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치관을 지키는 일에 대하여
지인들과 육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흥미로운 장면이 펼쳐진다. 아이는 무조건 행복하게,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게 해줘야 한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초반에 단단히 잡아서 삶의 태도부터 가르쳐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처음에는 그냥 서로 다른 생각을 나누는 대화인 것 같다. 그런데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묘하게 긴장감이 흐른다. 어느 순간부터 각자의 방식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전쟁이 되어버린다.
비단 육아 이야기뿐만이 아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는다. 애는 낳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술은 마셔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아파트는 사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저마다의 확신을 손에 쥐고 상대방을 향해 거침없이 내지른다. 신기한 것은 어느 쪽도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치관의 전쟁이 유독 지저분하게 끝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양쪽 모두가 자신이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저마다 다른 환경에서 자랐고, 다른 경험을 쌓았고, 다른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 모든 것이 켜켜이 쌓여 지금의 가치관이 된다. 육아 방식 하나도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내가 어떤 부모 밑에서 어떻게 자랐는지, 무엇이 두렵고,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가 그 가치관에 모두 녹아있다. 그러니 상대방의 가치관을 바꾸려는 시도는,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 역시 한때는 내 기준이 옳다고 믿었다. 일하는 방식이 나와 다른 동료를 보면 답답했고, 육아관이 다른 사람을 보면 저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옳으니 상대방이 틀렸고, 틀렸으니 고쳐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전쟁의 끝은 언제나 같았다. 상대방도 지지 않았고, 나도 이기지 못했고, 관계만 상했다. 설득이 아니라 강요였으니 당연했다. 이기려고 덤빌수록 더 깊이 지고 있었다는 것을, 한참이 지나서야 알았다.
그렇다면 이 전쟁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싸우지 않는 것이다. 정확히는, 이길 수 없는 전쟁을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는 것이다. 상대방의 가치관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한 순간, 그것을 고쳐야 할 오류로 볼 것인지, 다름으로 볼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선택지에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만이, 비로소 이 전쟁에서 자유로워진다. 바로 다름을 다름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결국 가치관의 전쟁에서의 진정한 승리는 상대방을 이기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과의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내 것을 잃지 않는 것이다. 내 가치관을 지키되, 그것을 무기로 휘두르지 않는 것. 가치관은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으로 증명해 내는 것이다. 말로 설득하려 할수록 전쟁은 길어지지만 묵묵히 살아낸 삶 앞에서는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기 어렵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이 전쟁에서 승리하는 유일한 방법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