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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Nov 23. 2019

쉬는 시간도, 노는 시간도 필요하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므로

최근 거의 이틀에 한번 꼴로 밤을 새우다시피 하다보니, 조금씩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밤을 새우는 이유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이기도 하지만, 아이가 잠든 이후에야 오롯이 내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고, 엄마와 놀고 싶은 아이는 점점 더 늦게 잠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ㅠㅠ..)


잠이 부족하니 피곤한 건 당연한 일이고... 처음 얼마간은 오히려 그 피로감을 즐겼던 것 같다. 뭔가 내가 열심히 하고 있구나, 라는 안도감도 들고 뿌듯한 기분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정신적으로도 좀 지치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멍 때리는 시간이 늘어가고, 아예 편히 자는 것도, 쉬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다고 집중해서 공부를 하거나 집안일을 몰아서 하는 것도 아닌, 이도 저도 아닌 시간이 늘어갔다. 규칙적인 생활 리듬이 깨지니 육체적인 건강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건강도 조금씩 무너져가는 느낌이었다.


이럴 때 가장 좋은 것은 역시 푹 쉬는 것이다. 잠을 충분히 자고, 잘 먹고, 잘 쉬는 것. 스트레스 받지 않고 잘 쉬기만 해도 대부분의 병은 나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예전에 봤던 영화를 또 보고, 읽었던 책을 괜히 또 꺼내서 읽고, 의미없는 인터넷 써핑을 계속 하면서 시간을 낭비(?)할 때가 있다. 덕분에 3시간이면 끝낼 과제를, 6시간에 걸쳐서 한다.


예전에는 이렇게 시간을 소비하고 나면 굉장히 자책하는 스타일이었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왜 이렇게   계획적으로 시간을 쓰지 못하는 걸까, 왜 이렇게 우유부단하고 의지가 약한걸까.


그런데 요즘엔 생각이 좀 바뀌었다. 아, 내가 요즘 너무 열심히(?) 살았나 보네, 너무 공부 or 일만 했나보네. 너무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인간으로(?) 살았었나 보네. 딴짓 할 시간이 필요한가 보구나... 라고 정신승리를 하곤 한다.


물론 내가 좀더 생산적이고 현명한 사람이었다면, 그런 '딴짓'할 시간이 생기면 차라리 밀린 잠이라도 푹 자거나, 집안 정리라도 좀 하거나,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왔던 999가지 일 중 하나라도 해치웠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나는, 그냥 노닥거린다. 한참을 그렇게 비생산적인 일로 노닥거리고 나면, 희한하게도 다시 의욕이 조금씩 차오르는 것 같다.


이렇게 '아무 의미없는 노닥거림'에 강하게 끌릴 때에는, 대개 심하게 지쳐있을 때이다. 사실 술을 마시거나, 친구를 만나거나, 영화를 보러 가는 것도, 뭔가 에너지가 남아 있을 때에나 가능한 일이다. 너무 지쳤을 때는, 아, 잠이나 푹 자면 소원이 없겠다, 싶고 아무 생각없이 그냥 혼자 있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막상 또 그런 여유시간을 갖게 되면, 꼭 사부작 거리면서 놀고 싶어진다. 아마도,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의무 이외에 무언가 '나만의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아이를 키우고, 공부를 하고, 일을 하는 것만큼 의미있는 일이 더 무엇이 있을까 싶지만, 때로는 모든 크고 작은 의무감에서 벗어나, 그냥 오롯이 나 자신일 수 있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것이 아주 쓸데없고, 사소하고, 하찮아 보이는 것이라도, 그 순간만큼은 그저 한심하고 유치하고 잉여인간 같은, 늘 불안해하고 확신이 없고 어리석은, 나 자신으로 돌아간다. 자기 발전도 하기 싫고, 생산적인 일은 더더욱 하기 싫다. 그냥 노닥거리고만 싶다. 누구의 엄마도, 아내도, 직원도, 학생도 아닌, 그냥 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시간.


주로 내가 하는 노닥거림은, 읽었던 책을 또 읽고, 봤던 영화를 또 보고, 하는 것이다. 다 아는 내용이기 때문에, 머리 회전을 조금도 하지 않고 볼 수 있고, 온전히 그 맛을 즐길 수 있다. 인터넷으로 나의 로망인, 예쁜 서재 인테리어를 구경하기도 한다. 포인트는, 내가 그 인테리어를 직접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냥 보는 것으로만 만족한다. 그래야 힘들이지 않는 '노는 일'이 된다.


노닥거리거나 멍 때리는 것이 즐거운 이유는, 온전히 현재에만 머물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놀면서 과거를 걱정하거나 지금 하는 일의 효용을 따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만약 그런 상념이 비집고 들어온다면, 진짜 노는 시간도 아니게 된다.


꼭 거창하게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거나, 멋진 휴가지에 가거나, 사람들과 어울려 신나게 놀아야만 기분 전환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소소하게, 바쁜 시간을 쪼개 틈틈히 노는 것이 사실 더 알차고 재밌다. 특히 나처럼 내향적이고 저질 체력인 사람에게는 더더욱, 에너지 소모 없이 자잘하게(!) 노는 시간도, 쉬는 시간도 모두 필요하다.


당연히 물리적인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오래 오래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 쉽게 지쳐서 나가 떨어지지 않기 위해, 틈틈히 사부작 거리며 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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