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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yan Son Oct 06. 2021

무거워서(?) 무서웠던 영화 '랑종'

사람의 존재감을 드러내다

태국 공포 영화 랑종은 영화 곡성으로 유명한 나홍진 감독이 그 원안을 쓰고, 제작자로 참여해 만들어졌다. 


조상들이 저지른 범죄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온갖 영혼들이 악귀가 되어 평범해 보이는 젊은 여성 '밍'에게 들어가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그러나 개봉 이후 기대와는 달리 불필요하게 잔인하기만 한 장면들이 넘쳐나는, 불쾌하기만 한 영화라는 리뷰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 또한 영화가 개봉된 후 극장을 찾았으나 페이크 다큐 형식을 차용한 무분별한 핸드헬드 샷들의 특징 때문인지 두통이 심해져 결국 난생처음 중간에 관람을 중단하고 나왔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사실 내게 이 영화 전체 내용을 통틀어 가장 강력한 장면을 꼽는다면 다름 아닌 '밍'이 사무실에서 카메라맨과 무당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었다.


햇살이 환하게 들어오는, 하얀색 벽이 주를 이루고 분홍색 담당자 안내문이 포인트 색으로 어우러진 밝은 사무실 배경. 그리고 무엇보다 환하게 웃는 20대 여성의 천진난만한 모습은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평범한 또래의 사람들의 모습,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 장면이 존재하기에 뒤로 갈수록 점점 괴기해지고 흉폭해지는 '밍'의 행위가 더 강조된다. 


또한 이 장면은 카메라 앞에 앉아 웃고 있는 사람이 사실 누군가의 소중한 딸이자 가족임을 깨닫게 해주는 기반을 만들어낸다. 이후 영화 전체를 채우는 잔혹한 장면을 만들어내는 '밍'. 이때마다 그녀의 팔다리를 붙잡고 있는 이들은 그녀의 친척과 가족이며 이렇게 급격히 변해버린 '밍'의 몸속을 차지한 수많은 악귀들은 밍의 조상들이 저지른 범죄로 인해 만들어진 업보의 결과물이다. 



위반 실험을 생각나게 한다


사회심리학 분야에서 위반 실험(Breaching Experiment)은 일반적인 사회 규칙과 개념을 위반하는 것을 통해 사회적 상호작용의 맥락을 역으로 뚜렷이 드러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출근길 커피숍에 들러 주문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상황. 이때 누군가가 새치기를 하며 자신이 원하는 메뉴를 점원에게 이야기할 때, 그 순간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우리 생활 속에 깔려있던 사회적 규범을 확인하게 되고 이를 기준으로 어떻게 반응할지를 결정하게 된다. 나아가 우리는 각자 속해있는 세계로부터 강력하게 영향을 받는 사회적 존재라는 깨달음까지.




사실은 무거운 개인의 존재감


랑종은 내게 공포 영화로 남았으나, 여기서의 공포는 귀신으로 인한 상황으로부터 오는 게 아니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마주하는 한 사람이 그 뒤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혈연으로 연결된 가족들로부터 세상에 나온 존재임을 확인한 계기가 된 영화였다. 


결론: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삶이 이어진다는 건 놀라우면서도 그런 자신의 현재를 향해 큰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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