을 지키려 애쓰는 모습이 보일 때, 비로소 누군가를 존경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난 그간 상사들을 볼 때 단점만을 봤던 것 같다. 저 사람은 결단력이 없고, 저 사람은 너무 권위적이고. 그렇게 하나씩 X 표시를 하며 누군가를 존경할 기회를 스스로 닫아버렸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정말로 존경할 만한 사람이 없었던 건 아닐까. 회의 시간마다 부하 직원의 아이디어를 자기 것처럼 포장하는 사람, 실적이 나쁘면 팀원 탓을 하고 실적이 좋으면 자기 공으로 돌리는 사람, 야근을 미덕으로 여기면서도 정작 자기는 정시에 퇴근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존경을 느끼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존경은 마른 땅에서 샘물이 솟아나는 것처럼 억지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니까.
존경을 찾기란 어려운 그런 사람들 속에서, 어쩌면 나는 그저 운이 없었던 것뿐이고, 세상 어딘가에는 분명 존경할 만한 상사들이 있을 거라고,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김낙수 같은 사람들이 정말 존재한다고 믿고 싶었다. 상사 복이 진짜 없다고 생각하며, 복이 없어서 못 만났을 뿐, 그런 사람들은 분명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이 직장상사들에게 시달리던 나를 위로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제 시간이 지나 보니 하나만큼은 명확했다. 그건 내가 누군가의 상사가 된다면, 존경받으려 애쓰기보다는, 그저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려 노력하리라는 것이다. 존경은 요구하는 게 아니라 그저 누군가의 마음속에 조용히 자리 잡는 것이기에 그렇다. 그리고 만약 앞으로도 존경할 만한 상사를 만나지 못한다면, 최소한 어느 누군가에겐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 볼 거다. 그것이 시간 속에서 배운 것이다.
언젠가 누군가 내게 말할지도 모른다. "존경합니다, 진심으로요." 만에 하나 그 말을 듣게 된다면, 나는 그제야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찾지 못했던 존경할 만한 상사의 모습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특별한 무언가가 아니라, 그저 한 평범한 사람이 흔들리지 않으려 애쓴, 김낙수의 삶과도 같은 평범한 날들의 총합일 것이다. 재미있었지만 때론 너무 현실적이어서 보기 힘들었던, 그런 드라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