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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Oct 08. 2019

"우정이 변하니?" 변하는게 당연하다.

캠핑클럽을 보며 떠올려보는 옛 친구들

핑클이 나오는 캠핑클럽이란 프로그램을 우연히 몇번 보게 되었다. 어린 친구들만 보다가 오랜만에 내 또래 연예인들을 봐서 그런지 생각보다 재밌었다.    '아무리 방송에서 예쁘게 보여줘도 캠핑은 무지 힘든 일이네...놀러가서도 밥해먹고 설거지하고 치워야 한다니... ' 뭐 이런 쓸데없는 아줌마스런 생각도 하면서...ㅎㅎ



사실 이걸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저 네명의 멤버들이 모두 아이가 없기 때문에 저런 예쁜 여행이 가능하겠구나, 라는 생각이었다. 물론 아이가 있었어도, 연예인이니까 촬영에는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비슷한 공감대를 넷이 온전히 나누기는 힘들었을 것 같다.


애가 있었다면 뭔가 조금 다른 장면들이 섞였을 것이다. 멋진 풍경을 만나면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그리워한다던지, 매일 아이에게 영상통화를 건다던지... 한가롭게 남편과 풍경 얘길 할 수 있는, 아이가 없어서 가능한 여유로움이 이질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나에게도 몇몇의 친구 그룹들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초중고를 같이 나온 오랜 친구들인 A 그룹, 대학교 친구들인 B 그룹, 첫 직장 그룹인 C 그룹, 두번째 직장 그룹인 D 그룹, 현재 대학원 동기들인 E 그룹 등... 자잘하게는 더 많지만 대략 나누면 이렇다.


이중에서 가장 친한 그룹은, 현재는 E 그룹이다. 매일 만나고, 밥을 먹고, 같은 공부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B,C 그룹도 가까운 편이다. 가장 시간이 많고 서로가 비슷한 모습인 20대에, 그것도 사회의 첫 출발점이 되는 대학 입학과 첫 직장 입사 순간에 만났기 때문인지 편하게 가식없이 볼 수 있는 친구들이다.


사실 30대 중반 이후 여자들의 친구 관계는, 세분화하자면 끝도 없다. 싱글인 친구, 기혼인 친구, 기혼이지만 아이가 없는 친구, 아이가 하나만 있는 친구, 둘 이상인 친구, 아들만 혹은 딸만 있는 친구, 둘다 있는 친구, 이혼한 친구까지... 여기서 일을 하는 친구, 전업맘인 친구, 또는 회사를 다니는 친구, 프리랜서인 친구까지 다양하다.


물론 이걸 의식적으로 구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애엄마들끼리의 공통 화제가 생기고, 워킹맘들끼리의 공감대로 모이게 되거나, 상대적으로 시간 내기가 자유로운 싱글들끼리 따로 저녁 약속을 잡기도 한다.


삶의 단계들을 거쳐가면서 인간관계도 변화한다. 둘도 없이 친하게 지내며 주말마다 함께 어울리던 친구도 점점 멀어지다가 연락이 끊어지기도 하고, 그렇게 멀어졌던 친구와 어떤 계기로 다시 가까워지기도 한다.


결혼 여부에 따라, 아이 유무에 따라 여자들의 삶의 방식이 아무래도 남자보다 더 크게 바뀌는 부분이 있으니 친구 관계의 변화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아무래도 자기 가족이 생기면 -이건 남자도 마찬가지겠지만- 친구 모임보다는 가족이 곧 인간관계의 전부가 되어버린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을 얼마나 순탄하게 넘기느냐, 인것 같다. 실망하고 서운해하는 사람도 있고, 한편으로는 홀가분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대개 미혼 입장에서는 기혼 친구들 입장을 늘 일방적으로 배려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리니, 점점 사이가 멀어진다. 아무리 공통의 화제를 찾아보려고 해도, 애엄마 둘 이상만 모이면 결국 아이 이야기로 귀결된다.


나의 경우 반대로, 오랫동안 미혼인 친구 그룹에서 지냈던 케이스이기 때문에 결혼과 출산 이후에도 한동안 아이가 있는 사람이 나 뿐이어서 소외감을 느꼈다.


아이가 100일밖에 안됐을 때, 이번 모임에는 참석 못하니 나 빼고 모이라고 통보하자, 친구들이 아이는 우리가 돌아가면서 계속 안고있을테니 걱정말라고, 넌 몸만 오면 된다고, 나오라고 했었던 적도 있었다. ㅎㅎ


아니면 우리가 갈까? 라고 해맑게 묻는 친구들에게 차마 나 혼자 있고 싶다고, 100일 아기를 돌보는 일만으로도 나는 지쳐서 에너지가 하나도 없다고, 아기는 그저 안고만 있으면 되는 인형같은 존재가 아니라고 일일이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때 실감했다. 아, 이래서 애엄마들끼리 모이게 되는구나...


나는 애를 낳아도 엄청 쿨하고 멋지게, 아가씨같은 애엄마(?)로 살줄 알았는데, 말도 안되는 얘기였다. 애초에 애엄마는 쿨, 과는 가장 거리가 먼 존재였다. 아이라는 존재가 생기자마자,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내 아이에게 제일 좋은 것만 주고 싶어서) 구차하고 미련떠는, 남에게 아쉬운 소리도 잘 하는, 정신없고 억척스러운 아줌마가 되어있었다.


어느날 애가 둘인 친구에게, 잘 지내고 있냐며 카톡이 왔다. 반갑게 안부를 주고받다가, 내가 친구에게 '맨날 말로만 보자고 그러고, 너만 연락하게 해서 미안하다' 고 하니 세상 쿨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땐 원래 그럴때야! 애 초등학교 들어갈 때쯤 되면 편하게 보자 ㅎㅎ "


역시 두 아이 엄마는 시간의 스케일이 다르구나, 싶었다. 위킹맘인 그녀가 얼마나 고군분투하며 애지중지 두 아이를 키워왔을지, 이제야 실감이 났다.


떠나간 친구도, 새롭게 만나는 친구도, 모두 나름대로 소중한 인연들이다. 그때 그 시절에 맘이 맞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인연을 억지로 잡아둘 수도 없고, 어느 순간 딱 잘라버릴 수도 없다. 흘러가는 대로 두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각자의 타이밍과 인생의 부침이 다르기 때문에, 우연히 그 시점이 맞아 함께 어울릴 수 있다면 고맙고 반가운 일이다.


그외에 더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것은 역시 무리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보이지 않는 선은 존재한다. 심지어 부부 사이라도,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선이 있다.


그 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기도 하고, 애써 무시하고 살아보기도 했지만, 나이들수록 건강한 관계는 역시 선 밖에서 가끔 반갑게 보는 인연들이다. 모든 것을 나눌 필요도 없고, 그런다고 해서 쉽게 가까워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서서히 깨닫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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