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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an Son Jul 07. 2024

가족의 꿈: 최선으로는 부족한가요

어른용 성장

전제: 가족이라는 딜레마


가족은 가장 큰 축복이자 가장 큰 시험이다
조지 산타야나


상황: 가족과 함께 일한다는 낯선 경험.


얼마 전 스레드(Thread)에서 우연히 본 글이 자꾸 생각납니다. 

한 어르신이 글쓴이인 엄마와 즐거운 모습을 보내는 아이에게 물었답니다.


"엄마가 그리 좋으니? 나도 우리 엄마 참 좋아했었는데..."


---


저는 요즘 오전, 오후에는 제 업무를, 저녁 시간에는 어머니가 새로 시작하신 가게에 나가 일을 도우며 지냅니다. 그러다 보니 늘 피곤하고, 제 기준에서의 사장의 역할과 업무에 대해 어머니에게 나름의 단단한 기준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간혹 짜증도 내곤 합니다. 그러다 돌아서면 바로 후회하고 사과를 드리지만, 그저 '괜찮아'라고만 하시는 어머니 앞에서 죄송하고 부끄러울 때가 자꾸 생깁니다. 


평생 낯선 사람들과만 일을 하다 가족인 어머니와 새벽까지 함께 일한다는 건 그래서 더 어렵게 느껴집니다. 일이고 업무이기에 필요로 하는 대화가 생길 때마다 어떻게 전해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늘어가도 효과적인 소통은 매번 너무 어렵습니다. 


현상: 해도 해도 채워지지 않는 최선의 매일.


'지금 와 줄 수 있어?'


주말 오후 갑자기 방문한 단체 손님들에 놀라신 듯 전화를 주셨습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최대한 빨리 가게로 갔고, 정신없는 상황 속에 빠져들어 그렇게 또 하루의 계획이 미뤄졌습니다.


어머니에게는 어머니만의 사업을 시작한 이유와 목적이 분명하게 있으십니다. 그리고 이는 제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자식으로서 최선을 다해 돕고 싶지만, 자식이 아닌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 제 삶의 중요한 부분들을 스스로 채워나가야 하기에 이번만, 이번만이라며 매번 받아들이기에는 버거운 순간들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네이버 리뷰에의 답글, 재방문 고객 관리를 위한 상품권 제작, 지역 마트 할인 소식지에 어머니 매장 정보 노출 요청, 늦은 밤 영업 종료 이후에도 더 있겠다 버티는 취객들과의 실랑이 등 어머니 대신 제가 해야겠다 판단되는 일들이 끊임없이 확인되는 매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며칠 전 길에서 갑자기 눈물이 툭 터졌습니다.


해도 해도 채워지지 않는 듯한 제 역할들이 스스로 버거웠는지, 최선을 다하고 있다 생각해 왔지만 실은 늘 부족함을 느끼고 있었던 건지, 그저 '괜찮아' 말하시는 어머니의 해맑게 웃으시는 모습을 떠올리다 걸으며 조용히 울었습니다. 그 안에는 자식으로서의 어머님을 향한 마음과 책임감,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제 삶을 이전처럼 온전히 챙기지 못하는데서 오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사회학에서 발전한 역할이론에 따르면 개인이 사회 내에서 차지하는 여러 위치와 그에 따른 기대되는 행동 패턴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며, 각 역할에는 특정한 기대와 규범이 따름을 의미합니다. 어쩌면 제가 요즘 겪고 있는 어머님과의 갈등이나 제 스스로 경험하는 내적 갈등은 역할이론에서의 다음의 유형과 비슷하다 할 수 있습니다. 


- 역할 간 충돌(Inter-role Conflict): 한 개인이 수행하는 여러 역할 사이에서 발생하는 충돌입니다. 어머니를 돕고자 하는 자식으로서의 역할과 업무 파트너로서의 역할 사이의 갈등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역할 내 충돌: 동일한 역할 내에서 서로 다른 기대나 요구 사이에 발생하는 충돌입니다. 존중해야 할 어머니이시면서 제언해야 할 사업 파트너라는 면에서 어머니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한 혼란을 설명해 줍니다.


- 역할 과부하 (Role Overload): 주어진 여러 역할의 요구사항이 개인의 능력이나 시간을 초과할 때 발생합니다. 어머니의 사업과 제 본업을 동시에 지원해야 하는 상황에서 확인하는 부담감의 명칭이라 할 수 있습니다.


- 개인-역할 충돌 (Person-Role Conflict): 개인의 가치관이나 신념이 수행해야 하는 역할의 요구사항과 충돌할 때 발생합니다. 효율적인 업무 수행에 대한 저의 기준과 어머니와의 관계 유지 사이에서의 갈등을 설명해 줍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모든 게 '가족'이라는 관계 안에서 확인되기에 회사나 클라이언트와의 관계에서 늘 명확하던 결정들과는 확연히 다른, 어떤 결론도 내리지 못하는 제 자신을 발견합니다.


생각: 영원한 부족함, 가족


어머니는 늘 웃으시며 즐겁게 일하시는 듯합니다. 피곤하지 않으신지, 어머니 체력이 곧 영업시간입니다라고 매번 말씀을 드려도 괜찮다고만 하십니다. 그러다 가끔은 혼자서도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말고 네 일 보고 와라 라며 미안함도 드러내십니다.


언젠가는 저에게도 글 처음에 언급된 한 어르신처럼 어머님과의 시간을 아쉬워하고 그리워하는 순간이 올 겁니다. 그래서 매일 밤 어머니를 모시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오늘도 무사히 건강하게 함께 돌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다 말하곤 합니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죠.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에 한계가 있음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채워지지 않는 '그래도 부족하다'는 마음에 대한 제 나름의 결론. 가족이기에, 삶을 통틀어 다시 없을 소중한 관계이기에 아무리 최선을 다하고 노력해도 늘 부족할 수밖에 없음을 다시 한번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가족과 함께 일하면서, 혹은 단순히 가족 관계 속에서 비슷한 경험을 하고 계신가요?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때로는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서로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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