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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a Dec 31. 2021

하지 않고자 하는 의지

선택과 집중을 위한 '안 하기'

코로나로 모든 것을 집에서 '해야만' 하는 상황이 장기화되고, 일과 가정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나의 집중력과 에너지 관리에도 비상등이 켜지고 있다.


회사에 출퇴근할 때는 잘 몰랐었는데, 장소를 옮겨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과 분위기, 여건을 가진다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가정주부에게는 더 그렇다. 집에 있으면 자꾸 할일들이 눈에 밟혀서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다. 잠깐(!) 빨래만 돌리고 하지 뭐, 잠깐 청소기만 돌리고 할까, 잠깐 택배 박스만 뜯고.... 그러다 소중한 시간이 술술 흘러가버리고 만다.


그래서 나는 집에서도 출근할 내 '사무실'을 하나 마련했다. 거실에서 다른 '방'으로 옮기는 것 뿐이지만, 이곳에서는 일과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공들여 꾸몄다. 주의력이 뺏기는 일이 없어야 되니까, 이곳만큼은 깨끗하게 정리하고, 노트북과 모니터, 책 몇 권만 들여놓았다.


각 잡고 집중해서 일할 때는 항상 이 방에서 일하고, 그러다 조금 느슨하게(?) 일하고 싶을 때는 거실 쇼파에 앉아서 하기도 한다. 어쨌든 공간이 구분이 되니 효과는 좋다.


또한 되도록이면 '루틴' 지키려고 노력한다. 커피   사오고 나면 무조건 자리에 앉아, 집중이 되든 되지 않든 2시간 이상은 일하기, 매일   페이지 씩이라도 읽기,  3 운동하기, 바깥 공기 쐬기, 주말  하루는 온전히 가족과 함께 하기 등등..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며, 나는 인간이 생각보다 의지가 아주 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고 있다. 내 '의지'만 믿었다가는 이도 저도 아니게 되는 일들이 너무 많아졌다. 혼자서 집중하며 일을 잘 하다가도, 문자 온거 확인하다가 나도 모르게 잠깐 인터넷 하고 나면 30분이 지나가 있다. 잠깐 쉰다고 거실에 나왔다가, 갑자기 내일 먹을 반찬을 고민하며 또 핸드폰을 붙잡고 식재료를 고르고 있다.


손가락 사이로 술술 모래처럼 빠져나가는 시간이 너무 많고, 나는 이 시간들이 마치 지갑에서 지폐가 술술 빠져나가는 것처럼 아깝고 또 아깝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점점 더 믿지 않기로 했다. 더 이상 나의 변덕스러운 '의지력'에만 기대지 않고, 환경을 개선하기로 한 것이다. 의지로 무엇을 더 하려고 하지 말고, 무엇을 더 가까이 하지 않아야 하는지에 집중해야 한다.


나 스스로를 약간은 지루한 공백 상태로 두어야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할 에너지도 남겨둘 수 있다. 끊임없이 재미있는 것, 새로운 것, 자극적인 것을 자꾸 보고 듣고 사라고 권하는 시대에, 나 자신을 '의도적으로' 지루한 공백 상태에 두는 일은 정말이지 쉽지 않다.


일단 습관적으로 들여다보는 핸드폰을 멀리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앱으로 장볼 때, 필요한 생필품 살 때, 그리고 업무 관련 연락 확인할 때를 제외하고는 되도록이면 핸드폰을 아예 만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일단 핸드폰을 손에 쥐면, 시간이 낭비되고 만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두 번째는 약간의 '내려놓기' 목록을 정하는 일이다. 가정이 있고 아이가 있는 상태에서는, 싱글 때와 같이 온전히 나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내 일에만 쏟아부을 수는 없다. 이 자명한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나 역시 시간이 좀 걸렸던 것 같다.


나는 가정도 직장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규모만 작을 뿐이지 회사처럼 독립적인 하나의 '단체' 생활이다. 단, 이익 창출이 아닌 '사랑'으로 꾸려간다는 목적이 다를 뿐, 가정 역시 운영(!)에 필요한 경제 활동 및 팀원들의 단합이 필요하다.


회사마다 분위기가 다른 것처럼, 가정에도 고유의 문화와 전통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혼을 했으면서도 싱글 때와 같은 생활을 유지하겠다는 것은 정말 이기적인 생각이다. 회사에서 규칙을 따르지 않고 단합 대회에 참여하지 않는 직원을 원하지 않듯이, 가정 역시 그런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 가정을 꾸린 이상 이 가정을 화목하고 평화롭게 유지하기 위한 내 몫을 온전히 다 하고,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도와야 한다.


나도 약 6개월 간의 회사 생활 끝에, 일을 반 정도 줄이고 가정에 좀더 집중하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일의 끈을 놓지 않되, 수입은 약간 포기한 것이다. 그 대신 온전한 독립과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그동안 아이가 많이 성장한 덕택도 있었다. 이제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겠다 싶은 시점이 온 것이다.


약 3년 가까이 육아와 가사에 도움을 주신 부모님을 드디어 해방시켜 드리고, 나 역시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서로 미안하고 불편하던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지니 정말 좋다.


지금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부모님의 헌신적인 도움이 없었더라면 대학원 졸업도, 직장 생활 복귀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부모님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아이로 인한 결정이 가장 컸다. 규칙이 없으니 뜻대로 안되면 소리 소리 지르며 자주 떼쓰거나 울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마음이 아파 달래시기만 하니 훈육이 전혀 안되었고, 어쩔 수 없이 영상물에도 많이 노출되어 짜증이 많았던 아이였다. 하지만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낸 이후 많이 달라졌다. 가정 내에서 지켜야 할 규칙을 정하고, 매일 매일 똑같은 루틴으로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안정감을 느끼고 눈에 띄게 밝아진 것이다.


굳이 회사에 출근하지 않아도 일할 수 있는 직종이라는 점에 감사하고, 일이 끊기지 않고 계속 들어온다는 점에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렇기에 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


가족과 일, 공부라는 우선 순위 외에 거의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무언가를 '성취'할 시간과 에너지가 남는 것 같다. 나의 에너지 레벨과 체력이 그렇게 높지 않기도 하고, 나 역시 너무나 게으르고 나약한 인간이기에 더욱 그렇다.


요즘엔 외출할 때 거의 똑같은 옷을 내내 돌려 입는다. 여름엔 시원한 옷, 겨울엔 따뜻한 옷이면 된다. 뭘 입을까 생각하는데 시간을 쓰고 싶지 않다. 30대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드문 드문 흰머리가 많이 나기 시작했지만 그대로 두려고 한다. 남에게 어떻게 보일까, 라는 것이 내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친구 관계 역시 많이 내려놓았다. 최근 2-3년 간은 정말 너무 바쁘기도 했고, '인맥'이라는 것에 허무함을 많이 느껴서 억지로 인연을 이어갈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서울에서 벗어나 다른 도시에 이사온 것도 영향을 주었다. 왕복 4시간도 기꺼이 감수하고 나가서 만나고 싶은 사람 외에는,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는 것이다.


예전에 그토록 좋아하던 전시회, 영화 관람, 여행... 이런 것들에 더 이상 갈망을 느끼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다 넘칠만큼 해봐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정말 재밌는 일(=내 일과 육아)을 찾았기 때문이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나의 '안 하기' 목록은 점차 늘어간다. 사실 '못 하기'인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슬프거나 아쉽지는 않다. 내 인생의 꼭 '하기' 목록의 중요한 한 두가지를 위한 숨고르기, 그리고 꼭 필요한 준비 과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20대와 30대를 치열하게 보내기도 했고, 그동안 '해 봤다' 목록이 많기 때문에 안 하기 목록도 쓸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로 힘들었던 2021년을 마무리하며... 비록 모두가 힘든 시기이지만 내년에는 더 많은 일을 '안'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중요한 몇 가지를 위해 많은 '공백'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남은 에너지와 시간을, 자신이 꼭 하고 싶고 마음이 끌리는 일에 더 쏟을 수 있는 건강과 지혜를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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