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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Aug 04. 2019

참지 않고 화내는 여자  

 상냥하고 나긋나긋하던 그녀들이 변하는 이유

회사다니던 시절, 나보다 5살 많은 친한 언니와 점심을 먹으러 갔을 때의 일이다. 늘 그렇듯 모든 식당들이 회사원들로 붐벼서 줄을 서 있었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어 식당 안을 둘러보니, 3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넉넉한 2인석이 먼저 자리가 나서 세팅이 되어 있었고, 그 뒤로는 딱 2명이 비좁게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정리중이었다. 식당 아주머니는 우리에게 그 넉넉한 테이블로 자리를 안내해주려다가 힐끗 우리 뒤에 줄서있는 남자 2명 손님을 보더니, 갑자기 그 좁은 테이블로 안내해주셨다. "날씬한 아가씨들이니까 여기 앉아도 되겠죠~^^" 라며..


흔히 겪는 일인데다 일단 자리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나는 그쪽으로 가려고 하는데, 그 순간 언니가 아주 화난 얼굴로,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그냥 순서대로 저희 자리 주세요." 나와 아주머니는 순간 주춤거렸고, 결국 그 넉넉한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나는 중고등학교 모두 남녀공학을 나왔는데, 배식해주시는 아주머니께서 늘 밥을 남학생들보다 적게 주셔서, 항상 식판을 내밀며 "저는 밥 많~이 주세요" 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친구들도 모두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철근도 씹어먹을 것 같은, 혈기 왕성하고 늘 배고픈 여고생이, 남고생보다 적게 먹는다는 편견을 왜 가지고 있는 것일까? 설사 그렇다고 해도, 배식은 똑같이 해줘야 하는것 아닌가?


갑자기 그 언니를 보며 그때 생각이 났다. 언니는 자리에 앉은 뒤로도 불쾌하다는 듯이,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언니가 참 예민한 구석이 있네' 라고 생각했지만 별말 없이 넘어갔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내가 그 언니와 비슷한 나이와 경력이 되자, 그 언니의 그 '예민한 구석'을 나 또한 자연스레 장착하게 되었다.  


핵심은 이것이다. 이런 일을 '한두번 겪은' 것이 아니라는 것. 즉, 그 언니도 나처럼 순진무구(?)하게, 얼떨떨한 표정으로 자리 양보를 여러번 당해본(!) 경험 끝에, 더이상 그런 상황이 오면 참지 않고 '내 자리'를 제대로 달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연륜이 쌓인 여자는 참지 않는다. 아니, 참기 싫어진다. 이전의 경험으로, 이것은 부당하고 아주 기분이 나쁘다는 데이터 베이스가 충분히 쌓여있기 때문이다.


나도 점점 더 '사납고 냉정하고 퉁명스러운' 사람이 되어갔다. 왜냐하면 경력이 쌓이면서 일의 전후 사정이 보이고, 상대방의 저의가 보이며, 내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도 계산이 되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 좋게 웃으며 몇번 비싼 밥을 사준 후 귀찮고 단순반복적인, 고생스럽지만 티도 안나는 업무를 떠넘기려는 사람, 가고 싶은 부서로 갈 수 있게 해준다는 식의 미끼를 흘리며 비밀스러운 내용을 자꾸 물어보는 사람, 업무 이야기를 하자며 밤늦은 시간에 와인 마시자고 불러내는 사람, 잡담하는 척 다가오며 은근히 이것저것 캐물어보는 사람, 내 직속 상사도 아닌데 내가 마치 자신의 부하직원인 양 이것저것 지시하며 갑질하려는 사람 등등... 다양한 진상들이 회사에는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나를 그저 '여'직원으로 대하려는 사람도 눈에 보인다. 그것도 아주 기분이 더럽다. 그 눈빛은 마치, 나를 '직장 동료'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무실 한켠에 놓여있는 꽃병이나 액자 정도로 보는 눈빛이다. 바빠죽겠는데 파티션 옆까지 바짝 붙어서서 시덥지 않은 농담이나 사적인 질문을 던지고, 바쁜 사람을 귀찮게 하며 쓸데없는 말을 건다. 그리고 아무 관련도 없는 회식자리에 자꾸 끼워넣으려고 하거나, '미혼'이라는 이유만으로 업무상 만나는 모든 미혼의 남자 직원들을, 잘해보란 식으로 갖다 붙이곤 자기들끼리 재밌다고 시시덕거린다.


사람좋게 장난을 걸고 웃던 그 얼굴은, 정작 내가 업무 협조 요청차 연락을 하거나 자신이 일 때문에 바쁠 때면, 언제 그랬냐는듯 냉담한 거절이나 차갑고 사무적인 태도로 순식간에 바뀌어버린다.


이 모든 일들을 겪으면서, 나도 더이상 얼떨떨하게 당하는(?) 상황은 잘 생기지 않았다. 성적인 농담을 던지는 동료에게도 더이상 못들은 척하거나 억지로 웃어주지 않고, 그냥 빤히 쳐다보며 말없이 응시하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절대로 예의상 웃어주거나 친절하게 대하지 않게 되었다. 나를 보호하고, 적당한 선을 지키려는 것이다. 연차가 쌓일수록 할일과 책임감은 무거워지는데, 거기에 어떤 '여자'로서의 프레임까지 씌워져있는 것에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예전에 유관 부서의 한 임원이, 내가 보고하러 갈 때마다 내 옷차림에 대한 칭찬을 꼭 한마디씩 하곤 했다. 나는 그것이 너무나 불쾌하고 찜찜했다. 내 보고 내용을 듣고는 있나? 내가 하는 일이 우스운가? 라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너는 사무실의 꽃일 뿐이야' 라고 계속 알려주는 것 같은 느낌이라면 오바일까?


칭찬이라고 할지라도 상대방의 기분을 불쾌하게 하는 '외모' 언급이 성희롱이 될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는 나도 명확히 알지 못했다. 잘 알지 못할 때는, 어색하게 웃으며 넘어갈 수 밖에 없게 된다. 겁이 나거나 두려울 때도 그렇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여자들은 잘 참고 잘 웃고 상냥하고 착한 여자아이로 자라는 것이,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내면화되어 있는 것이다.


나는 남편을 보면서 이것을 더 명확히 깨달았다. 가끔 우리 부모님은, 사위를 좀 어려워하실 때가 있다. 남편이 잘 웃지 않기 때문인데, 사실 남편은 아주 다정하고 나에게는 참 만만하고(ㅋㅋ) 자상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도 그렇다. 나는 남편이 잘 웃지 않는다는 사실도 몰랐다. 부모님 얘기를 듣고서야 그렇다는걸 알았다. 남편에게 얘기했더니 화들짝 놀라며 "내가 그랬어? 나 그래도 평소보다 엄청 많이 웃은건데..." 라고 의아해했다.


남편은 살면서 억지로 웃어야 할 일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하는 일의 특성상, 잘 보여야 하는 직속상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서비스업도 아니며, 남자니까 상냥하고 친절하게 행동하라는 강요도 없다. 그냥 무표정하고 별로 친절하게 말하지 않아도 남자다운 것이 되고, 오히려 진중하고 신뢰감있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며느리'인 내 입장은 '사위'인 남편과는 입장이 많이 다르다. 마치 '남직원'과 '여직원'의 차이같다. 나는 누가 그러라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생글생글 웃으며 시부모님께 살갑게 굴고, 안부를 물으며, 친절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그 상냥함과 친절함이 여자에게는 '기본 매너'처럼 여겨지는 것이 나는 싫다. 아름다움 조차도 기본적인 매너이자 자기관리가 된다. 그걸 위해 엄청나게 노력하고, 끝없이 자기 검열을 하며 돈과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나이 마흔에 가까워오니 웃을 일보다 화낼 일이 더 많아진다. 아이까지 낳고나니 더 그렇다. 부조리한 일들은 너무나 많고, 부당하고 억울한 일들도 너무나 많이 일어난다. 아이를 지키자니 화내고 분노해야 할 일이 도처에 널려있다.


39년동안 여자로서 내면화된, '착하고 부모님 선생님 말씀 잘 듣고 화내지 않고 모범생스러운', 예쁘고 귀여운 여자아이는 점점 작아져간다. 대신에 나 자신을 지키고, 내 아이를 지키고, 내 인생에 있어 이루고 싶은 성취와 내게 소중한 것만이 그 자리를 채워간다.


나이가 들며 이해심이 많아진다는 말은 거짓말인것 같다. 오히려 더 참기 싫어지며, 더이상 쓸데없는데 에너지 소모를 하고싶지 않으며, 내게 정말 소중한 것들로만 취사선택하여 내 인생을 채우고 싶어진다. 그것만으로도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짧은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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