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결혼식에 가고 싶었습니다.

by 류온


화가 잔뜩 나있던 눈동자가

사르르 녹던 그 순간.


그때의 그 눈동자가 잊히지 않아요.


눈빛만으로도 사람의 감정을 읽을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나는 당신을 자주 화나게 했죠.

사랑을 받아보지도, 해보지도 않았던 철없던 나와 당신.

자주 싸웠고, 서로를 할퀴는 말을 자주 했었죠.

어쩌면 내가 일방적으로 그런 말을 했었는지도 모르겠네요.


나는 싸우고 나면

온몸에, 온 마음에 힘이 빠져 버려서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어요.

몇 주전에 했던 약속도 다 지키기 싫어졌는데..

당신은,

싸웠더라도 약속대로 나를 만나러

그 먼 길을 오는 사람이었죠.


그땐 그게 이해되지 않았어요.

서로 감정이 상한 상태에서

왜 그 약속을 지켜야 하는지를.


하지만 지금은 알아요.

그건 사랑이었고, 믿음이었죠.



당신이 내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 사이엔

사랑이 없다고 생각했었나 봐요.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은 감정으로 살던 어린 나.

불안정했던 내 모습까지 품어주던 당신.

나란 존재,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고 있었군요.


나의 얕은 사랑과 얕은 믿음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당신의 그 마음.


너무 늦게 알았어요.

철없던 내 곁에 아주 오래 머물러줬던 당신.


내가 좀 더 성숙했을 때 당신을 만났더라면,

쿵짝이 잘 맞는 우리는

친구처럼 연인처럼 오래도록 잘 지냈을 텐데.. 말이죠.


몇 번을 헤어졌는지

몇 번을 다시 만났는지 셀 수도 없는데,

제멋대로인 나를

오래 기다리고

오래 지켜줬던

나의 키다리 아저씨.


나는 당신이

오래 아파한단 걸 알면서도 모른척했어요.

당신에게로 돌아가지 않았어요.


십 년쯤 흘렀을 때였을까요.

당신의 결혼소식을 카톡 프로필사진으로 봤을 때,

진심으로 행복을 빌어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나한테 그 소식을 직접 전해주길 바랬어요.

나는 왜 그런 마음이었을까요.


당신이 결혼 행진을 할 때,

그 옆에 서서 박수 쳐주고 싶은 마음.

수많은 하객 중에

나의 박수가 가장 진심일 거란 확신.

그 마음은..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내게 사랑을 오래도록 나눠준 사람에게

보내는 고마움이었을까요.


너무 늦게 알아차린 미련이었을까요.


나한테서 받은 상처를

안고 산다는 걸 잘 알고 있는데,

모른척하며 살아버린 세월이 너무 길어서..

속죄의 마음이었을까요.




나에게 큰 불행이 닥칠 때마다

내가 무너져 내릴 때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당신이에요.

찾아가 울고 싶을 만큼..


당신은 내 존재를 처음 알아봐 준 사람이었죠.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믿어주고, 밀어내지 않을 거란 이상한 믿음.

그 마음은 어디서 생겨난 걸까요.

그 마음은 왜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걸까요.



당신의 마음을 가벼이 여긴 죄.

당신의 상처를 모른 척 한 죄.

그 벌.

지금도 달게 받고 있어요.


그럼에도

나는 당신의 행복을 빌어요.



한 번도 전하지 못한 말.


오랫동안 고마웠어요.

그리고.. 너무 미안했어요.





이 글은

당신에게 보내지 않으려고 쓴, 내 마음이에요.


당신이 알고 나면,

그 오랜 시간 상처를 안고 지낸

당신의 세월들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될까 봐.


나의 진짜 마음을 알게 된 당신이

스치는 지난 날들 앞에서.. 오열할 것만 같아서.


나를 더 원망하게 될까봐.. 무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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