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ina Sep 24. 2019

마흔, 잔치는 끝났다?

진짜 재미는 '애프터 파티'에서

"이제 너도 '아줌마'네."


결혼 후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은 친구가 축하의 말 뒤에 이렇게 덧붙였을 때도, 별 감흥이 없었다. 그렇고 말고, 나 아줌마지. '아줌마'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와 뉘앙스를 물론 잘 알지만, 그게 뭐 어때서.


난 내가 아줌마가 된 것이 좋았다. 혼자서 불친절한 부동산 아저씨를 대하며 이사를 다니는 것도, 아이를 갖고 싶은데 못 가질까봐 불안해하는 것도, 회사에서 나이많은 싱글이라는 이유로 유부남들이 치근덕 대는 것도, 모두 지쳐갈 때쯤이었다.


며칠 전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른 후 거울을 보다가, 한 두개 정도 있었던 흰 머리를 열개 가까이 발견했을 때도, 좀 놀라긴 했지만 충격적이진 않았다. 올게 왔구나, 정도의 느낌이었다. 유독 피곤할 날에만 여러 겹으로 겹치던 한쪽 눈의 쌍꺼풀이, 이젠 전혀 피곤하지 않은 날에도 여러 겹이 되어 짝눈이 되었을 때도, 그러려니 했다.


정작 내가 젊음이 점점 내게서 멀어져가는 것을 분명하게 느꼈을 때는, 간절히 무언가를 바라거나 원하는 것이 없어지는 마음이었다. 무얼 봐도 심드렁한 느낌. 열정의 불씨가 사그러져 가는 것을, 조금 씁쓸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기분이랄까.


그렇게 좋아하던 여행도, 어느 순간 그렇게 설레고 좋지가 않았다. 집이 제일 좋다. 여행을 가더라도, 쾌적하고 편안하고 있다가 오고 싶다. 예전처럼 모험 비스무레한 것을 하려고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


대학원에서 20대 동기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엄마 미소가 지어질 때가 있다. 어른들이 예전에, 왜 젊음 그대로 아름답다고 하는지 알것 같다. 생김새와 상관없이 그들의 표정, 눈빛, 제스처, 말투, 모든 것이 마냥 귀엽고 예뻐보인다. 만약 내가 지금 그렇게 행동한다면, 주변 사람들이 무서워할 것이다. ㅎㅎ


'아줌마'라는 단어가, 약간 여자를 후려치기 하는 의도로 쓰일 때도 있지만, 솔직히 그 의도가 잘 안 통할 때가 꽤 많다. 사람들은 모든 여자가 '더 이상  젊고 예쁘지 않으며, 잠재적인 연애 상대로 보이지 않게' 되는 나이 또는 상태에 접어드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여기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여자'로서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생각보다 여자에게 그렇게 대단하고 중요한 이슈가 아니다. (물론 안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나는 '아줌마'가 되고 나서 안도했다. 아줌마는 남자와 여자, 그 중간 어디쯤에 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바라던게 아니던가. 조신할 필요도 없고, 아름답고 '영'해 보이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잠재적인 누군가의 연애 상대로 보일까봐, 또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까봐? 걱정할 필요도 없다.


물론 요즘 아줌마들은 다들 날씬하고 예뻐서 애엄마와 아가씨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지만, 어쨌거나 심리적인 '아줌마스러움'은, 나에게 이득이 훨씬 더 많았다. 나는 좀더 과감해질 수 있었다. 좀더 뻔뻔하고 노골적이고 거침없어도, '아줌마니까' 괜찮아지는 부분이 있었다.


과감해진다고 해봤자 아주 작은 것들이다. 모르는 사람과도 스스럼없이 얘기를 나눌 수 있고, 체면 치레나 타인의 시선에 좀 둔감해지며, 별로 안 친해도 부탁을 잘 하고, 거절 당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정도이다.


그런데 이게 꼭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서, 는 아닌 것 같다. 결혼을 했던 안했던, 아이가 있던 없던, 누구나 나이가 들어가며 좀더 둥그스름 해지고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ㅎㅎ), '아줌마', '아저씨'가 되어간다. 다만 아이가 있으면, 온 신경과 에너지가 아이에게만 집중되기 때문에 좀더 빨리 내려놓게(?) 될 뿐이다.


나는 내년에 드디어(!) 마흔이 되는데, 솔직히 지금이 참 좋다. 내가 서른 아홉이라는 것이, 다행스럽다. 20대, 30대를 정말 치열하게 보냈고, 너무 힘들기도 했고, 방황도 많이 했기 때문에, 그 시절을 무사히 지나와서 '지금의 나'로 살아간다는 것에 감사하다. 나에게 다가올 40대가 기대가 된다.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또 다른 진짜 '재미'가 있을 거란 확신이 든다.


20대와 30대까지는, 세상을 '경험'하는데 초점을 두는 시기였다. 파티의 주인공, 같은 느낌이었다. 싫거나 좋거나, 파티장으로 나가서 무언가를 계속 찾아 헤매야 한다. 사랑을 찾고, 직업을 찾고, 공부를 마치고, 내가 진짜 좋아하는 취미를 찾고, 미지의 세계(여행)를 찾아 떠나고, 진짜 나 자신을 찾고...


파티의 주인공으로, 잘 차려입고 나가 사람들을 만나고, 얘기하고, 웃고 떠든다. 싫어하는 사람과도 웃으며 얘기하고, 예의를 갖춰 대해야 한다. 누가 어떤 인연이 될지 모른다. 파티가 끝날 때까지, 내가 원하는 것을 어느 정도 찾을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진짜 재미는 애프터 파티, 뒷풀이에 있지 않던가. 맘에 맞는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소주 한잔 더하자! 하고 자리를 옮긴다. 우리끼리는 편하게 앉아, 그저 마음가는 대로 논다.


긴장을 한꺼풀 내려놓고, 신나게 수다를 떨 수 있는 자리, 더 이상 뭔가를 애타고 열정적으로 찾지 않아도 되는 자리. 어느 정도 포기하고, 단념하고, 긴장을 풀고, 그냥 내 모습으로 돌아와도 되는 자리.


어느 뒷풀이 모임에 가고 싶은지, 이제 망설임없이 결정할 수 있는 나이가 40대 아닐까? 화장이 번져 팬더눈을 하고서도, 신경쓰지 않고 웃고 떠들며, 때로는 자리를 주도해나갈 수 있는 그런 나이. 맘에 드는 뒷풀이 자리가 없으면 내가 직접 만들거나, 아무렇지 않게 홀로 떨어져, 나만의 시간을 즐길 수도 있는 나이.


하긴, 아직은 젊다고 말할 수 있는 나이라서 이런 얘길 할 수 있다고, 나의 부모님은 말씀하셨다. ㅎㅎ


'아무리 나이 들면서 좋은 점을 늘어놓아봤자, 젊음만큼 좋을까? 젊음이 제일 좋다!'는 말도 종종 들었는데, 그 말에는 나도 일정 부분 완전히 동의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지게' 늙어갈 수는 있을 것 같다.


우리는 누구나, 딱 한번만 그 나이를 살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젊음이 좋다는 것도, 지나오고 나서 알 수 있는 것이고, 늙음이 서글프다는 것도, 그 늙음의 문턱에 가까워졌을 때나 비로소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더욱, 누구에게나 한번 주어진, 오늘 이 시간을 열심히 사는 수밖에.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인 오늘만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아이처럼, 의식하지 않고 이 순간을 살 때가, 가장 재미있는 법이니까.
















작가의 이전글 나는야 소심쟁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