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처음 봤을 때,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너한테서 후광이 비치더라."
언젠가 언니가 나의 첫인상에 대해 해준 말이다.
책모임에서 처음 만난 한 살 많은 언니.
내 첫 기억의 언니는,
카페를 나와서 저녁 먹으러 가던 어두운 골목길,
간판불빛 사이사이
보였다가 안보였다가 하던 언니의 뒷모습.
씩씩한 걸음도, 무거운 걸음도 아닌.
그 걸음은 뭐랄까..
뭔가에 취해 걷고 싶은 걸음이랄까.
갈 곳을 정하지 못한 걸음처럼 느껴졌다.
그게 내게 남아있는 언니의 첫인상이었다.
같은 날의 기억인데,
서로의 첫인상은 이렇게도 달랐다.
우리는 어쩌다 친해졌다.
친구처럼, 자매처럼.
조곤조곤 조용조용 말하는 언니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언니 쪽으로 가까이 더 가까이
귀 기울이려던 내 몸 때문이었을까.
서로의 마음을 터놓고,
서로를 응원해 주는 사이가 되었다.
"너는 운동도 좋아하고, 책도 좋아하잖아.
역동적인 것과 정적인 것을 동시에 좋아하는
사람은 드문데,
너는 감성과 이성, 둘 다 가진 사람 같아"
수다를 떨다가
불쑥 내게 던진 언니의 말.
내 가슴에 깊이 박힌 그 말.
언니는 조용하고 섬세했다.
가슴속에 뜨거운 감정, 풍부한 감성을 감춘 사람.
친해져도 비밀이 많아 보였던 언니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기도 했다.
그런 모습은 자유로운 영혼의 특징일까.
같이 참석한 모임이 끝나면,
급하게 손만 흔들고, 말도 없이 어디론가 가버리는 언니.
친한 나한테는 미리 얘기해줄 법도 한데..
홀연히 자주 사라지는, 아침안개 같은 그런 사람.
나는 그게 섭섭하기도 했다.
언니는 어떤 생각, 어떤 감정에 빠져있었던 걸까.
언니는 감정이 밀려오면
다른 건 신경 쓰지 못하고, 감정에 충실한 사람이다.
한번 마음을 준 사람에게는,
쉬이 마음을 걷어 들이지 못했다.
자신의 마음이 한 톨도 남지 않을 때까지
다 줘버리는 사람.
그 감정의 너울에 몸을 맡겨버리는 사람.
너울과 함께 출렁출렁.
끝이 어딘지 몰라, 그냥 물아일체.
언니,
이제 그만 나와.
내가 할 수 있는 건
몸을 맡길 작은 튜브하나 던져주는 것뿐.
하지만,
잡지 않는 언니.
그 너울이 잠잠해지길,
끝나길 기다리는 언니와 나.
언니는 감정에 지배당해 버리는 사람 같지만,
자신의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오롯이 느끼고
자신의 감정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감정에 잠식당해 본 사람은
보통 그다음엔 다시 당하지 않기 마련인데,
언니는 매번 당했다.
상처받을지언정
밀려드는 감정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나와는 참으로 다른 면이 많은 언니.
우리는 불과 물 같은 사이.
그래서
언니는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가진 내가 부럽다고 했었구나.
이런 섬세한 감각을 가진 언니는
음악, 그림, 책, 사진 같은 예술분야에 일가견이 있었다.
나는 언니가
그런 감각을 살리는 분야의 일을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언니의 직업은
공무원.
의외였다.
내가 아는 언니와
직업의 괴리는 너무 커 보였다.
본인이 느끼는 괴리는 더 컸으리라.
그 괴리 속에서
매일 출근하며 살아가는 언니.
나는 언니의 직업을 응원했지만, 안타까워했다.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섬세한 감각을 가진 사람이
매일매일 자신을 가두는 그곳으로 걸어 들어갔고,
꺾인 날개를 부둥켜안고 앉아서,
민원처리를 하고 있는 모습이
가슴 아팠다.
그 현실은
언니의 섬세함과 예민함을 앞세워
더 큰 강도의 스트레스로 되돌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찾아온
갑상선 암.
나는 너무 놀랐지만,
언니는 담담해 보였다.
목소리도 말투도 이성적이었다.
수술하기로 했다고,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술을 받았고,
몇 달 동안 언니는
가녀린 목에 스카프를 두르고 다녔다.
팔랑팔랑 바람에 나부끼던,
언니목에 대롱대롱 매달린 스카프.
자유롭게 날아가고 싶은데,
갈 수 없는, 예쁘게 묶인 스카프.
목을 보호하고
상처를 덮어주던
언니의 스카프.
그런데, 정작 언니 자신은
무엇을 위해 거기 묶여있는 건가.
무엇을 보호하고, 무엇을 덮어주기 위한 것인가.
가족을 보호하고,
자신의 꿈을 덮어두기 위한 것일까..
언니는 스카프를 예쁘게 묶곤,
무얼 향해 어디로 걷고 있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