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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an Son Jun 23. 2024

주문 너머의 세상, 손님

어른용 성장

전제: 고객, 가장 중요한 방문객


고객은 유일한 보스입니다.
샘 월튼


상황: 깨달음을 주는 손님들.


어머니의 곱창가게가 오픈한 지 막 보름 정도가 지났습니다. 일반적인 저녁 식사 시간인 저녁 6시부터 밤 12시까지 가게의 홀에서 일하고 이후 가게 정리 및 어머니를 모시고 운전해 집에 오는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동안 예상보다 워낙 많은 변화들이 있었기에 글을 쓰기 어렵다 판단해 왔습니다. 글은 어느 정도 정제된 내용과 결론으로 채워져야 하는데 모든 새로운 상황들이 빠르게 변화하고 진행 중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설익은 내용을 정리하려 무리하는 건 아닌가 라는 고민이 들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짧게나마 제가 확인해 온 점들을 그저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1. 장사와 사업은 다르다?

다르더군요. 흔히 장사는 단기적 성과에 집중하고, 사업은 장기적 비전 관리에 힘을 쓰기에 상대적으로 장사가 사업보다 낮은 레벨로 생각해 왔던 제 안의 편견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보름 만에 그 편견에 동의할 수 없게 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장사는 매출을 매일 확인하게 됩니다. 이는 월별, 연간 계약으로 매출이 발생할 것을 예상하고 인적 자원활용 수준과 관련 재투자를 결정하는 이전 프로젝트 경험과는 다르게, 상대적으로 매우 높은 수준의 긴장감을 몸과 마음에 만들어주었습니다. 방송국 PD 시절에도 성적표는 최소 매주, 즉 일주일의 시간을 두고 확인했으나 영업시간 종료 몇 시간 전부터 확인되는 매일의 성적표는 그야말로 피가 마르게 만듭니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장사는 단기적 성과를 매일 챙겨가며 장기적 비전을 달성시키려 하는 더 높은 수준의 실행력과 전술을 필요로 하는 듯합니다. 


2. 다짜고짜 반말을 하는 분들을 만납니다.

"염통이 뭐야?" 갑작스러운 질문에 그저 웃으며 답을 해드리지만 이후에도 계속되는 반말은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고려하게 만듭니다.


- 지역 장사
아직 오픈 초기라 매장이 있는 인근 주거 지역에서 온 손님들일 텐데 혹시나 조금의 감정적 대응이라도 하면 어쩌나 싶어 긴장을 늦출 수 없습니다. 말 한마디, 더 필요한 건 없는지 확인하는 소소한 질문들은 겉으로는 '말'이나 태도나 분위기를 내포한다는 걸 알고 있기에 생각보다 꽤 어려운 미션이었습니다.


- 오픈된 무대와 같은 홀

사장님이나 직원과의 대화, 손님과 나누는 대화는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도 다 듣고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대응하는가는 다른 손님들이 저를 포함한 다른 직원 및 사장님을 대하는 태도를 결정지을 수 있습니다.


'적절한 대응'이라는 표현 속 '적절한'이 이토록 불완전하고 무책임한 표현이라는 게 야속할 정도입니다. 때문에 적합한 대응은 해야겠으나 어느 정도까지 선을 지켜야 하는지가 모호하다는 점에서 마치 드라마 '오징어게임' 속 유리징검다리 건너기에 임하는 듯한 경험을 하는 중입니다.

ROUND 05. 유리 징검다리 건너기


그 외에도 주문한 소주나 뚜껑을 딴 맥주를 나중에 먹을 테니 냉장고에 보관해달라거나 지금은 못 먹겠으니 다음을 위해 Keep 해 달라는 요청도 확인되고는 합니다. 여기는 Bar가 아니기에 어렵습니다라는 거절에 삐져서 돌아가는 손님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 생각보다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3. 그 시간에 몰입한 손님들을 보곤 합니다.

매일 폴딩 도어를 활짝 열어 조금이라도 더 이 새로운 매장의 존재감을 알리고자 합니다. 그러다 보면 활짝 열린 매장 내 공간에 앉아 식사를 하던 손님들이 갑자기 노래를 부르거나 함께 온 상대와의 대화에 심취해 작은 농담에 서로 웃고 밖을 보며 여유롭게 그 시간을 즐기는 듯한 모습을 종종 보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매출을 위해 운영하는 공간이라는 점에만 관심을 가져왔던 제 자신의 한계를 확인합니다. 벌써 꽤 많은 분들이 재방문을 해주시고 계시고, 다른 가족 구성원이나 친구들과 함께 찾아오셔서 맛있게 먹었다며 웃으며 떠나가는 모습에 새삼 장사의 위대한 측면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설루션', '대응', '방향성', 'Action list' 등에 집중해 왔던 이전의 제 업무 경험에서는 이렇게 쉽게 확인할 수 없었던 반응들이기에 새로웠습니다.


4. 조언해 주는 분들을 만납니다.

"맥주는 술 냉동고에 보관해야 합니다." 더운 여름에 손님들은 거의 얼려있는 맥주를 찾는다며 30년간 요식업에 종사했다는 부부로 보이는 손님이 꿀팁이라며 당장 바꾸라고 조언해 줍니다. 주류 팀에 확인해 보니 그러다 맥주병이 터질 수도 있다는 우려 섞인 의견을 줍니다. 고깃집을 운영해 본 적 있다는 한 손님은 콩나물국이 맛없다, 프랜차이즈가 하라는 대로 하면 안 된다고 취한 상태로 끊임없이 이야기합니다. 이후 옆 테이블의 손님들은 왜 저려냐 등의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모기 퇴치기를 설치해라, 1인분도 팔아야 한다, 마감시간을 미리 알려줘야 한다 등 생각보다 다양하고 많은 의견을 손까지 잡아가며 열정적으로 알려주시고는 합니다. 


5. 네이버 리뷰를 정성껏 써 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네이버 리뷰는 즐겨 찾는 매장으로서의 '저장'과 더불어 네이버 알고리즘이 가장 선호하는 지표 중 하나입니다.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상위 검색에 뜨는 매장이 되기 위해 처음 정한 목표는 '첫 달에 100개의 리뷰를 채우자'였습니다. 


하지만 본사가 정해 준 리뷰 이벤트는 식사를 하는 손님들을 대상으로 리뷰 작성 확인이 되어야 서비스 음료를 제공하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아직 매장 내 경험이 풍부하지 않은 상황에서 작성되다 보니 한 줄의 간단한 평에 그치곤 합니다. 이후 먼저 서비스 음료를 제공한 후 나중에 생각나시면 써달라고 부탁드렸고, 이후 확인되는 새 리뷰들은 예상외로 너무 정성스럽게 쓰여있는 것을 확인하곤 합니다.


현상: 식당, 공공장소로서의 의미를 재확인케 하다


일반적으로 식당은 공공장소로 간주됩니다. 일반 대중에게 개방되고, 영업시간 동안 누구나 이용 가능하며, 다수의 사람들이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그리고 매장을 경험한 손님들의 반응들은 아래와 같은 의미들로 연결되는 듯합니다. 


A. 문화적 표현과 전달:

곱창은 한국의 독특한 음식 문화를 대표합니다. 잡내나 기름기에 대한 저마다의 다양한 기준과 표현은 매장 내에서나 온라인 리뷰에서 거의 매번 확인됩니다.


B. 사회적 상호작용의 장:

한우곱창은 주로 여럿이 모여 즐기는 음식입니다. 매장은 가족이나 친구, 동료들이 모여 대화하고 유대감을 형성하는 공간이 됩니다. 또한 다양한 사회 계층의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곳임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C. 정체성 형성:

한우 곱창은 처음 접한다는 분, 익고 있는 고기 앞에 불을 줄이거나 가위로 자를 생각도 못하고 계시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곱창 가게를 여기저기 찾아다니는 분들까지 매장에서 손님들은 자신의 취향과 관련된 정체성을 표현합니다. 나아가 손님들 중에는 우리 동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등의 인사로 지역 커뮤니티의 일부라는 소속감을 확인시켜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D. 공적 담론의 형성:

중국과의 국가대표 축구 경기를 다 같이 보며 손님들은 한국 축구에 대한 평가, 중국팀에 대한 의견을 나눕니다. 매장은 지역 사회 이슈나 시사 문제에 대한 토론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종종 테이블 간 통합된 의견 교환의 분위기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매장에서 일을 하거나 온, 오프라인 관련 운영 경험을 통해 새삼 공공장소에의 의미를 확인하거나 역할에 대해 다시 공부하는 부분들이 생깁니다. 그리고 이는 매장의 지역 내 존재감에 대해 재고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며 어떤 이유에서건 매장을 찾는 손님들에게 좋은 경험을 남겨야 한다는 선명한 목표를 확인케 합니다.


스틱형의 숙취해소제, 여분의 우산, 긴 머리 여성 손님들을 위한 머리끈, 핸드폰 충전기 등의 작지만 실용적인 챙김은 그렇게 손님들의 필요에 맞춰 의미를 채워가는 듯합니다.

 

생각: 언제나 '손님'입니다.


기업화를 위한 시스템에의 고민, 브랜딩과 연결된 마케팅 활동 등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고 있는 요즘입니다. 당장 내 눈앞에서 반말로 질문을 하거나, 느닷없는 조언을 공유해 주시는 분들, 어린 아들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김가루를 따로 달라하시는 분들은 모두 '손님'입니다. 기업의 경영진들, 실무진들과 다른 표현을 쓰고 다른 관심사를 표현하고 있지만 눈앞의 이 분들이 결국 매장의 앞날을 열어주는 결정을 내리는 분들인 점은 명확해 보입니다. 


어쩌면 저야말로 사업, 컨설팅, 제언, 영업 등에 대한 본질적인 면을 다시 배울 기회를 얻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고객 감동, 고객 이해의 길은 손님에의 고민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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