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방학.
사촌 여동생 두 명이 우리 집에 며칠 머무를 때,
나는 동생들을 데리고 집 근처 냇가에 물놀이를 갔었다.
네 살쯤 되었던 막내동생이 졸려해서,
냇가 돌 중에 평평하고 예쁜 돌들을 골라 나란히 깔고,
그 위에 수건 하나를 덧대어 작은 돌침대를 만들어
동생을 재운 적이 있다.
그늘 하나 없는 냇가 한가운데.
그 땡볕 아래 울퉁불퉁 뜨끈한 돌.
불편할 텐데도 곤히 자는 동생.
햇빛을 손으로 가려주었던 기억.
앨범 속 사진 한 장이 그때의 온기를 되살렸다.
기온의 열기가 아닌,
마음의 온기.
졸졸 흐르던 물.
그 소리를 들으며 잠든, 말간 얼굴의 동생에게
손 그늘을 만들어주며 흐뭇하게 웃던 우리.
귀에 들어간 물을 털어내려
동글동글 하얀 조약돌 하나 주워
귀에 대고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 톡톡톡.
따뜻한 조약돌에 그려진
귓바퀴 모양의 물기는, 스미듯 금세 사라졌다.
말간 조약돌에 스미어 있던 햇빛.
물기마저 흡수해 버리는.
만져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온기.
그 따듯함은
차가움마저 끌어안아 버리는 힘이 있다.
너를 보았을 때,
나의 어린 시절 그때 그 기억이 스친 이유는 무엇일까.
반들반들 말간 조약돌 같은 아이.
나지막한 차분한 목소리로
가만히 집중케 하다가
꺄륵. 웃게 만드는.
나는,
조약돌이 웃는 모습을 보았다.
단단해 보이지만
그 속에 자신만의 짙은 온기를 품은,
차가워 보이지만
포용할 줄 아는 넉넉한 깊이를 가진 아이.
나는 안다.
처음부터 반들반들하지 않았음을.
얼마나 뾰족뾰족 모가 나 있었는지를.
지금의 동글동글 말간 모습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
얼마나 많은 고통 앞에 자신을 굴려댔을까.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산다는 건
매일매일 구르며 깎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단단해지기만 해선 안되고,
부정을 긍정으로 바꿀 줄도,
주변을 꺄륵꺄륵 밝게 빛낼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걸
너를 보며 배웠다.
시냇가에 자리 잡은 조약돌처럼
손이 시릴 때, 마음이 시릴 때
가만히 감싸 쥐면
보이지 않는 곳까지 전해지는 따듯함.
자신 안에 깊고 짙은 온기를 가진 조약돌 같은 아이.
너는 그런 사람이다.
지금도 그 과정을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조금만 더, 힘을 내 견뎌주길 바란다.
얼마나 예쁜 조약돌이 되려 하는지,
지금의 힘듦으론 알 수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