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높게 연습하고 집중했던 시간
통번역대학원 거의 마지막 학기쯤, 동기 한 명이 자신은 통대에 와서 배운 게 하나도 없는 것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많은 과제와 압박감에 약간은 과장해서 한 얘기였겠지만, 어떤 의미로 한 말인지는 알 것 같았다.
대학원마다, 또 전공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대학원이라는 곳 자체가 고등학교나 대학교 때처럼 어떤 명확한 지식을 직접적으로 전달하고 학습할 수 있는 곳은 아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른 곳은 모르겠지만 통번역대학원은 '내가 한 만큼' 배우고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더욱 부각되는 곳이다. 사실 나도 입학 전까지는, 통대 졸업만 하면 누구나 수준급의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엄청난 고급 영어 스킬을 '자동으로' 장착하게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마법같은 일은 이 세상에 없다. 그 어떤 훌륭한 전문가가 일대일로 밀착해서 가르쳐준다고 해도, '내가 직접 부딪쳐서 노력하고 연습'하지 않는다면 어느 단계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것이 외국어 공부인 것 같다.
나는 지금도 계속 수련(?) 중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방향과 기본적인 스킬을 배웠다면, 그걸 계속 갈고 닦아서 발전시키는 것은 실제 일을 통해 '스스로' 경험할 수 밖에 없다.
나는 통번역대학원의 2년을 이렇게 생각했다. 다른 그 무엇보다 영어를 읽고 쓰고 말하고 듣는 일을 1순위로 할 수 있는 시간. 그걸 하루종일, 엄청난 밀도와 강도로 경험해 볼 수 있는 시간이라고.
내가 그럴 수 있는 시간은 평생동안 지금 이때 뿐이겠구나, 라는 걸 느꼈다. 오랜 직장 생활 후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 입장이었기 때문에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얼마나 내 인생에 중요한 기회가 왔는지, 그걸 더욱 실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인생에서 무언가에 온 시간을 투자하여 노력해볼 수 있는 기회는 그리 흔치 않다. 결혼하면 더 그렇고, 아이를 낳은 후에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
체력도 시간도 많았던 20대까지는 그럴 수 있는 기회가 많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그 소중함을 깨닫기가 어렵다. 그리고 아직 경험이 많지 않을 때라, 내가 무엇에 온 힘과 노력을 집중해야 할지 결정하기가 어렵다. 관심사도 다양하고, 이것 저것 하고 싶은 것도 많을 때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한정된 체력과 시간에 대한 소중함이 커진다.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는 시기가 되는 것이다. 마흔에 점점 가까워지면 더 이상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미룰 수 없다, 이러다가 내 인생 끝나겠다, 라는 위기감이 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에게는 그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만으로도 2년간 쏟은 시간과 돈과 노력이 아깝지 않았다. 아니, 아깝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내 인생에서 너무나도 귀중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가감없는 피드백을 듣는 것도, 떨리는 발표 시간도, 머리를 쥐어 뜯으며 꾸역꾸역 번역 과제를 완성해가는 시간도, 수없이 좌절하며 내 영어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 땅에 떨어지는 경험도, 지나고보니 다 필요했고 소중한 경험이었다.
사실 학기 중에 있을 때는 명확하게 이거다! 싶은 답을 찾기가 어려웠다. 다같이 함께 안개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몇몇 뛰어난 소수의 동기들을 제외하면 다 비슷비슷하게 해메고, 실수하고, 힘들어하며 꾸역꾸역 나아가는 느낌이었다. 영어도 제대로 안되는 것 같고, 한국어마저 꼬일 때, 내가 제대로 할 수 있는 언어가 있기는 한가, 하는 느낌마저 들 때도 있었다.
졸업하고 현업에서 일하다보니, 그때 왜 교수님이 그런 이야기를 했고, 왜 그렇게 많은 양의 과제(!)를 눈 하나 깜짝 안하고 내주셨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가끔은 원문이 너무 말도 안되는 국어로 되어 있는 과제를 받으면 짜증이 나기도 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돈 받고 하는 번역은 그보다 더한 원문의 번역을 몇 배의 양과 훨씬 완벽한 퀄리티로 하루만에 제출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니, 미리 미리 적응하라는 연습이었다.
얼마 전 친한 동기를 만나 그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 그때 그 정도 양으로 힘들어했던 것 생각하면 재밌지 않냐고. 이제는 거의 한 학기 과제 분량의 번역을 며칠 만에 끝내게 되고, 결과물을 하나 하나 피드백 받을 시간도 없을 만큼 바쁘게 일하다보니, 문장 하나 단어 하나에 몇 시간씩 이야기하고 토론하던 대학원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40대, 그리고 워킹맘, 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나면 가끔 내가 이방인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엄마들 사이에서도 약간은 비켜간 느낌이고, 애가 없이 일하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비슷한 공감대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가 정말 오랜만에 대학원 동기를 만나서 이야기하니 정말 좋았다. 누구에게도 공감받기 힘든 부분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만 아는 고충들, 대학원에서 함께 힘들게 공부했던 그 과정을 서로 낱낱이 알고 있으니,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느낌이었다. 서로 일하느라 바빠서 거의 일년에 한 두번 만날 수 있어도, 마치 어제 만난 것처럼 할 말이 많고 즐거웠다.
서로 격려하며 발전하는 모습을 지켜봐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다. 그 과정을 낱낱이 알고 있는 동료가 있기에, 더 힘을 낼 수 있다.
지나고보니 통대 2년은 나에게 '씨앗을 뿌리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좋은 교수님들과 동기들의 도움으로 밭을 잘 일구고 씨앗을 열심히 뿌렸던 2년. 그 중 어떤 씨앗에서 싹이 나고 무럭무럭 자라 열매를 맺을지는, 좀더 두고 봐야할 것이다.
대학원 시절의 경험을 통해 어떤 일을 하든 그 일을 대하는 나의 자세와 태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사실 모든 일이 그렇지 않은가. 육아도, 집안 살림도, 하다 못해 운동도, 일정 시간의 지지부진한 시간과 노력과 정성을 쏟아부어야 제대로 할 수 있다. 인간관계도 그렇다.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게, 천천히 시간을 들여 가까워지고, 오래 오래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관계가 나는 좋다.
내가 어떤 일을 제대로, '잘' 해낼 수 있으려면 강도 높은 노력과 지루한 연습의 시간, 집중의 시간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 시간들만이 내것이 된다. 설령 원하던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반드시 느끼는 부분들이 있고, 그 시간들이 작은 성취로 이어진다. 대학원 졸업장도, 대기업 경력도, 어떤 화려한 언변이나 인맥도 어떻게 보면 모래성같은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집중해서 쌓은 노력과 실력만큼은 나에게 남는다. 그것이 가장 멋진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