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관점을 가지는 일
주변에 그런 사람이 꼭 한 명씩 있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처음엔 꽤 말을 잘하는 것 같다. 그런데 계속 듣다 보면 이상하다. "누가 그러더라고." "어디서 봤는데." "인터넷에서 봤어." 주로 이런 말들로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 그 긴 이야기 속에 정작 그 사람 자신의 생각은 한 조각도 없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런 사람들과 대화할 때 한 가지 질문을 속으로 삼키게 되었다. "알겠는데, 그래서 네 생각은 뭐야?"
책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에서 저자인 송길영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우리 사회는 더욱 잘게 쪼개지고 흩어지게 될 것이고, 그 속에서 우리는 홀로 서는 법을 배워가야 한다고. 핵개인의 시대는 단순히 혼자 사는 시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관점으로, 자기 자신의 언어로 이 세상을 해석해 낼 수 있는 사람의 시대다. 그래서 자기만의 언어 없이 남의 말만 옮기는 사람에게, 핵개인의 시대는 결코 친절하지 않다.
최근에도 그런 사람을 만났었다. 대화 내내 누군가의 말을 인용하고, 지금과는 한참 동떨어진 과거의 사례들을 가져다 붙이며 열심히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듣고 나면 남는 것이 없었다. 화려하게 포장된 공허함. 말의 양은 많았지만, 그 안에 그 사람의 생각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그때 다시 한번 느꼈다. 시대가 아무리 바뀌어도 자기 언어로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아무것도 말하지 않은 것과 다름없음을.
얕은 지식의 자랑은 아무짝에 쓸모가 없다. 스스로 소화하지 못한 지식은 자신을 설명하는 언어가 되지 못한다. 누가 조금만 반론을 제기해도 버텨내지 못하고, 또 다른 누군가의 말을 빌리러 간다. 자기 것으로 삼지 않은 생각은 바람 앞의 깃털처럼 가볍다. 그렇게 빌려다 쓰는 말들만 쌓이면, 그 사람의 내면은 텅 빈 창고처럼 공허해진다. 깊이 없이 가볍게 쌓인 말들만 반복하는 사람의 안타까운 뒷모습이다.
진짜 두려운 건 그것이다.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을 회피한 채 살아가는 것. 타인의 사유를 무비판적으로 옮기는 습관이 고착화되면, 섬세하게 자기의 감정을 느끼고, 그 감정을 자기의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을 잃어버린다. 그렇게 안으로 무너진 사람은 겉으로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진지한 대화의 순간에는 유리처럼 투명하게 그 속이 비어 있음을 드러내고 만다.
나 역시 부끄럽게도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읽은 책의 구절을, 들은 강의의 내용을 내 생각인 양 늘어놓았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가벼운 일인지를 깨달은 이후로는, 아는 척보다 모르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는 편이 훨씬 더 나음을 알게 됐다. 자기만의 관점을 가진다는 것, 그리고 그 관점에서 비롯된 섬세한 감정을 갖는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핵개인의 시대를 진짜로 살아내는 사람의 조건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