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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Nov 07. 2019

밑빠진 독에 물 붓기

일단 잘 하기로 마음 먹었다면

처음 외국계 회사에 다닐 때,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부러워했던 사람들이 어렸을 때 외국에서 살다온 친구들이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처럼, 네이티브처럼 자연스러운 대화체의 영어를 구사할 수는 없었다. 영어만은 자신있다고 생각했었지만, 그들 앞에서 영어를 할 때는 늘 주눅이 들었다.


소위 말하는 금수저도, 명문대를 나온 사람도, 한 번도 부러워해본 적이 없었는데, '외국물 먹은' 친구들은 정말이지 눈물나게 부러웠다.


대학시절 내내 맹렬하게 스터디와 학원을 다니며 영어 공부를 했지만, 살다온 사람만큼 잘 할 수는 없었다. 함께 스터디를 하던 친구는, 아무리 우리가 연습해도 '네이티브 처럼' 될 수 없으니 허무하다고 했다. 마치 밑빠진 독에 물붓는 것 같다고, 자신은 지금이라도 어학연수를 가겠다고 했다.


사실 영어 좀 못해도, 살아가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하지만 일단 내게 필요하다, 난 이걸 꼭 잘하고 싶다, 라고 마음먹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무언가를 잘 하기 위한 지름길 같은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냥 매일 조금씩 연습하고, 매일 조금씩 나아지는 방법 뿐이다. 다행히 어떤 일이든, 가속도가 붙는 순간은 온다. 정체되는 시기도 온다.


흔히들 일희일비 하지 말고 길게 보라고 하지만, 인간이 일희일비 안하기가 어디 쉬운가? 일희일비 하기 때문에 작은 것에도 행복감을 느끼고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제보다 오늘 한 발짝 가까워졌다, 커다란 항아리에 물 한 스푼 정도 넣었다, 라고 생각하면 조금 기분이 나아진다. 물을 한 스푼씩 담아서 언제 이 큰 항아리를 채울까, 싶지만 그 물이 마르기 전에 계속해서, 꾸준히 물을 넣으면 언젠가는 채워진다. 꼭 다 채우지 않아도, 찰랑 찰랑 담겨있는 정도까지만 채워도, 그것도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성취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고 공부를 다시 시작했을 때, 이거야말로 깨진 항아리에 물 붓는 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밑 빠진 독이라도, 나만의 이야기가 들어간 특별한 항아리로 만들자고 다짐했지만, 솔직히 너무 힘들어서 다 그만두고 싶은 순간들이 참 많았다.


하지만 계속 붓다보니 그 깨진 부분을 채워주는 두꺼비같은 고마운 도움들도 받을 수 있었다. 때로는 친정 엄마가, 때로는 남편이, 때로는 대학원 동기들이, 구원투수처럼 나타나 깨지고 금간 부분을 막아주며, 내가 계속 물을 부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당연히 모든 일의 출발선은 같지 않다.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물이 가득 찬 항아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보게되면 허무감이 들 수도 있다.


그렇다고 남들과 비교만 하며 있기에는, 내 소중한 시간이 너무 아깝다. 남들이 가진 항아리와 비교할 시간에, 나는 그저 내 항아리의 물을 열심히 채우는 편이, 훨씬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다.


무언가 진취적인 일을 시작할 때,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할 때면, 어김없이 유혹의 목소리(?)가 들리기 마련이다. 보통은 이런 속삭임들이다. '이제와서 그런거 해서 뭐해?' '그걸 시작하기엔 너무 늦지 않았어?' '그거 해서 뭐 먹고 살게? 지금 하는 일이나 열심히 하는게 낫지 않아?'


그동안 함께 어울려 다니던 친구들과도 점점 멀어지고, 때로는 가족이나 지인들의 원성도 사게 된다. 원래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주변에서 먼저 알아채고, 압력(?)이 가해지는 법이다. 그러면서 서서히 고립되기도 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일단 이 항아리를 채우기로 마음 먹었다면, 묵묵히 그것을 채우는 일을 계속 해 나가면 된다. 어떤 방해가 와도 그걸 계속 하다보면, 주변도 서서히 납득하게 되고, 항아리를 열심히 채우는 사람들끼리의 연대도 생겨난다. 서로의 팁을 공유하며, 격려해가며 항아리를 채울 수 있게 된다.


예전에는 대여섯살 정도 되보이는 아이들을 보면, 그저 귀엽네, 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가 아이를 낳아보니, 그런 아이들 하나 하나가 달라보인다. 저만큼 키우기 위해 저 엄마가 얼마나 많은 노력과 정성을 들였을지, 얼마나 많은 눈물과 걱정으로 밤을 새우던 날들이 있었을지 너무나 알 것 같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처럼, 내 항아리도 꾸준히 채워가고 싶다. 겨우 물 한방울 넣었다고 조급해하지 않고, 애써 넣은 물이 한동안 들여다보지 않아 다 말라버렸다고 포기해버리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매일 채워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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