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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현욱 Apr 24. 2019

불면의 해독제. 일주기 리듬.

아침 해가 뜨면 일어나 일을 한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잠에 든다.


 이 섭리에는 신체의 원리가 있다. 아침에 더 생생하게 깨어있고, 밤에 더 깊게 잠들 수 있다면 당신의 삶은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생체의 시계.


 우리 몸에는 태양의 주기에 활동과 휴식을 동기화하는 생체 시계가 내장되어있다. 이 시계는 아침엔 각성을, 저녁엔 휴식을 하도록 신체를 조절한다. 유전자 표현의 15%는 이 생체시계의 영향 아래 활동한다. (2017년 노벨 생리 / 의학상은 생체시계를 통제하는 DNA 분자 메커니즘을 밝힌 공로에 수여되었다.)


 태양의 운동에 삶이 연동되는 것을 일주기 리듬(Circadian Rhythm)이라 한다. 낮에는 깨어있고, 밤에는 잠에 드는 것은 단순하게 후천적으로 획득된 습관이 아닌, 우리 몸 본연의 설계이다.


 저녁 9시경, 잠의 호르몬인 멜라토닌의 분비가 시작된다. 10시 반 경, 소화기관의 활동이 줄어든다. 깊은 잠에 적합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아침 6~7시경, 각성과 스트레스의 호르몬인 아드레날린과 코티솔이 분비되어 혈압이 상승한다. 9시경엔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이 고점에 달한다. 10시경엔 각성상태가 최고조에 달한다.


 이러한 연쇄적인 흐름은 우리 유전자에 각인되어 정교하게 조율되어있다. 이러한 흐름을 거스르는 것은 신체의 효율을 떨어트린다. 완전히 각성할 수도, 완전히 휴식할 수도 없다. 같은 시간을 들여 일해도, 같은 시간을 들여 휴식해도, 아쉬운 결과를 얻게 된다.



밤에 일이 잘돼요.


 밤에 일이 잘된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밤의 조용함은 집중을 방해하지 않는다. 낮의 일과 동안 복잡한 사회적 교류를 해야 했다면, 밤의 고요함은 드디어 이완의 조건이 된다. 이완은 창조성이 발현되는 집중 상태에 필요조건이다.


 이러한 습관으로 원하는 결과물을 지속적으로 얻어낼 수 있다면, 이를 반복하는 것을 말릴 이유는 전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창조적 결과물이 일관되지 못하고, 불면이나 불안과 같은 증상이 두드러지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낮의 시간이 바스러지는 것 또한 필연이다. 창조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이러한 함정에 빠지기 쉽다.


 이러한 경우, 삶에 규율을 도입해야 한다. 성숙한 이의 삶에는 일관된 규율이 반드시 필요하다. 삶의 목표를 향한 최대의 효율을 추구하며 삶을 구조화할 필요가 있다. 삶의 규율 없이 성공을 바라는 것은 삶을 도박으로 여기는 것과 같다.



Dis-order


 장애. 특히 정신적인 범주의 장애를 의미하는 영어 표현으로, Disorder가 있다. 질서를 뜻하는 Order에, 고대 그리스어에서 파생된, ‘쪼개진’을 뜻하는 Dis가 접두어로 붙은 단어이다.


 무질서와 정신적 장애가 동음이의어인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삶의 무질서는 정신적 장애를 불러올 수 있다. 의도와 다르게 발현되는 행동. 일관되지 못한 정신의 상태. 지속되는 정신적 고통 등.


일주기 리듬에 맞춰 삶을 구조화하는 것은 Disorder의 해독제가 될 수 있다.


 깊은 잠에 따르는 꿈. 이는 우리의 정신에 가중되는 부하를 해소하는 기능이다. 일주기를 거스르면 멜라토닌이 없어진다. 멜라토닌이 없으면 깊은 잠에 들 수 없다. 꿈도 제대로 꾸지 못한다. 하루 동안 감각에 쌓인 정보와 자극은 매듭 되지 못한 채 빚처럼 쌓인다. 두뇌의 대사적 부산물을 청소하는 깊은 잠의 역할 또한 보류되어, 두뇌의 효율이 점차 떨어진다.


 낮에 활동하지 않으면, 각성을 위해 분비된 스트레스 호르몬 코티솔과 아드레날린은 쓰이지 못하고 남는다. 아침에는 각성제이지만, 쓰일 곳 없는 코티솔과 아드레날린은 스트레스일 뿐이다.


 애초에, 정신적 장애의 근본적 원인이 일주기 리듬을 따르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두뇌의 초기화/최적화 기능인 잠을 이용하지 못하고, 각성 신호를 스트레스 반응으로 허비했다면. 어떤 기계라도 이렇게 쓰면 고장이 생긴다.



잠이 안 오는데요?


현대에 들어, 이 일주기 리듬에는 큰 혼란이 생겼다. 바로 인공조명의 영향이다!


 빛은 일주기 리듬의 가장 주요한 큐 사인이다. 눈 뒤의 뇌, 번연계에 위치한 시교차상핵(Suprachiasmatic nucleus)은 빛을 감지해 신체를 동기화하는 역할을 맡는다. 24시간의 주기 중, 지금이 하루 중 어느 즈음인지 감지하는 것이다.


 청색광은 온전히 낮을 의미하는 시각신호이다. 청색광을 감지한 눈은, 지금을 낮이라 인식한다. 멜라토닌의 생성을 지연한다. 멜라토닌 없이는 깊은 잠에 들지 못한다. 잠을 깊게 잘 수 없으면, 낮에 획득한 기억들을 장기 기억으로 만들 수 없다. 기억들을 조합해 이해를 도출할 수도 없다. 두뇌의 대사 부산물을 청소할 수도 없다. 성장호르몬의 분비 또한 줄어들어 근육량이 줄고 살이 찐다. 물론, 낮에 온전히 깨어있는 것도 어려워진다.


 모니터 스크린, LED 조명, 형광등은 강한 청색광을 내뿜는다. 이에 비해 석양이나 불과 같은 저녁에도 존재했던 빛에는 청색광이 거의 없다.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낮이 아닌 시간대에 청색광은 존재하지 않았다. 잠에 드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현대인은 깊은 잠을 자지 못한다. 이 사실에 모두가 공감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수면장애로 고통받는다. 수면제 처방이 나날이 증가하는 것도, 수면마취제인 프로포폴 남용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는 것도, 불면증상이 사회에 만연함을 나타내는 분명한 신호일 것이다.


 이유가 너무도 명확하다. 인위적인 청색광은 멜라토닌의 생성과 활동을 막는다. 수면의 정상적인 과정이 진행되지 않는다. 문제는, 현대인 거의 모두가 이러한 상황 아래 놓여있다는 점일 것이다. 지금 우리의 환경은, 저녁시간 청색광 차단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이상 수면장애를 피할 수 없다.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수면시간 2시간 이전에는 스마트기기의 사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스마트기기의 스크린을 일주기에 맞춰 청색광의 양을 조절하도록 설정해야 한다.(iOS, OSX에는 내장된 기능이 있으며, 안드로이드나 PC에는 f.lux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실내의 조명을 할로겐과 전구색으로 교체할 필요가 있으며, 적색-주황색의 야간 조명을 따로 구비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이러한 모든 주의를 기울이더라도, 저녁시간의 외출은 가로등, 차량의 헤드라이트, 간판의 청색광에 안구를 노출시킨다. 이에 대비하는 청색광 차단 안경이 존재하지만, 아직 한국에서 제대로 된 것을 쉽게 구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스스로 수면에 문제가 없다 여기고 있더라도, 저녁시간 청색광 차단은 수면의 질을 큰 폭으로 상승시켜 낮의 각성도와 생산성에 큰 이점을 줄 것이다. 청색광에 방해받지 않는 멜라토닌 회로를 지닌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크로노타입 (Chronotype)


 모두가 똑같은 일주기 리듬을 지닌 것은 아니다. 약 2시간가량의 개인차가 있으며, 이는 유전적 요인에 따른다. 이러한 개인차를 크로노타입이라 한다.


크게 보았을 때 4가지의 크로노타입이 있다.


돌고래 타입은 깊게 잠에 들지 않는 사람을 뜻한다. 예민하고 섬세한 성격의 소유자인 경우가 많다. 하루 6시간 이상 잠에 들기 어려우며, 수면장애로 가장 고생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사자 타입은 일찍 일어나 일찍 잠에 드는 타입이다. 하루 중 아침에 에너지가 가장 많다. 적극적인 리더 타입의 성격이 많다. 수면량은 보통이다.


늑대 타입은 늦게 일어나 늦게 잠드는 타입이며, 저녁시간에 에너지가 많아진다. 창조적인 성격의 소유자가 많으며, 수면량은 보통이다.


곰 타입은 늦게 일어나 일찍 잠에 드는 타입이며, 인구의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사회적이며, 성격 좋은 사람이 많다.


 이 크로노타입은 생애 주기에 따라 변화하지만, 21세에서 65세의 성인의 시기 동안에는 일관되게 유지된다고 한다.


 이런 개인차가 있지만, 12시 넘어 잠에 드는 것은 어떤 사람에게도 이상적인 수면 패턴이라 할 수 없다. 또한 수면에 8시간 이하를 할당하는 것을 지속하는 것은 바람직한 습관이라 할 수 없다.



동기화! (Circadian Rhythm Entrainment)


 낮이라는 신호를 강하게 주는 것. 낮시간에 밝은 빛을 쬐는 것은 일주기 리듬을 동기화하는 좋은 방법일 수 있다.


 햇빛의 직사광선 5분 이상 노출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고출력의 조명을 구비해 아침에 쬐는 것도 좋다. 이렇게 낮의 신호를 분명하게 각인시키는 것은, 낮의 각성도를 높이고, 밤의 휴식 또한 강화한다.


400w Metal Halide Lamp


 낮동안 밝은 빛을 쬐지 못하면 우울증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한 실험에서는 우울증을 앓는 피험자를 밝은 조명에 노출시키는 것이, 운동을 처방한 경우에 비해 2배의 우울증 개선 효과가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도 했다.


 저녁시간 청색광을 제한하는 것과 더불어, 낮시간 강한 빛을 쬐는 것은 효과적인 실천이다. 이처럼 일주기 리듬을 설정하는 실천들을 ‘일주기 리듬 동기화’(Circadian Rhythm Entrainment)라 한다.


 카페인과 같은 각성제의 섭취를 오전 시간으로 제한하는 것. 적절한 식사로 아침을 시작하며, 수면시간 2-3시간 전에 마지막 식사를 마치는 것. 낮에 짧은 운동을 통해 신진대사를 점화하는 것, 너무 늦은 시간에는 격렬한 운동을 자제하는 것.


일주기 리듬을 동기화하는 대표적인 실천들이다.


 영양분, 카페인의 대사는 유전적인 개인차가 있다. 저녁시간에 섭취한 단백질이 수면을 방해할 수 있다. 카페인 대사에 2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6-8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탄수화물이 충분하지 않으면 잠에서 자주 깨는 경우도 있다. 운동으로 인한 각성이 지속되는 기간 또한 사람마다 다르다. 이러한 개인차는 경험을 통해 최적화해 나가도록 하자.


농사꾼이 물길을 내 물을 끌어 대고
화살 만드는 장인이 화살을 곧게 하며
목수가 나무를 다듬듯이
선한 이는 자기를 지혜롭게 대한다.

법구경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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