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한만큼 치러야 할 대가
나는 결혼과 출산 후 약 3년간 집안일과 육아를 도맡아 하다가,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친정 부모님의 도움을 2년간 받았고, 졸업 후 다시 회사를 다니기 시작하며 여전히 도움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나름대로 전업맘과 워킹맘을 모두 경험해보면서, 집안일과 육아의 아웃소싱은 어디까지 가능한가, 에 대한 생각이 많아지게 된다.
일단 아이가 있는 사람이라면 엄마나 아빠나 해야할 일이 너무나 많고, 회사가 퇴근해도 다시 육아와 집안일로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하지만 정작 내가 가장 힘들었던 점은 이 많은 일들을 우리 부부의 손으로 '직접' 하지 못한다는 찜찜함이었다.
사실 대학원에 다니는 2년 동안은 너무나 예민하고 섬세한 아이의 기질 때문에 친정 부모님께 맡길 수밖에 없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아이도 유치원에 다닐 정도의 나이가 되면서, 이제는 도우미의 도움을 좀 받아야 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계획은 완전히 실패했다. 낯가림이 지극히 심하고 예민한 아이의 정서 때문이었다. 지난 2년간 봐주신 친정 부모님 마저도, 엄마 아빠를 대하는 것에 비해서는 낯을 가릴 정도로 섬세한 아이였기 때문에, 생판 남인 도우미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결국 염치 불구하고 또 다시 친정 부모님께 살림과 육아를 부탁드리게 되었다. 사실 부모님 입장에서도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아이 등하원만 하시라고, 살림은 우리가 하겠다고 말씀드렸지만, 당연히 역할 분담은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서서히 부모님께 살림의 주도권을 넘겨드리게 되었다.
아예 아이가 태어나서부터, 아니면 결혼했을 때부터 이런 상황이었다면 나 역시 아무 생각이 없었겠지만, 이미 3년 정도 내 나름대로의 살림과 육아 스타일이 정립된 상황에서 친정 부모님께 살림의 바통(?)을 넘겨드리자니, 사소하게 부딪치는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당연히 부모님은 나보다 더 힘드셨을 것이다. 아무리 자식이라도, 남의 집 살림을 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고, 손주를 봐주신다는 것은 더욱 더 힘든 일이다.
서로 나름대로 참고 있는 상황에서 불만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나는 연로하신 부모님께 또 다시 살림과 육아를 부탁한다는 죄스러움에, 부모님은 나름대로 우리 스타일을 존중해주신다는 명목으로, 서로 잔소리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그 노력이 항상 통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내 기준에서, 육아는 가장 아웃소싱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래서 10년 커리어를 미련없이 포기하고 태어나서 세살까지는 내 손으로 키웠고, 그건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면서도 행복하고 밀도 높은 시간이었다.
애착 형성이니 엄마가 키워야 한다느니, 그런 이론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시간은 아이만을 위한 시간도 아니었고, 내가 무엇을 포기한 시간도 아니었다. 나 자신을 위한 최고의 선택일 뿐이었다.
나는 임신한 순간부터 직관적으로 깨달았다. 내가 이 아이를 품은 이상 앞으로 몇 년간은 절대로 다른 일을 병행할 수 없겠구나, 라는 사실을. 제대로 하지 않을 거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마음 편한 내 성격 상, 나는 육아에 올인하고 싶었다. 뒤돌아보면 정말 미련할만큼 사랑과 노력을 쏟았던, 정말 힘들지만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몸은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정말 행복했다. 아이를 재우고, 새벽 2시까지 남편과 함께 아이 이유식을 만들던 추억, 팔이 아파 서로 교대해가며 고기와 야채를 잘게 다지던 시간들, 집안이 온통 난장판이어도 함께 파이팅해가며 결국 우리 손으로 치울 수 밖에 없던 시간들.
그렇게 '진짜' 엄마와 아빠로 서서히 변모해가던 시간들이었다.
친정 부모님은 남편 칭찬을 정말 많이 하시는데, 어쩜 저렇게 가사일과 육아를 잘 도와줄 수 있느냐는 감탄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건 남편이 원래 그렇게 자상한 것도, 특별히 부지런하고 공감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도 아니었다. 우리 부부가 누구의 도움도 없이, 수없이 시행착오를 겪고 치열하게 싸우고 조율해가며 보냈던 초기 육아의 시간들 덕분이었다.
아웃소싱 없이 온전히 보냈던 그 3년의 시간동안, 우리는 밀도있는 우리 가족만의 문화와 습관, 패턴을 쌓아갔다. 남들이 보면 그저 어질러지고 지저분한 거실과 부엌의 풍경일지 몰라도, 우리는 그 속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우리만의 추억과 질서와 생활이 곳곳에 베어있기 때문이다.
정돈되지 않은 집이었지만, 그래도 살림과 육아의 주도권이 온전히 우리 부부에게만 있을 때가 더 자연스러운 생활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연로하신 부모님께 젊은 사람에게도 힘든 육아와 살림을 맡겨야 하는 죄책감과 죄송스러움은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간다.
그래서 서서히 이 고리를 끊고 다시 독립할 준비를 하고 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결혼을 하면, 온전히 우리 힘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아이가 어릴 때나 경력 단절로 사회에 복귀하기 위한 노력으로 잠시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릴 수는 있어도, 내 기준에서 완전한 아웃소싱은 거의 불가능하다.
워킹맘으로서 부분적인 아웃소싱은 물론 필요하다. 너무 바쁘고 힘들었던 주말에, 가끔은 집안 대청소를 사람을 고용하여 부탁한다던지, 반찬 가게에서 반찬을 공수해 온다던지 하는 소소한 생활의 편의마저도 일부러 외면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런 것 또한 부부가 중심이 되서 집안 살림과 육아 전반에 주도권을 가지고 있을 때 적절하고 바람직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 같다.
한동안 사회 복귀(?)하느라 온 마음과 정신이 일에만 집중되어서 정작 내 살림과 아이를 잘 돌보지 못했다. 정신력이 완전히 고갈되어서 글 한줄 쓸 힘도, 책 한줄 읽을 힘도 없었다가, 조금씩 선선해지는 바람과 함께 정신과 기력을 회복해가는 중이다.
뜨거웠던 여름의 끝을 보내며, 집안일도 육아도 그리고 일에서도, 나만의 주도권을 꼭 잡고 이어갈 수 있는 지혜와 에너지를 달라고 되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