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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울 령 Aug 14. 2020

상처 받는 사람이 없는 '웃음'은 없다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달려드네"


요즘 온라인에 자주 떠돌아다니는 말이다. 그만큼 누군가에게는 웃음거리인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죽는소리가 되는 일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는 의미일 테다. 실제로 최근 기안84 웹툰에 나온 여성 인턴의 성상납 묘사와 의정부고 학생들이 패러디한 관짝소년단의 블랙페이스가 화제다.


논란의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해명한다. "그냥 웃자고 한 일이었다" 근데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묻고 싶은 게 있다. 그들은 과연 '웃음'을 뭐라고 생각할까? 그리고 우리는 그동안 무엇에 웃었나. 아마도 16세기 영국 철학자 토마스 홉스는 '우월성 이론'을 들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자신이 더 낫다고 생각할 때 자존감이 높아지면서 기분이 좋아져 웃음이 나온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솔직히 나는 처음에 우월성 이론을 듣고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내가 정말 저런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웃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짱구를 굴려도 도저히 다른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이 이론을 듣고 나서 이해할 수 없었던 대중문화 현상이 이해됐다. 최근 가수 비의 <깡> 역주행이 대표적이다. 깡 역주행은 이를 희화화한 콘텐츠에서 시작됐다. 이 콘텐츠가 대박이 난 건 그 안에 담긴 톱 가수의 짙은 허세와 권위 의식을 비꼬는 코드 때문이었다. <무한도전>과 <나혼자산다>, <라디오스타> 등 B급 예능이 히트를 친 것 역시 그 대단하다는 연예인도 사실 시청자인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아니 오히려 그보다 더 이상할 수 있다는 걸 보였기 때문이다. 즉, 웃음은 발화자든 대상자든 그들의 권위가 '격하'될 때 터진다. 그래서 상처받는 사람이 없는 웃음은 없다. 


자신을 낮추며 웃음을 주는 사람은 두 가지 맥락에서 자신을 포장할 수 있다. 나를 비하해도 괜찮을 정도로 '자존감'이 높거나, 나를 낮춰도 타격이 없을 만큼 '권위'가 있다는 포장이다. 실제로 서구권에서 위트가 상위층의 에티켓으로 굳은 것은 이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반면 타인을 낮추며 웃음을 유발하는 사람은 오직 한 가지 맥락에서 자신을 포장할 수 있다. '나는 그 대상을 깎아내려도 권위에 아무런 손상을 입지 않을 정도로 우월하다'


웃음의 이러한 본질 때문에 대중 개그는 저질로 변질되기 쉽다. 개그맨은 수신자인 일반 대중을 비하할 수 없고, 개그맨 자신을 스스로 낮추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높은 분들을 풍자하면 자신들의 생존권이 위험하니, 자연스레 웃음거리는 사회적 소수인 '약자'가 된다.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등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이에 항변할 언어도, 방법도 몰라 그렇게 소비돼 버리곤 말았다. 최근 '여성'과 '성소수자' 등을 희화하는 콘텐츠가 논란이 될 수 있던 건 이들의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또 예전처럼 그저 그렇게 지나갔을 것이다.


만약 웃음의 본질이 누군가의 상처를 딛고 나오는 감정이라면 우리는 '웃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누군가는 이로 인해 자신의 트라우마를 꺼내고, 조롱 당하고, 상처 받아야 한다. 결국 웃음은 누군가의 무엇을 죽이지 않고는 이뤄지기 어렵다. 아니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웃음 없이 살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누굴 비하해야 덜 상처 받을까, 덜 해로울까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대상이 절대 '약자'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약자는 그 약자적 특성만으로도 평생 충분히 고달프고 아프니까. 벼룩의 간을 빼먹듯, 약자의 상처에 소금치는 것 역시 좀생이스러운 짓이다.


아마 이 부분은 서양에서는 '코미디', 우리나라에서는 '풍자와 해학'으로 불리는 말의 어원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코미디라는 장르는 그리스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주로 코미디언들은 당시 권력자들을 풍자해서 웃기는 사람이었고 그들은 항상 권력자들의 눈엣가시였다. 그래서 코미디언들은 도시에서 쫓겨나 지방을 유랑하곤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는 그들이 시골마을(Kome)을 돌아다녔기 때문에 여기서 코미디라는 말이 탄생했다고 말한다.  -EBS 특별기획 통찰 中


풍자와 해학은 주어진 사실을 곧이곧대로 드러내지 않고 과장하거나 왜곡, 비꼬아서 표현하여 우스꽝스럽게 나타내고 웃음을 유발하는 것을 말한다. 작품 속에서 풍자를 이용할 때는 현실적인 권력과 권위를 가진 주인공을 부정적으로 제시하고...우스꽝스럽게 나타낸다. 해학은 그런 인물에게 공격받는 대상에 대한 동정으로 읽는 이에게 그런 상황을 공감하게 만드는 특징이 있다. 가령 《흥부전》에서 '놀부'가 풍자의 대상이라면, '흥부'는 해학적으로 표현되어 동정심을 유발한다. - Basic 중학생을 위한 국어 용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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