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보기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상 속의 행복
'장래희망'이라는 단어는 몇 살까지 쓸 수 있을까?
내가 기억하기론 한 중학교 때까진 '장래희망이 뭐니?' 라는 질문을 들었던 것 같다. 그 질문은 점차 '어느 대학 가고 싶니?' '무슨 전공을 하고 싶니?' '대학 졸업하고 무슨 일 할거니?' '언제 시집갈거니?' '애는 언제 낳을거니?' 등으로 변화해가다가 어느 순간, 과거형이 되어버린다. '나도 한때는 OO를 꿈꿨었지...'
어렸을 때도 나는 '장래희망'이라는 질문을 받으면 뭔가 답답한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뭐가 되고 싶은지는 당연히 알 수 없었다. 하고 싶은 일도 수시로 바뀌고, 흥미도 계속 변하기 때문이다.
한 7살까지는 수영선수가 내 꿈이었다. 수영이 너무 재밌고 좋았다. 하지만 엄마가 수영선수가 되려면 하루의 대부분을 물 속에서 수영만 한다고 해야 해서 접었다. '난 책읽는 것도 좋고 피아노 치는 것도 좋은데 수영만 하기는 좀...'
피아니스트, 아나운서, 신문 기자...등의 꿈을 거쳐 대학 졸업 때까지 가장 오래 품었던 꿈은 '소설가'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외국계 회사만 10년 가까이 다니고, 번역일을 하며 영어로 먹고 살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마흔이 넘은 나에게는 여전히 장래희망이 있다. 지금 내가 매일 지키고 있는 생활의 '루틴'을 잘 지켜가며, 적절히 업데이트 해가며 사는 것이다. 이 '루틴' 안에는 내가 매일매일 해야할 일, 공부, 생활 규칙, 집안일, 육아...등이 모두 담겨있다.
나에게 가장 효율적이고 잘 맞는 최상의 루틴을 짜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왔지만, 아이가 어느 정도 크고 내 공부와 일이 어느 정도 자리잡은 이후에는 꽤 확립이 되었다. 이 루틴을 매일 매일 지키며 규칙적으로 살 때, 나는 가장 행복하고 안정을 느낀다.
솔직히 남들이 보면 평범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매일 매일이 반복되는 일상이다. 하지만 그 하루 하루가 쌓여, 나에게 성취감과 보람을 주고, 그것이 곧 수입으로도 연결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언젠가 유재석이 방송에서, '남들이 보면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피고 맨날 운동만 하고...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사냐고 하는데, 사실 나는 이렇게 사는게 재밌고, 나름대로 하고 싶은 것 다하면서 재미나게 살고 있다.' 라고 말한 것을 정말 인상깊게 보았다. 농담조로 말했지만 아마 진심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의 말을 백번 이해한다.
그의 기준에서는 그런 생활 패턴이, 어떤 특별한 목표를 위해 엄청 노력을 기울여 자제하고 관리하는 형태는 아닐 것이다. 그냥 매일 매일 그렇게 살아온 사람은 그렇게 하는 것이 더 편하고 행복하다. 그리고 의외로 그런 단순한 생활에 익숙해지면, 정말 '재미'가 있다.
나는 유재석 발끝만큼도 돈을 많이 벌지도, 사회적으로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내 '장래희망'은 이루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꿈꿨던 일상, 내가 지향하는 삶에 많이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어떤 점들이 결정적으로 영향을 주었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많은 우연과 결정과 타이밍이 모두 조금씩 영향을 준 것 같다.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을 간 것, 아이를 낳은 것, 별로 큰 의미가 없었던 지인 모임들을 정리한 것, 코로나가 온 것, 다시 일을 시작한 것, 등등...
더 이상 남들의 기준이나 시선이 내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되었을 때, 나만의 루틴이 하나씩 둘씩 세팅되었고, 그 속에서 '찐' 재미를 느끼고 있다. 매일 조금씩 발전해가는 자신을 발견하는 기쁨과, 아주 작고 소소한 성취를 매일 이루어 나갈 수 있다는 만족감이 있다.
아마 코로나가 끝나도 그 이전의 생활로는 다시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더 잘하고 싶고, 아이와 더 밀도있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나는 앞으로도 매일 열심히 공부와 운동을 하고, 건강하고 소박한 요리를 해 먹고, 일찍 잠들고 일찍 일어날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오래오래 하면서 좋아하는 방식으로 살기 위해, 오늘 하루도 성실하게 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