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ina Jul 28. 2019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말..

자기만의 '때'에 집중하기

중학생 때 나는 넥스트의 팬이었다. 정확히는 신해철의 팬이었기에 넥스트도 좋아했다. 그 당시 나와 가장 친한 친구 S도 그의 팬이었다. 우리는 매일 학교에서 만나면 전날 들었던 그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대해서, 그의 음악에 대해서 수다떨곤 했다.


모든 음악을 CD 플레이어로 듣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나는 넥스트 새 앨범이 나올 때마다 망설임없이 구입했고, 신해철이 참여하는 프로젝트성 앨범이나 싱글 앨범도 모두 구매했다. 한창 활발히 활동할 때라 앨범이 꽤 많았는데, 중학생이 사기에는 적지 않은 돈이 들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좋아하는 취미 활동에는 돈을 아끼지 않던 나였기에, 망설임없이 용돈을 탈탈 털어 열심히 CD를 사 모았다.


하루는 새 앨범 발매 소식을 듣고 S와 함께 사러 가기로 했다. 1996년도에 나온, 윤상과 신해철이 함께 만든 '노댄스' 앨범이었다. 지금도 정확히 기억이 난다. 구입하자마자 앨범 자켓을 S와 함께 길에서 들춰보며, 신나서 꺄르르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S는 그 앨범을 구입하지 않았다. 자신은 넥스트 정규 앨범이 나오면 구입하겠다고 했다. 나는 그 '노댄스' 앨범을 그 후로도 오랫동안 아주 즐겁게, 열심히 들었다. 참 마음에 드는 앨범이었다.


그 후 고등학생이 된 후에도 넥스트 앨범이 계속 나왔는데, 어쩐 일인지 S는 계속 구입하지 않았다. 나와 함께 CD를 사러 가주기는 했지만 본인은 구입하지 않았다. 왜 안사냐고 물어보니, 자신은 대학에 붙은 이후에 모든 앨범을 한꺼번에 사서 그때 들을 계획이라고 했다. S의 어머니께서 엄하신 편이고, 평소 공부를 워낙 잘하는 S였기에 그런가보다, 싶었다. 그리고는 잊어버렸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더 이상 넥스트에 관심이 없는 여대생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열성적으로 사 모으던 CD들을 뒤로 하고 우리는 곧 다른 음악에 빠져들었고, 대학 생활에 적응하느라 바빴다. S가 결국 넥스트 앨범을 한꺼번에 구입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이제는 각자 결혼해서 아이 엄마가 되어, 가끔 그 시절을 생각해본다. 내 학창시절의 플레이리스트는 이승환과 신해철, 넥스트, 듀스, 자우림 등이었는데, 지금도 그때 즐겨듣던 노래를 들으면 그 시절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때의 기분과 내 마음과 생각들이 음악과 함께 떠오르는 것이다. 그리고 넥스트를 한창 열렬하게 들었던 그 시절의 나와 S, 그리고 그때 했던 S의 말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함께 팬심을 간직했던 유일한 친구 S와 함께, 넥스트의 전 앨범을 온전히 즐기고 공유하지 못했던 것이 마음 한켠의 아쉬움으로 남아있는 것 같다. 아주 사소한 아쉬움일 수도 있지만, 그때의 우리에게 음악은 사소하지 않았다.


그때 S에게, 엄마 몰래 CD를 그냥 사버리자고 권했다면, 아니 내가 선물이라도 해주었다면, 우리는 더 신나고 재미있는 중3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그때 좋아했던 음악은 그때 뿐이다. 시간이 흘러서 아련하게 추억해볼 수는 있겠지만, 그때의 그 열렬했던 마음과 열정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16살 중학생의 마음을 흠뻑 취하게 만들고, 한껏 설레게 만들었던 그때의 넥스트 노래는, 우리에게 그 시절에만 존재했던 것이다.


몇 년 좋아하다 말아버릴 음반 같은거, 안 사서 돈 굳었네,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참 안타까울 것 같다. 몇 년 좋아하다 마는 그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일 것 같기 때문이다. 이후로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몇 번이고 했다. 그리고 그때의 아쉬움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해, 나는 항상 나의 즐거움에 가장 충실했다. 언제나 마음이 가장 끌리는 쪽을 선택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마음이 끌려서 했던 선택에는 절대 후회가 없었다. 오히려 그때 '지금 이런 것이나 할 때인가' 싶어서 망설이다가 늦게 시작해서 후회한 적은 있었다.


나는 아이를 낳고 39살이 되어서야 대학원에 들어가서 원하는 공부를 하고 있는데,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직장을 좀더 일찍 때려치고(!) 대학원에 좀더 일찍 들어왔었더라면, 아이를 낳기 전에 이 공부를 시작했었더라면, 어땠을까...? 좀더 수월했을까? 최소한 체력은 지금보다 좋지 않았을까? 좀더 머리도 빠릿빠릿하게 잘 돌아가지 않았을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었다. 정신승리, 내지는 자기합리화인가 싶어서 여러번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20대와 30대 내내 나는 대학원에 갈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 때는 직장생활이 너무 좋았고, 노는 것이 즐거웠고, 일하면서 돈을 버는 것이 재미있었다. 일기장에도 써 있다. 되도록 오~래 오래, 가늘고 길~게 회사를 다니고 싶다고.


그때는 '때'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모두가 자기만의 때, 자기만의 타이밍이 있는 것 같다. 어른들이 예전에,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고 하셨던 말씀이 이해가 간다. 그리고 그 '때'라는 것은, 사람마다 다른 것 같다.


나만 해도, 35살 이전에는 결혼에 1도 관심이 없고, 공부에도 관심이 전혀 없었는데, 어느새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하루의 대부분을 공부를 하며 보내고 있다. 지금은 공부가 너무 재미있다. 시간을 최대한 아껴서 공부에 투자하려고 엄청나게 노력하고 있다.


내가 느끼는 '재미'의 종류도 나이가 들면서 바뀌는 것이다. 예전에는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이 즐겁고, 새로운 곳에 여행가는 것이 좋았다면, 지금은 공부를 하면서, 조금씩 발전해가는 내 모습을 확인하고,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가장 '재미'있다.


20대에는 혼자 배낭을 메고 인도여행을 떠날 정도로 새로운 곳을 좋아하던 나였는데, 지금은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남편과 아이와 집에서 뒹굴며 노닥거리는 것이 가장 재미있다.


참 신기한 것은, 남편도 젊었을 때 혼자 인도여행을 다녀왔다는 사실이다. ㅎㅎ 연애할 때 이 이야길 하다가 서로 신기해했다. 그랬던 남편도 지금은 아이와 집 앞 공원이나 마트에 가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얘기한다.


흔히들 '그거 해서 뭐할껀데?' 라는 이야길 하는데, 꼭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좋아서 하는 일도 존재한다. 먹고 사는게 힘드니 어떻게든 시간과 에너지 소모를 줄이고, 실용적인 길을 가려는 심리도 이해는 되지만, 왠지 좋아하는 것, 왠지 끌리는 쪽으로 가는 것이 어떻게 보면 가장 확실하고 빠른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20대~30대 시절에 이렇게 '그냥 좋아서 무언가에 몰두하는' 시간을 갖지 못했던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 뒤늦게,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뭐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지?'라는 질문에 맞닥뜨리고 방황하게 된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것으로 가는 과정도 중요하지 않을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위해 힘들게 노력해서, 결국에는 그것을 성취하는 그 과정이야말로 '진짜' 재미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온전한 '내 것'이 된다. 내가 좋아서, 내 선택으로, 내 힘으로 성취하는 과정들은 참 재미있고, 그것이 또다른 도전을 부르고, 또다른 성취로 이어지면서 선순환을 만들어낸다.


그 진짜 재미를 알기 때문에 초반의 지루하고 단순 반복적인 과정도 참고 견딜 수가 있는 것이다. 진짜 재미는 나중에 오니까. 내가 힘들수록 나중에 더 짜릿한 재미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아니까. 그런 것들이 결국 오래 버틸 수 있는 힘이 된다.

















작가의 이전글 30대 - 첫 독립, 그리고 불금(!)의 추억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