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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Aug 11. 2019

난 이대로도 예쁜것 같아

스스로의 외모에 만족한다는 것은

내가 유일하게 하는 SNS는 카카오톡 뿐인데, 요즘에는 과제나 업무하는데 있어서도 꼭 필요하고, 가족, 지인, 친구들과 서로의 새 소식에 대해 알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기 때문에 없애지 못하고(?) 남겨두었다.

싸이월드도 조금 하다 말았고...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은 (귀찮기 때문에) 아예 시작할 생각조차 못해보았다.


아무튼,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가끔 바꾸는데 친한 친구들로부터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다. "넌 사진 잘 안나온 것도 잘 올리더라" "예쁘게 나온것 좀 올리지~"


사실 내 나름대로 잘 나왔다고 생각하는 것만 골라서 올린 것인데도 이런 얘길 종종 듣는걸 보면, 보정 어플을 쓰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별로 생각없이 사진을 올려서 일 수도 있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내 외모에 더 이상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왜냐하면, 외모가 더 이상 내 인생에 큰 영향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결혼도 했고 애도 낳은 아줌마가 되어서 일까? 그런 이유도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경험상 '내가 나 자신에게 스스로 만족하는 상황'이 될 때 자연스레 외모에 대한 관심이 멀어지는 것 같다. 내면의 나와 현실의 나 사이의 간극이 좁혀질 때, 마치 내게 꼭 맞는 옷을 입은 듯 편안해지고, 외모보다는 내면에 더 집중하게 되면서, '그래서 뭐 어쩌라구' 라는 마인드가 생긴다.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나서 가장 좋았던 점이, 더 이상 매일 화장하고 구두를 신을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나 조차도 이것에 자유로움을 느낄 줄은 몰랐다. 집에만 있으면서 꾸밀 일이 없으니 우울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때는 예쁘게 화장하고 잘 차려입은 내 모습이 좋았고 꾸미는 일이 즐겁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거기에서 자유로워지고 보니, 훨씬 더 좋았다.


여자로 살아가면서 외모 지적은 마치 숨쉬듯이, 밥먹듯이 듣게 되는 것이 일상이다. 내 외모도 단점 투성이라서, 살면서 수없이 많은 지적을 들었다. "치아 교정하면 예쁠텐데 왜 안해?"  "그 점은 왜 안빼?"  "쌍꺼풀이 짝짝이인데 왜 교정 안해?" "살 조금만 더 빼면 정말 예쁠것 같아." 등등...


지적받은 내용 중에 신경쓰인 것도 있었지만 결국은 하나도 시정(?)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내 생각엔) 별로 티도 나지 않는 약간의 발전(?)을 위해 돈을 써가며 아픔(!)까지 참고 싶지 않았고, 그만큼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그렇게까지 예뻐질(수도 없겠지만) 이유나 동기가 없기 때문이다.


나를 가장 사랑하는 부모님 조차도 그랬다. 고3때에도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하신 적이 없으셨던, 왠만하면 잔소리를 절대 하지 않으시는 우리 아빠조차도, 언젠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


"니나야, 우리 어머니는, 그러니까 너희 할머니는, 10남매를 키우고 살림하시면서도 할아버지께서 퇴근하실 시간이 되면 단정하게 머리를 빗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으셨어. 남자는 다 똑같단다. 아무리 남편이 널 사랑한다고 해도, 여자는 단정하고 예쁜 모습을 보여줘야 해."


"....?"


육아로 심신이 지칠대로 지쳐, 세수는 커녕 맘편히 화장실에 큰일을 보러 갈 수 조차 없을 시절(아이가 껌딱지라 조금만 떨어지려 하면 울어제꼈다 ㅎㅎ), 머리는 산발한 채로, 모유수유로 흘러나온 젖이 말라 비틀어진 티셔츠를 입고, 10킬로 넘게 불은 체중을 다 빼지 못한 채, 아이를 안고 아빠가 사온 초밥을 허겁지겁 우겨넣는 상황에서 그런 말씀을 하셔서, 나는 그저 어리둥절했다.


그때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는데, 일단 말할 기력도 없었고, 입을 열기 시작하면 너무 화가 날 것 같아서, 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방향은 조금 이상하게 나갔지만, 고생하는 딸이 안쓰러운 마음에서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냥 가만히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는 육아를 적극적으로 해본 세대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는 것이다. 육아에 적극 참여하는 우리 남편은, 외모 언급은 커녕 서로의 생존 여부만을 확인하며 사는 것을 너무나 당연한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육아라는 전쟁터에서, 우리는 1분 1초를 다투며 교대 근무 해주어야 하는, 치열하고 성실한 육아 파트너로 임무 수행 중인데, 외모가 다 무엇이냔 말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한 2년 동안은, 서로 밥도 교대로 먹고, 잠도 교대로 잘 수밖에 없다. 24시간 내내 공백없이 빼곡하게, 누군가는 쉴새없이 아이를 돌보아야 한다. 아이를 돌보는 동시에 누군가는 나가서 일을 해야 하고, 누군가는 집에서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해야한다. 그런 일종의 비상 상황에서, 외모가 눈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그렇다고 내가 외모에 관심이 없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예쁘고 잘생긴 것을 좋아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성을 볼 때 외모 거의 안봐요' 같은 말이야말로 정말 못 믿을 얘기라고 생각한다. 마치, '남녀 사이에도 친구가 가능하다'는 것과 비슷한 류의 거짓말이다.


당연히 외모'도' 봐야 한다. 결혼하면 외모 다 필요없다? 꼭 그렇지도 않다. 남편의 외모가 마음에 들면 싸울 때도 조금 마음이 누그러진다. 그렇다고 남편이 잘생긴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외모를 가진 우리 남편과 싸울 때 내가 느낀 점이다. (가끔 화나있을 때 조차도 귀여워보일 때가 있다. ㅎㅎ)


결혼하고 아줌마가 되었다고 해서, 여자로서의 본능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아줌마가 되어도 여전히 예뻤으면 좋겠다. 화장을 잘 안하고 시술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외모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 나름대로는 외모에 신경을 쓰며 살고 있다. 몸무게를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운동도 하고, 매일 저녁 세수하고 나서 피부 상태가 어떤지도 살펴본다.


단지 예전처럼 '남들의 시선'에 맞는 미적 기준에 도달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신경도 많이 쓰이지 않는다는 점이 다른 것 같다. 이제는 어떤 것이 나에게 어울리는지, 어떤 것이 어울리지 않는지도 자연스레 알게 되었고, 더 이상 외적으로 과감한 시도나 모험도 하게 되지 않을 뿐더러, 더 무언가를 얻으려고 하기 보다는, 이미 '가진 것에서' 좀더 잘 가꾸고 유지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쪽으로 옮겨갔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기괴하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비슷하게 아름다운, 정형화된 아름다움의 기준을 확인할 때이다. TV속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어쩌면 저렇게 얼굴에 점이나 주근깨가 하나도 없을 수 있을까? 어떻게 치아가 저렇게 깎은 듯이 고를 수가 있을까? 어떻게 갓 미용실에서 나온듯한 머리 스타일을 계속 유지할 수가 있을까? 물론 시청자의 보는 즐거움도 중요하고, 얼굴로 먹고 사는 직업이니 관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우리나라의 그 도식화된 미적 기준은 참 지루하다.


몇해 전 인기를 끌었던 '비긴 어게인'이란 영화에 나왔던 키이라 나이틀리를 보며, 이상하게 뭔가 눈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이미 TV나 스크린 속의 깨끗하고 티없는 배우들의 피부에 익숙한 내 눈에, 군데 군데 점이 보이고, 치아가 고르지 않고, 턱이 살짝 주걱턱인 그녀의 얼굴이, 부스스한 머리와 납작한 가슴이, 계속 눈에 걸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체적인 키이라 나이틀리의 모습은 예뻤다. 그냥 자연스럽고 예뻤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라스트 나잇'이란 영화 속 그녀의 모습이 훨씬 더 도시적이고 예쁘게 나오는데, 그녀는 '노브라'인 상태로 영화 속 남편의 회사 파티에도 참석하고, 집에 와서는 그 납작한 가슴과 마른 몸매를 그대로 드러낸 채 남편과 말다툼도 벌인다. 그 와중에도 참 예쁘다. 중간에 빡세게(!) 꾸민 모습도 나오는데, 그것도 물론 예쁘다. 개성있게 예쁜 그녀의 모습을 보는 것도 즐겁고, 영화 배경이나 그녀의 집 인테리어도 참 예뻐서 보는 즐거움이 있었던 영화였다.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말이 있다. 마흔을 코앞에 둔 지금, 내 얼굴을 보면서 그 말의 무게를 실감한다. 사람들을 볼 때도, 구체적인 생김새나 얼굴의 결점 같은 것들은 더 이상 크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대신 그 사람의 성정이나 색깔을 드러내는 눈빛, 말투, 목소리, 냄새, 전체적인 분위기 같은 것들이 크게 다가온다. 때로는 그것이 너무 훅 느껴져서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말하지 않아도 그냥 느껴지는 것들이 많아진다. 그래서 때로는 불편하기도 하다.


좋게 말하면 직감이나 연륜이겠지만, 나쁘게 말하면 편견과 고정관념 역시 늘어가는 것이다. 나의 경험 데이터에서 나오는 호불호가 생기니, 그 사람을 제대로 겪어보기 전부터, 어떤 인상이나 느낌이 안 좋게 느껴지면 일단 거리부터 두게 된다.


더불어 나 자신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나도 좋은 느낌의 목소리와 눈빛, 인상을 가지고 있을까? 내면의 나와 현실의 내가 점점 더 가까워지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기색이 겉으로도 드러날까? 편견과 아집에 사로잡힌 고집 센 모습으로 보이지는 않을까? 그런 것들을 계속 신경쓰면서 살고 싶다. 무엇보다도 내면적으로, '이대로도 예쁜' 나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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