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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Nov 14. 2019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겪어봐야 안다.

좋은 상사도, 비서 업무도 그렇다

사람은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잘 모른다는 말을, 가장 절실하게 깨닫게 된 시기는 역시 직장생활을 하면서 부터다. 마냥 사람 좋아보이던 사람도 막상 같이 일해보면 완전히 실망한다거나, 까칠하기로 악명이 높은 사람도 의외로 같이 일하는 동료로서는 꽤 괜찮은 경우가 종종 있다.


외국계 회사 비서로 거의 10년 가까이 근무하면서, 총 다섯 명의 보스와 함께 근무해보았는데 그 중 기억에 남는 두 분이 있다. 아마도 두 분의 스타일이 극과 극이라 더욱 기억에 남는 것 같다.


A 보스는 내가 사회 초년생 때 함께 일했던 분으로, 좋게 얘기하면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 였고, 나쁘게 얘기하면 '독불장군' 이었다.


B 보스는 비서로서의 경력이 꽤 쌓였을 때 새로 부임하신 보스로, 역시 좋게 얘기하자면 '따뜻하고 정이 많은 리더'였고, 나쁘게 얘기하면 '정이 너무 많은 나머지 공과 사의 구분이 모호한' 리더였다.


A 보스는 정말이지 악명이 높은 분이었다. 사회 초년생인 내가 채용이 되었을 때, 면접에서 떨어지고 다른 회사로 간 동료 비서가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분이 비서가 되었느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던 일화가 있다. 그 정도로 비서 채용에 까다로운 분이었고, 3년 이상 근무한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로, 비서들을 (들들 볶아서 ㅎㅎ) 떠나게끔 만든 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A 보스와 일했던 경험이 개인적으로는 꽤 귀중한 자산이 되었다. 솔직히 A 보스에 대한 주변의 평은 정확했다. 정말 인색하고, 화를 자주 내며, 남의 의견을 거의 듣지 않고 항상 독단적이었다. 나 역시 눈물 쏙 빠지게 혼난 경험이 많다. 40대 임원들이 보고할 때 손을 바들바들 떠는 모습도 수없이 보았다. 그 정도로 무서운 분이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A 보스의 모든 관심과 신경은 모두 '회사일'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다. 그분의 관심은 오로지 회사의 발전 뿐이었다. 아무리 어리고, 아무것도 모르던 사회 초년생이라도, 본능적으로 그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그 엄청난 에너지와 열정에 중력처럼 이끌렸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게다가 A 보스는 매사에 당당했다. 왜냐하면 늘 실적을 맞추는 보스였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일을 잘한다는 것은 최고의 무기이고, 모든 것은 매출이 증명해주기 때문에, 그 누구도 A 보스의 독재(?)를 막을 수는 없었다.


반면 B 보스는 정말 캐주얼한 상사였다. 권위적이지 않고, 유머러스 했으며, 오픈 마인드로 대화하는 분이어서 대부분의 직원들이 좋아했다. 실적 역시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예측할 수 없는 자유분방한 성격 때문에 업무 가이드가 명확하지 않다거나, 약속을 수시로 변경한다거나, 본인이 꼭 해야할 중요한 업무를 다른 직원에게 일임해버린다거나, 중요한 미팅에 늦어서 대신 사죄(!)를 해야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곤 했다.


솔직히 A,B 보스 두 분 모두 인간적으로 가깝게 지내고 싶은 분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함께 일하기에는 A 보스가 좀더 나았다고 볼 수 있다. 업무 프로세스와 피드백이 확실했기 때문에 예측 가능한 루틴이 있고, 그에 따른 보상이 있으며, 개인적인 감정을 업무에 거의 섞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직속 부하직원 입장에서, 직원들에게 인기가 높았던 B 보스보다 악명 높기로 소문난 A 보스가 상사로서는 더 좋았다는 점은 참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생각보다 꽤 많다.


동료직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같은 팀원들의 눈에는, 비서가 도대체 무슨 업무를 하는지, 무엇 때문에 바쁜지 잘 모르는데다, 하나도 중요해 보이지 않는 일에 (주로 의전) 왜 저렇게 핏대 세워가며 까다롭게 구는지, 왜 팀원들의 요청은 잘 안들어주면서 (보스 대신) 업무 요청과 재촉은 왜 그리 자주 하는지, 이해가 안 가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똑같은 공지 이메일, 또는 업무 요청 이메일을 대략 100명 정도에게 발송해도, 반응은 제각각이다. 메일을 한 줄도 읽어보지 않고 무조건 전화를 하거나 직접 찾아와서 설명을 요구하는 사람도 있고, 바로 내용을 이해한 후 정확하게 데드라인에 맞추어 회신해주는 사람도 있다.


자리로 오거나 전화를 하더라도, 바로 본론만 얘기해줬으면 좋겠는데, 꼭 시시콜콜한 잡담을 한참 늘어놓은 후, 마치 덧붙이는 얘기처럼 맨 뒤에 본론을 꺼내는 사람도 있다.


특히 비서니까 모든 업무적인 '써포트'를 잘 할거라고 오해하시는 중간급 팀장님들이 가장 난감했다. 비서라고 모든 업무 써포트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내 '일'이니까, 내가 모시는 임원이고 내가 책임져야 하니까 오직 '그분'에게만 모든 안테나를 맞춰놓고 하는 일이라서 잘 하는 것일 뿐이다.


그런데 '하는 김에 이것도 해줘~' 라고 들이미시면 참으로 곤란하다. 마치 본인의 비서처럼, 은근히 부려먹으려고(?) 하시는 그 마음, 다 보인다.


반면에 한결같이 젠틀하신 팀장님들도 계셨다. 사실 이미 임원회의에서 나왔던 내용을 비서가 remind 차원에서 보내는 메일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비서실에서 무언가를 요청하기 전에 이미 준비해놓고 계신 경우가 많다. 이분들은 정확하고 스마트하며 대부분 말씀이 길지 않으시다. 일하면서 만나기 어려운, 참으로 귀하고 소중한 분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나는 과연 좋은 비서였을까? 업무적으로는 좋은 피드백을 받았지만, 성격 까칠하단 소리도 참 많이 들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게까지 신경질(!)을 내면서 일할 필요는 없었던 것 같은데, 너무 강한 책임감과 사명감에 휩싸여서 늘 초조했고, 여유가 없었으며, 사람들을 다그치며 내 임무 완성에만 몰두했던 것 같다. 그랬기 때문에 비서로서의 역할은 잘 할 수 있었지만, 같은 부서였던 사람들에게는 역시 조금 미안했다.ㅎㅎ


그래도 모두가 함께 어울려 같이 일하던 그때가, 가끔은 무척 그립다. 때로는 서로 오해도 하고, 아쉬운 소리도 해가면서, 눈에 보이는 어떤 분명한 목표를 향해 다같이 으쌰으쌰하던 그런 팀웍은, 회사 생활을 할 때만 느껴볼 수 있는 소중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인생의 어느 순간, 같은 회사의 같은 부서에, 그리고 같은 팀원으로 만났던 우연이라니. 다들 잘 지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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