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기로울 령 Jan 21. 2020

연대하자면서, 진짜 연결되면?

초연결사회라는 불편한 흐름

굳이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비밀 한 가지씩은 누구나 갖고 있다. 하지만 의도치 않게 은밀한 내 마음, 취향, 혹은 거짓말을 타인에게 들켜버렸 때 알게 된 자와 들킨 자, 혹은 그 주위를 둘러싼 관계는 어떻게 될까?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까? 영화 <완벽한 타인>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아주 직설적으로 관객들에게 묻는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에 관객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어쩔 줄 몰라하며 동공 지진만 일으킬 뿐이다. 혼돈 속에 빠진 관객들을 위해 감독은 진부하지만 깔끔한 설정으로 결말을 마무리한다. 후련한 마음으로 영화 밖을 나서는 관객들이지만 그 뒤로는 ‘그냥 모르고 사는 게 낫다’는 묵직한 메시지가 남는다. 차라리 그게 낫다며 동의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그래도 찝찝하다며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좁혀지지 않는 의견 차이는 영화 속 상황이 영화에서만 그칠 때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 <완벽한 타인> 속 황당무계한 상황은 이미 현실에서 빈번히 벌어지고 있다. 소개팅에 나가기 전 사전 조사 차원으로 상대방의 과거 행적이 담긴 SNS를 염탐하는 건 젊은 사람들 사이에선 흔한 일이다. 서로 연인이 된 이후엔 상대방 사랑의 믿음을 확인하겠다며 스크롤 맨 밑바닥에 잠든 케케묵은 메신저 단체 대화방까지 샅샅이 확인하는 것도 다반사다. 그러다가 반사회적으로 비칠 수 있는 발언과 행동의 티끌이라도 발견되는 날, 뒤지는 사람은 불완전한 상대방에게 실망하거나, 그 불완전한 요소가 야기할 부정적 미래를 그 이후에도 계속 상상하며 관계가 끝나는 날까지 상대를 의심하는 지옥에 갇힌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일상적 행위들이 마치 죽을 죄로 여겨지는 들킨 자에게는 자기가 부정 당했다는 곤혹감과 자기 혐오만 남는다. 알게 된 자, 들킨 자(?) 모두 행복하지 못한 것이다. 이 자들의 혼란과 실망, 애증이 뒤섞인 푸념을 받아내야 할 숙명에 처한 주위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온 국민의 온라인 행적은 국적을 망라한 데이터 회사 곳곳에 쌓여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차곡차곡 쌓이고 있으니. 영화 <완벽한 타인>과 같은 해프닝은 영화 속의 이야기가 아닌 누구에게나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우리의 이야기'이다. 지금 벌어지는 사생활 공개 논란은 그래서 단순 연예인과 스타 셰프의 치부를 알게 됐다고 희희낙락할 일이 아니다. 막아야 하는 걸까? 그전에 우리는 서로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그걸 막을 수 있냐고 되물어야 한다. 마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형상으로밖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걸 자각하는 결말뿐이지만. 그렇다면 이제 우린 사생활에 대해 '알려고 하지 마. 다쳐'가 아닌, '알 수밖에 없을 날이 오는 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대책을 마련해봅시다'라며 범 국가적 회의라도 열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미 데이터 3법이 통과됐다. 비록 비식별 정보를 활용하는 것이기는 하나, 그 비식별 과정 자체가 완전하지 않으니, 어느 순간 모두의 데이터가 온라인 공간에 풀려 서로 알고 싶지 않은, 밝히고 싶지 않은 누군가의 사생활로 인해 세계가 혼돈에 빠지는 디스토피아를 상상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지난 10년 간 개인화된 소통 수단인 SNS가 활성화되면서 이제야 조금 서로에 대해 알게 된 사람들이지만, 연대와 공감 의식은 소수이고, 대부분은 혐오와 불평등, 차별 등으로 혼란과 분열로 들끓고 있는 게 현실이다. 연예인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는 악플도 표현의 자유와 인격 살인으로 팽팽하게 맞붙고 있다. 이 상황에서 누군가의 사생활이 고의든 아니든 만 천하에 알려질 때 가타부타를 판단할 기준까지 합의하게 생겼다. 과연 합의에 이를 수 있을까. 사람들의 인식과 통념은 쉽게 변하지 않은 데, 기술은 너무 급하게 발전하니, 이젠 기술이 사람에 맞춰야 할지 사람이 기술에 맞춰야 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어쩌면 우린 기술이 주는 빛과 그림자의 딜레마에 제대로 갇혀 버린 걸 수도.

매거진의 이전글 혐오는 무조건 나쁜 걸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