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yan Son Oct 07. 2022

환승연애2와 조직문화: 관찰의 힘

당신이 있는 그 자리로부터

얼마 전 어머님이 백내장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장 많이 받는 수술답게 (40대 전체 수술 2위, 50대 전체 수술 중 급증 수술 1위, 60대 이후 수술 1위, 2020 주요 수술 통계, 국민건강보험공단) 경과 확인을 위해 총 4일간 오픈 직후의 예약 시간에 맞춰 방문했음에도 11~18명의 대기자가 늘 존재했습니다.


진료 예약 시간은 사실상 무의미한 (평균 1시간 소요) 해당 병원의 운영 방식은 이내 대기실 내 환자들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을 확인케 합니다.


그러다 한 간호사가 대기실을 향해 외치는 한 마디.

대기실 중앙에 배치된 대략 30명은 앉을 수 있는 4열의 긴 의자는 정면 2개의 진료실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사이에 작은 기둥이 세워져 있습니다. 해당 기둥과 진료실 사이에 놓인 조금은 불편해 보이는 하얀색 간이 의자들, 바로 간호사가 안내한 '이 앞 의자'였습니다.

간호사의 호명에 따라 앞의 의자로 옮긴 한 어르신은 여전히 이어지는 대기 시간 때문인지 손목의 금속 시계를 만지작 거리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전보다는 가까워진, 투명한 진료실 문 앞으로 직접 다가갑니다.


그러다 진료실 내 의사 분이 잠시 장비에서 눈을 떼고 문 앞 기웃거리는 환자를 흘깃 쳐다봅니다. 이내 모른 척 눈앞의 환자에게 다시 집중하는 그 순간, 뒤늦게 이를 확인한 간호사가 외칩니다.

간호사의 지적에 멋쩍게 돌아서 의자로 돌아오는 환자. 그는 그 순간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여기서 내가 문제인가?'


무엇보다 그 어르신의 민망함을 저 말고도 대기실의 다른 이들은 느끼지 못했을까요?


만약 이 병원이 내세우는 가치 철학, 조직 문화의 표어가 '환자 우선주의'라면 어떨까요? 이 이상적이고 단일화된 표현이 병원 홈페이지 및 SNS 채널을 통해 광범위한 규모로 잠재 고객들에게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있다면 실제 병원을 찾은 환자들은 위와 비슷한 경험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요?



조직 문화의 현실을 드러낸 symbol, ‘이 앞 의자’


'이 앞 의자'는 간호사 그룹이 대기실 내 환자들이 경험하는 긴장감을 줄이기 위해 고안한 가치 제안 구조의 상징물입니다. 1시간이 넘는 대기 시간 중 이제 앞으로 6번째로 진료를 받을 순서가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도록, 또 그렇게 앞의 의자로 옮겨간 환자들을 바라보는 대기실 내 다른 환자들은 이 완화된 기준이 곧 자신에게도 적용될 거라며 안심하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이 '간호사의 호명' 뒤 진료실에 물리적으로 가깝게 다가간 환자들은 대기실 내 다른 환자들의 시선을 상대적으로 덜 신경 쓰게 되었고, 이미 충분히 기다린 만큼 조급한 마음에 진료실에 가까이 다가가 보는 건 자연스러운 인간 행동이라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료실 안 의사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 제안은 눈앞의 환자에의 집중입니다. '눈'이라는 예민한 신체 부위에 대한 진단과 치료는 극도로 정밀해야 하며, 나아가 진료 중인 환자에게로의 완전한 집중이 결과적으로 대기실 내 환자들의 불편함을 최소화하는 최선의 대응임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때문에 진료실 유리벽에 다가와 안을 들여다보며 움직이는 그림자는 비록 이해할 수는 있지만, 의사분들이 준비한 가치 제안을 방해하는 요소로 경험됩니다.


간호사와 의사, 이 두 전문 의료인 그룹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환자에게 제공하는 가치를 우선시했음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 서로 다른 가치 체계의 충돌이 실제 업무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조직 문화의 현실은 이상적인 표현으로 규정되기 어려운, 서로 충돌하는 다양한 하위문화(sub cultures)의 총합으로 구성됨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Bad culture mindest VS. Good culture mindset


'문화는 조직 내 암묵적 사회질서입니다. 문화는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의 태도와 행동을 형성합니다.' "Culture is the tacit social order of an organization: it shapes attitudes and behaviors in wide-ranging and durable ways."


Harvard business review 내 아티클 중 확인한 '문화'에 대한 위의 정의를 기반으로 저는 조직 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을 크게 다음의 두 가지로 구분해보고자 합니다.


Bad Culture Mindset:


- 고정된 형태의,

- 미션 또는 가치 중심의 지향점을 띈,

- 이상적인 하나의 표현; '우리 문화는...'


많은 경우 기업 내 문화를 정의할 때 '우리는 외부에 어떻게 보이고 싶은가'에서 멈추는 현상을 보곤 합니다. 특히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기업 내 반응은 실제 업무 현장에서 직원들이 경험하는 조직문화의 현실에 대한 무관심 및 업무 현장 내 문화와 이상적 표현 사이의 Gap에 대한 부정 등이 있습니다.


"조직 문화는 열정을 가지고 무언가를 행하는 공유된 방식입니다."

- Brian Chesky, co-founder of AirBnB


이 예시는 유토피아적인 문화에 대한 이미지를 표현하는 듯합니다. 특히 언급된 단어 '열정'은 창의성과 에너지와 연결되는 멋진 표현이지만, 기본적으로 조직은 목적과 성과를 기준으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조직 내 부서별 구성원의 행동과 태도를 이끌기에는 핵심적 내용이 담기지 못한 표현이 되기도 합니다.


나아가 위와 같이 문화를 규정하려는 조직 내 리더들의 시도에서 우리가 꼭 확인해야 하는 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는 '규정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점입니다. 사실 문화는 '이미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New York Federal Reserve President William Dudley, shown in 2014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가 전 세계를 휩쓴 뒤 2014년 10월 윌리엄 더들리 미국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연설을 통해 '문화'라는 단어를 무려 45번이나 사용하면서 "현재의 금융 서비스 산업의 문화를 개선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It) exists within every firm, whether it is recognized or ignored, whether it is nurtured or neglected, and whether it is embraced or disavowed.” "(문화는) 인식되든 무시되든, 육성되든 방치되든, 포용되든 부인되든 모든 기업 안에 존재합니다."


그는 은행가들이 심취해있던 급박하고 초조한 상황에서의 'Edginess 문화'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승리한다'라는 태도의 금융계 뿌리 깊은 문화적 단서들이야말로 정부 규제나 조직 구조의 변화로는 해결하지 못한 거대한 금융 위기의 씨앗이었음을, 기업 구조의 변화에 상응하는 규모의 기업 문화의 변화가 지속적인 변화의 핵심임을,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Good Culture Mindset = 관찰자로서의 전체론적 mindset


- 복잡하고 엉망진창이며; 끝없이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흐름

- 대립이 발생하며 비이성적일 수 있고,; 사람들 간 소통하고 반응함에 따라

- 무의식적이고 유기적으로 연결된; 우리가 누구인지 함께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고려하게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화를 해석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현재 존재하는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으로부터 가능해집니다. 앞서 언급한 병원 대기실 내 '이 앞 의자'는 현실에서의 조직 내 문화가 어떻게 구성되고 상호 작용하는지를 전체론적인 관점에서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뛰어난 상징물의 예시라 할 수 있습니다.



밖이 아닌 '내부'를 바라보기


조직 문화의 개선, 변화, 혁신을 이야기하는 조직은 많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기업의 접근은 경력 많은 컨설턴트를 초대해 외부의 사례를 레퍼런스 삼아 마치 모범 답안이 있는 것처럼 부분적인 대응에 관한 시도에 그칩니다. 하지만 이미 기업 내 업무 공간을 기준으로 직원들이 서로 소통하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활동하고 있는 조직 내부의 실제적 '현장'이야말로 현 조직 문화를 이해하고 어떤 변화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시작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인류학자들은 문화를 구성하는 대표적인 요소로


- 텍스트로서의 공간

- 구성원 간 인상관리(Impression management)

- 행위, 대립

- 의례적 행위와 상징들을 다룹니다.


즉, 문화는 소통에 관련된 모든 상징적 표현들에 대한 것이라 정의합니다.


공간 및 장소를 기반으로 그 안에 존재하는 구성원들이 자신이 속한 그룹 내 사회적 역할을 상호 관계에 따라 다양한 행위를 통해 조율해가는 연속되는, 끝나지 않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의미를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사례 중 하나로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환승연애 시즌2'를 들 수 있습니다.



포스터 속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10명의 선남선녀들은 정돈된 배치를 유지한 채 카메라를 보고 웃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환자 우선주의'와 같은 이상적 조직 문화의 문구처럼) 하지만 이미 헤어진 연인들과 함께 출연한 이 다섯 커플들은 한 공간에 머물게 됨으로써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감정의 교류를 통해 불안과 설렘, 충돌을 만들어내는 주체이자 그 영향을 받는 상대가 되기도 합니다. (실제 업무 공간 내 다양한 가치 추구를 위한 하위 문화의 충돌이 일어나듯이)


시청자들은 집 안 곳곳을 채운 카메라들을 통해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출연자들 사이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이 관찰을 통해 자신만의 각 상황에 대한 이해를 갖거나 관계에 대한 예측을 시도합니다.


또한 관심이 가는 새로운 이성과 함께 착용한 '팔찌'를 노려보는 전 여자 친구의 시선, 난 원래 철없다 라는 자기 핑계에 숨는 전 여자 친구를 바꾸려 하는 아버지 역할을 자처하는 전 남자 친구의 고집 등은 조직 문화를 해독할 때 필요로 하는 상징물 및 관계 내 교류 분석의 단서들까지 다 담아내고 있어 놀라움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만약 조직 문화와 리더십 개선을 고민하는 기업 내 리더가 이 프로그램의 시청자와 같이 그 변화에 대한 관심과 기준을 내부로 돌려 관찰을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조직 내 문화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보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


관찰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인식과 그에 따른 결정에 언제나 부족함이 있을 수 있음을 지속적으로 인지하려는 태도, 즉 관찰자 스스로에게 도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리더가 이와 같은 태도로 구성원들을 대하고 리더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확인해 갈 때 구성원들 또한 자신의 역할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필요한 일을 하게 될 겁니다.


오늘 한 번 확인해보는 건 어떨까요? 당신이 일하는 업무 공간 내 존재하는 내부 문화 간 충돌을 드러내는 '이 앞 의자' 또는 '팔찌'가 무엇일지 말이죠.





John Curran, Decoding culture podcast "3 myths about Wordkplace conflict"

Ervin Goffman, The Presentation of Self in Everyday Life.

Daniel Beunza, Taking the Floor: Models and Management in a Wall Street Trading Room.

Margert Heffernan, "Dare to Disagree."

Henrietta Moore, Space, Text and Gender.

작가의 이전글 Liste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