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잃어가며 맺는 관계들에 대하여
이제는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무리한다는 것은 결국 내가 아닌 내가 되는 것이다. 상대가 원하는 모습, 상황이 요구하는 모습에 맞추느라 정작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 그리고 그렇게 억지로 무리하며 감당한 것들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마련이다. 무리한 것의 대가는 언젠가 반드시 상대에게 받아내려 하게 된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그렇게 된다. 인간관계에서 무리하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을 감당하려 애쓰는 것은 착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에게 비굴한 것이며, 상대방과의 갈등이 두려워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는 행동이다. 그래서 나는 인간관계에서 쓰이는 '노력'과 '헌신'이라는 말이 한편으로 참 무섭다. 주는 것이 기쁨이 되어야지, 무리가 되는 순간 그것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된다. 일방적인 희생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결국 양쪽 모두를 망가뜨린다.
나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나는 무척 내향적인 사람이지만, 오랜 시간 사회생활을 하며 외향적인 사람처럼 보이는 기술을 학습해 왔다. 그런데 그게 사실 내 본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몸은 이미 알고 있다. 나답지 않은 에너지를 억지로 쏟다 보면 금방 소진되고, 그만큼 빠르게 지친다. 애써 만들어낸 모습은 오래 유지할 수 없다. 결국 무리한 것은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탈이 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재밌는 것은 사람들도 이런 것들을 본능적으로 안다는 것이다. 자기 때문에 무리하는 사람보다, 자기에게 솔직한 사람을 더 편안하게 느낀다. 무리하는 것이 보이면 그게 오히려 불편해서 먼저 멀어진다. 진심 없이 차려진 과한 배려와 친절은 받는 사람도 어딘가 불편하다. 결국 무리한 관계는 상대를 위한 것도 아니고, 나를 위하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상대에게는 부담감만 안겨 주는 것이다.
나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상대방도 존중할 이유를 찾지 못하게 된다. 내가 나를 함부로 대하는데, 남이 나를 소중히 여겨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다. 그래서 결국 좋은 관계의 출발은 나 자신을 제대로 아끼는 것에서 시작한다. 무리하지 않는 것,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잘 지켜내는 일이다. 나를 지키는 사람만이 오래, 진심으로, 상대 곁에 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