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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울 령 Jul 10. 2020

권력형 성범죄에 대한 인식 되돌아보기

혹시 가볍게 생각하진 않았나요?

2018년 내게 가장 충격적인 일은 안희정의 성범죄 사건이었다. 평소 안희정이라는 사람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감정도 없었지만 이상하게 이 뉴스는 내게 너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왜 그랬나 생각해보니, 그는 사람을 위한다는 진보 정치인이었고 나는 '여자'였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민주화 운동을 하고,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던 진보 정치인들의 진심에는 어떤 동기가 있었을 것이다. 감히 그 마음을 헤아릴 수는 없지만, 그 과정의 고생과 수고로움을 생각하면 짐작 가는 바가 있다. 사람에 대한 애정과 사람이라면 모두 존중받아야 마땅한다는 믿음 아니었을까? 그런데 그런 '사람'에 여성은 해당되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그렇다고 본다. 그렇지 않았다면 피해자를 그렇게 대하진 않았을 것이다. 여성으로서 나는 이러한 진실에 많이 아팠다.


서울 시장이 죽었다. 바로 전날 그의 전 비서는 그를 성추행 혐의로 고소를 했다. 이 두 사건의 상관관계는 밝혀지지 않았다. 앞으로도 밝혀지기 어려울 것이다. 한쪽은 영원한 침묵에 들어갔고, 성범죄는 단 둘이 있는, CCTV도 없는 사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러나 그전까지 활발히 의정 활동을 하던 사람이 돌연 극단적 선택을 했다. 합리적 의심을 하기에 충분한 정황이다. 그런데 그가 속해있던 진영에서는 한쪽의 일방적 주장만 있을 뿐이고 실체적 진실이 드러나지 않았기에 추측은 자제해달라고 한다. 그런데 이들은 예전 정권에서 권력형 비리를 다룰 때 구체적 물증이 없으면 사건의 개연성과 인간 본성에 비춰서 '합리적 의심'이라는 논리를 펼치곤 했다. 그런데 그 합리적 의심 논리가 이번 경우에는 맞지 않는다고 한다. 도대체 왜?


최근 성폭행죄로 징역살이 중인 안희정의 모친상에 여권 정치인과 대통령이 조화를 보낸 걸 두고 공방이 일었다. 대통령이 범죄자에게 조의를 표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과 '모친상'까지 애도하지 말라는 건 지나치다는 반박이었다. 바꿔서 생각해보자. 그 범죄가 연쇄 살인이라던가, 그들이 그토록 혐오하는 경제형 범죄였다면 어땠을까? 알고 보니 전두환 씨가 저지른 일과 비슷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었다면? 그래도 옛정을 생각해 조화를 보내려는 마음이 들었을까? 지지자들은 이를 똑같이 '모친상'이니 어쩔 수 없다며 넘겼을까? 사회생활이라고 넘겼을까?


남성들에게 성범죄는 마치 물건을 훔치는 것과 같은 '경범죄'로 여겨지는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할 수 없다. 성범죄를 살인과 같이 여기는 여성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분노하는 것이다.


여성들에게 권력형 성범죄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경제권과 연관된 직업 현장에서 '힘'으로 인간의 주체적 결정권이 위협당했다. 게다가 이런 일에 연루되면 바로 사회적 사형 선고를 받는다. 그런데 이를 경범죄로 보는 게 가당키나 한 걸까? 이는 마치 경제 성장을 이유로 부당하게 약자를 대하던 군부독재와 같다. 자신들이 절대 될 수 없는 처지의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폭력이라는 주장을 무시하는 태도를 취한다는 점에서 같다. 폭력에 저항하던 사람들의 분노를 동력 삼아 현재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비판하는 사람들과 똑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성범죄에 대한 '재교육'이 필요하다. 과거 우리 사회에서 성범죄가 '범죄'로 인식됐던 건 남성의 사유재산인 여성을 함부로 탐한다는 이유가 주요했다고 한다. 마치 내 '물건'을 깨트렸거나 훔쳤다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과거의 인식에 대해서 옳다 그르다 판단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모두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분명한 건 현재 대한민국에서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독립적인 사회 주체라는 것이다. 따라서 성범죄는 기본권을 훼손한 '인권 유린'이다. 여성을 사람으로 본다면 이 명제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맞벌이 가정에서 성별 차별 없이 경쟁하며 자라온 대부분의 Z세대들에게 이는 당연한 명제다. 그렇지 않은 사회에서 자라온 기성세대에게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회는 이미 변했다. 여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 사회에서 나가거나, 적응을 위한 재교육을 받는 게 옳다.


범죄를 저지르고 나서 극단적 선택으로 그 죗값을 치르는 정치인에 대한 여론의 비판적 목소리가 높다. 감정적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범죄자에게 가장 큰 처벌이 '사형'인 걸 생각하면 비판만 하기도 애매하다. 그리고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기에 '범죄를 저질렀다'라는 점을 비판하는 것도 어렵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를 내는 건 언론에서 관성처럼 해오던 죽은 자에 대한 '영웅화' 때문일 것이다. 그가 과거 성희롱 피해자를 변호하고 좋은 시민단체를 만들고 좋은 정책을 폈다고 해도, 극단적 선택 직전 권력형 성범죄로 고소된 점도 분명히 알려야 한다. 이를 감안한 보도도 해야 한다.


그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가타부타하기 어렵다. 말 그대로 진실은 규명될 수 없고, 합리적 의심을 할 만한 정황은 '사실'이니까. 이제부터 하는 건 이 사실을 재료로 역사를 쓰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는 쓰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천차만별로 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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