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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로울 령 Sep 20. 2020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희망과 기만 사이

영화 <테넷>을 봤다. 감독은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고, 나는 또다시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은 말이 있었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치열하고 주도적으로 운명을 개척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운명론적인 대사가 중요한 순간마다 툭툭 튀어나오니... 당황스러웠다.


의문을 품고 지나간 지 얼마 안 있다가 옛날에 재밌게 본 드라마를 다시 봤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금 현재 상황을 비꼬는 장면들이 여럿 보였다. 분명 몇 년 전에 만들어진 드라마인데, 어쩜 이렇게 미래 현실과 똑같은 상황을 재연할 수 있었던 걸까. 작가는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걸까? 아니면.. 인간이란 원래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종속인 걸까.


좀 더 과학적인 추론은 후자 쪽에 가까울 것 같다. 인간이란 늘 똑같은 실수를 반복해으니까. 쉽게 예전 일을 까먹고 당장 눈 앞의 일에 휩쓸려 지금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는 있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인생은 살기 바쁘고 고달프며 그건 어느 시대의, 누구나 마찬가지니까. 반면 또 그렇기에 치열하게 고민하고 행동해 이 척박한 지구에서 살아 남을 수 있었다. 이분법이 나쁘다라지만 결국 인간은 모 아니면 도의 존재는 아닐련지.


감독은 그 점을 꿰뚫어 본 게 아닐까? 미국 정치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영화 속에 현재 미국 정치사를 풍자하는 코드가 짙게 깔려 있다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 영화 속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말은 영화 결말과 같은 일이 현실화 될 거라는 예언의 의미로 볼 수 있다. 아니면 그렇게 되길 바라는 감독의 소망적 외침일 수도 있다. 사실 결과는 까보기 전까진 알 수 없으니까.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말은 그래서 기만적이다. 마치 90년 대에 종말론을 주장하던 사이비 교주와 같다. 지구가 멸망하면 자신이 옳은 거고, 아니면 "내가 하늘에 열심히 기도한 덕분이다"라면서 내 말과 교리를 더 잘 따르라고 하는 것처럼. 비단 사이비 교주만이 아니다. 우리는 항상 어떤 결과를 받고 승복하거나, 반발하거나, 원인을 분석해 '어차피 이렇게 될 일이었구나'라고 한다. 그래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겐 희망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겐 좌절감을 줄 것이다. 하지만 결과라는 게 꼭 내 마음 먹기에 따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니 희망도 절망도 왠지 부질 없어 보인다.


결국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라는 말을 통해 감독이 표현하고 싶었던 건 뭐였을까?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보통의 히어로물처럼 무조건 희망만 주거나 정답만 강요하려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알쏭달쏭한 영화. 의도한 것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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