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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Oct 27. 2019

너를 싫어해도 되겠습니까?

널 좋아하지 않아, 다른 이유는 없어

나에게도 싫어하는 사람이 몇명 있다. 그중 참 맞지 않는 A라는 친구가 있(었)다.


대학교 같은 과 친구인 A는, 원래 나와 가장 친한 친구 중 한명이었다. 그러나 대학생활을 함께 하는 동안 우린 서로 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고, 각자의 친한 친구 그룹이 따로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멀어진 채로 가끔 동창회 때나 봤으면 지금도 A를 그렇게 싫어하지 않았을텐데, 공교롭게도 우리는 함께 속해있는 모임이 하나 있었다. 20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거의 20년 가까이 지속해온 모임이므로, 나에게도 A에게도 소중한 친구들이다.


그 모임을 지속해왔던 지난 18년동안, 나는 A와 정말 맞지 않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을 뿐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A는 평소대로 행동했을 뿐인데, A가 예전에 기분 상하게 했던 경험 데이터가 충분히 쌓여있던 나로서는, A의 무심함과 무례함에 감정이 상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대놓고 그러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사자인 나만 기분 나빴을 뿐, 모임의 멤버들은 잘 눈치채지 못했다. 나 역시 1년에 두어번 보는 모임에 괜한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기분이 가끔 상해도 모른척 넘어갔다. 소인배인 내가, 참 무리하며 대인배인척, 그냥 넘겼다. 나만 참으면 괜찮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날 기분 상하게 했던 행동들은 아주 사소한 것들이었다. 딱 꼬집어 말하기도 뭐한, 사소하고 자잘한 것들. 하지만 돌이켜보면, 원래 인간관계란 그런 아주 사소하고 자잘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고, 아무리 속좁고 구차해 보일지라도, 그런 작은 것들에 마음 상해 하기도 하고 감동받기도 하는 것 같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모임의 장소를 정하는 A의 패턴이다. 사진이 취미라 예쁜 장소를 많이 알고있는 그녀가 거의 항상 주도하여 모임 장소를 정하곤 했는데, 문제는 그곳이 늘 그녀의 집 근처였다는 것이다. 집과 회사가 모두 강남에 있는 나와, 분당에 있는 친구 한 명, 이렇게 두 명만 매번 1시간 거리에 있는 그녀의 동네로 가야했다.


그리고 A가 찍는 사진. - 항상 내가 눈을 감거나 입모양을 이상하게 하고 있는 채로 포착된 사진을 하나씩 끼워서 SNS에 올리는 그녀의 센스란! 처음에는 내가 예민하게 생각하는 거겠지, 그냥 우연이겠지, 다른 친구들이 잘 나와서 그렇게 올린 거겠지, 싶었지만... 여자들은 아마 말 안해도 다 알 것이다.


설마, 하는 촉은 보통 진실인 경우가 많다는 것을. 그리고 그 설마, 가 세 번 정도 반복될 때는 더더욱 그렇다.


그 외에도 단톡방을 따로 만든 후 나만 제외시키고 얘기하기, (다른 멤버가 눈치없이(?) 날 초대해줘서 알게되었다) 대기업 이직 후 축하받는 자리에서 혼자 침묵 지키고 있기, 야근하다가 늦게 도착한 식사 모임에서, 나는 거의 먹지도 못했는데 회비 똑같이 걷어가기, 등등 A로 인해 기분이 상했던 일들은 소소하게 참 많다. 그래도 뭐, 여기까진 웃으며 넘길만 했다.


문제는 내가 결혼식을 앞두고, 청첩장 모임을 하려고 할 때였다. 당연히 우리도, 모임 멤버들이 차례로 시집을 갈 때마다 다같이 모여 결혼을 축하하고, 청첩장을 받고, 결혼 주인공이 밥을 사는 모임을 항상 가졌다. 나도 이 모임을 잡기 위해 언제 어디서 보는게 좋겠느냐고 단톡방에 운을 띄웠다.


그러자 한 친구가, 자신은 차를 가져가니 주차장이 있는 곳이 좋겠다고 의견을 냈고, 다른 한명은 아이를 데리고 나온다고 말해줘서, 모두의 편의를 고려해 장소를 정한 후 링크를 보냈다. 주차공간도 넓고 수유실도 있으며 교통도 편한 곳이었다. 다들 만족하는 분위기였고, 그때 보자고 얘기하며 대화를 마무리 지으려는데, 그때까지 뜸하게 말을 이어가던 A가 갑자기 톡을 연속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미안한데 난 거기는 별로인것 같아. OO동(그녀의 동네 근처)에서 보자. 진짜 맛있고 예쁜 가게가 새로 열었거든. 거기 가자."


"이미 예약했는데...OO동? 다른 친구들이 오기에 좀 멀지 않을까? 다들 어때?"


"멀기는 무슨 ㅋㅋ 다들 가까워. 다들 OO동 좋아해~~ 내가 얘기한 데로 하자."


솔직히 왜 조용히 있나 싶었다. 그냥 넘어갈 A가 아니었다. 장소를 떠나, 나는 이미 기분이 안좋아졌고 이 모임을 취소하고 싶어졌다. 아무런 마음의 걸림돌없이, 그때만큼은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순수하게 축하받고 싶었고, 즐거운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


내가 주인공인 자리인데, 그냥 있는그대로 축하해주는게 그렇게 싫으니? 하고 쏘아붙이고 싶었다


다른 친구들이 "이번엔 니나 모임이니까 니나가 예약한 곳으로 가고, OO동은 담에 가자^^" 라고 말해줘서 이야기는 넘어갔지만, 결론적으로 그 모임은 무산되었다. 일단 A가 하루 전날, 갑자기 시간이 안된다며 불참한다고 했고, 피곤해진 내가 이번 청첩장 모임은 그냥 취소하자고 했다.


그냥 순순히 축하해주기도 싫은걸까? 아니면 잠시라도 '주도권'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는 것이 너무 싫은 성격인걸까? 나 역시 그동안 알게 모르게 A를 서운하게 해왔던건 아닐까? 여러 복잡한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그 이후로 A를 다시 볼 일은 없었다.

 

아이를 키우느라 다들 바빠져서 모임이 소원해진 시기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서서히 그녀와의 연결고리를 끊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이다. 함께 속한 모임의 친구가 왜 그러느냐고 물었을 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엔 그냥 솔직하게 대답했다.


"미안한데, 나는 A가 싫어. 나랑은 안맞는것 같아. 이유는 묻지 말아줘."


물어본 친구는 깜짝 놀랐는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싫어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적인 영역이다. 이유없이 싫을 수도 있고, 이유가 너무 많아서 싫을 수도 있다. 왜 그 사람을 싫어하느냐고, 왜 싫은 티를 내냐고, 왜 쿨하지 못하게 누군가가 싫다고 해서 모임에도 안 나오느냐고 하는 질문은 애초에 답이 없는 질문이다.  


왜냐면 그냥 싫기 때문이다. 싫은걸 무릅쓰고 모임에 나가야할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고, 내 마음의 평온함이 깨지지 않게 하는 것이 내게는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너만 참으면 되는데, 너만 싫은 티 안내면 되는데, 너만 왜 유별나게 그래? 라는 말... 참 싫다. 경험상 괜히 쿨한척 하다가 쿨한 사람이 되기는커녕, 내 마음만 서늘해질 뿐이었다.


내가 A를 싫어한다고 해서, 다같이 싫어하자, 라고 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A와 잘 지내고 있는 다른 친구들에게 내가 왜 A가 싫은지에 대해 구구절절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고, 결과적으로 나만 이상해보일 수도 있는 일이다. 나는 누군가를 '싫어함'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존중받고 싶다. 이 '싫어함'이 친구들에게 가십거리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친구들이 동조해주든 아니든 상관없이, 싫은건 싫은 것이기 때문이다.


우린 때때로 '쿨병'에 걸린 사람들로부터 너무나 쉽게 '쪼잔한' 인간으로 취급받는다. "쪼잔하게 왜 그래? 그냥 훌훌 털어버려~" 라던가, "겨우 그런거 갖고 아직도 삐져있는거야?" 라던가, 혹은 "너 그러면 혼자 된다" 라는 장난섞인 협박도 곁들인다.


글쎄, 잘 모르겠다. 나는 경험상 오히려 내 감정에 솔직할 때, 주변에 더욱 진실된 친구들만 남아있게 되었다. 나의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진짜 소중한 내 가족과 지인들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되어 좋았고,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부분은 더이상 '괜찮은 척'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누군가 미묘하게 날 기분나쁘게 할때, 이제는 애써 버티려고 하거나 맞서려고 하지 않는다. 최선을 다해 피하려고 한다. '웃으며 받아치는 방법'을 나도 몇번 시도해보기도 했지만, 역시 가장 좋은 것은 그런 상황을 자주 만나지 않는 것이었다. 피할 수 있으면 최대한 피하는 것이었다.


내 마음의 평온함은,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이 지켜주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안한데, 난 괜찮지가 않아. 아무리 소심하고 쪼잔해도, 나는 기분이 나빠,' 라고 최소한 나 자신에게는, 솔직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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