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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Sep 16. 2019

나는야 소심쟁이

떨리고 긴장되고 자신없어도, 그냥 하는 수밖에.

나는 내성적이고 소심한 사람이다. 이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 이런 얘기를 하면, 내 주변 사람들은 모두 웃거나, 반어법으로 받아들인다.


 "너가? 너가 내성적이라고?"  "뭐?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제일 외향적인 사람 중의 하나가 너야"  


자기 주장이 강하고, 호불호가 분명하며, 친한 친구들과 수다떠는 것을 좋아한다고 해서 외향적인 것은 아니다. 나는 내가 내향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잘 인지하고 있다.


사람은 다면적이기 때문에 늘 내성적이기만 한 사람도, 늘 외향적이기만 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는 알 수 있다. 자신의 '진짜' 모습이 어떤 것인지.


나는 어렸을 때부터 겁이 많고, 예민하고, 소심한 성격이었다. 지금 내 아이를 보면, 어렸을 때의 내 모습을 그대로 보는 것 같다. 그래서 내 아이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이해할 수 있다.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지만 욕심은 많다. 잘하고 싶고, 그래서 짜증이 많이 난다. 내 아이도 그런 모습을 자주 보인다.


어렸을 때는 이상적인 내 모습(자신감있고 활달해지고 싶은)과, 그렇게 잘 되지 않는 내 모습과의 거리감 때문에 힘들었다. 하지만 점점 커가면서, 나의 (겉으로 보여지는) 성격의 많은 부분을 다듬어갔다. 학교생활과 사회생활에 유리하고 편리한 방향으로 진화한 것이다.


늘 긴장되고 떨리지만, 준비할 시간을 충분히 준다면 당당하고 자신감 있(어보이)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할 수 있다. 리더도 맡을 수 있고, 장기자랑도 나갈 수 있다. 소심하고 불안감이 높은 성격을, 신중하고 준비성이 철저한 것으로 보이게 포장할 줄도 알게 되었다.


결혼 전 대학 친구와 한 일주일 간 해외여행을 같이 간 적이 있었다. 친하긴 했지만 서로에 대해 그렇게 세세히 잘 알지는 못했던 우리는, 서로 다른 여행 스타일에 조금 삐걱댔다.


친구는 아주 외향적이고 호기심이 많으며 체력이 좋은 사람이었고, 나는 내향적이고 저질 체력인데다 혼자만의 시간이 자주 필요한 사람이었다.


친구는 내가 대학 때부터 이것 저것 활동을 많이 하고, 취미도 많고 여행도 많이 다녀서, 굉장히 적극적이고 활발한 사람인 줄 알았다고 한다. (이런 앤줄 알았으면 여행 같이 안갔지, 라는 늦은 후회였다 ㅋㅋ 그래도 그녀와의 여행은 즐거웠다)


나는 게으름 피우는 것에는 좀 자신있다. 매일 10시간씩 잤으면 좋겠다. 잠이 안오더라도 빈둥거리며 누워서 책이나 영화를 보며 한가로이 보내는 시간을 나는 늘 그리워한다. 며칠씩 집에만 있어도 지루하거나 갑갑하지 않다. 오히려 너무 행복하다.


싫어하는 일은 이런 것이다. 아침형 인간이 되어야 하는 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일. 시간에 쫓겨서 해야하는 일, 그리고 발표, 자기소개, 장기자랑(이걸 할 필요가 없는 연차와 나이가 됐음에 얼마나 감사한지! ) 회사 워크샵, 체육대회, 등등..


지금은 나의 내향성을 받아들이고 수용하지만, 30대 초반까지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려고 꽤 노력했었다. 활발하고 쾌활한 리더형 녀성!이 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나는 너무 느리고, 매사에 진지하고, 생각이 너무 많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래도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면, 서서히 헛된(?) 희망을 포기하고, 진짜 내 모습을 결국은 받아들이게 된다는 점이다.


올해 대학원을 다니게 되면서, 나는 내가 싫어하는 일들을 결국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여러 차례 직면하게 되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자기 소개를 하고, 계속 나의 생각과 의견을 얘기하고, 쓰고, 발표해야 한다. 할 때마다 목소리가 떨리고, 긴장된다. 괜찮은 척, 하지만 실은 괜찮지 않다. 난 원래 소심쟁이니까.


그뿐인가? 내가 못하는 부분, 잘 모르고 약한 부분을 계속 드러내고 확인받고 깨닫게 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나의 무지함을 좋든 싫든 간에 드러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모르는걸 알아가고 채워가는 과정이 공부라지만, 어쨌든 늘 창피하고 부끄럽다.


그래도 그냥 한다. 결과물이 어떻든, 최선을 다해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좀 달라진 것이 있다면, 떨리고 긴장되는 모습을 애써 극복하려 하거나, 숨기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단 그럴 마음의 여유도 없을 뿐더러, 그렇게 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그리고 이것이 꼭 필요한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 나에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남에게 어떻게 보여질지 걱정하기 보다는, 내가 스스로 만족하는 기준에 도달할 수 있는가, 여부가 나의 주된 관심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과의 비교도, 그럴듯해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또한 좋아하는 일(현재 하고있는 공부와 글쓰기)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이건 어렵게 돌고 돌아서 겨우 찾은, 내게 꼭 맞는 옷이다. 소중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용기도 낼 수 있다. 소심쟁이 특유의 꼼꼼함 때문에 속도는 더디고, 신경질적인 초조감과 스트레스에 숨이 막힐것 같아도, 꾸역꾸역 하나씩, 하는 수밖에 없다. 사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다.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아,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는데, 조금만 더 했으면 됐는데, 라는 아쉬움을 남기는 것. 할 수 있는데 시도조차 안하는 것이다.


예전엔 성격상 자신없는 분야는 아예 도전조차 하지 않았다. 미완성의 상태를, 뭔가 어정쩡한 상태를 견디는게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완벽한 그림 한장을 그리려고 하기 보다는, 잘은 못해도 여러번 시도해보는 그림 열 장을 채우려고 노력한다.


완벽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계속 하는 것만이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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