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보내는 어른.

by 류온


생애 첫 임신.

처음 아기의 심장 소릴 들었을 때

그 기분은 어떠한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

처음 느껴본 소리와 진동.

지금도 생생하다.


세상의 모든 소리는 사라지고

가슴을 둥둥 울리던

내 호흡을 멈추게 했던

빠른 리듬의 그 소리.

두쿵두쿵.


늦은 나이에,

내가 꼭 지켜야 하는 게 생겼다.

날 위해서가 아닌, 아기를 위해

회사 소장님께 임산부 단축근무를 요청했다.


내가 첫 사례였지만,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명확한 근거가 있기에 요구했다.

소장님은 단번에 대답하지 않았다.

근거를 요구했고,

그에 합당, 정당하다는 판단이 섰을 때만

움직이는 분이었다.


1일 2시간 단축근무는 내부결재를 통해 승인되었다.


나는 소장님께 말하기 전에,

내가 요구하는 것에 대한 근거와

그것을 시행했을 때 생길 수 있는 변수에 대한

대응책까지 생각하며 만발의 준비를 해갔다.


소장님은 나의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다.


고집과 강단 있고,

독불장군 같아 보이지만

명확한 기준 앞에 움직이는 FM적 유연함을 가진,

느낌이 아닌 사실.

팩트가 중요한 이성적 현실주의자.


나와 많은 부분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결을 가진 분이다.


나는,

다른 직원들보다 소장님을 어려워하지 않았다.

겉보기엔.


하지만,

나는 수많은 생각과 망설임,

수십 번의 다짐 끝에

소장님 앞으로 가서 말하는 것이다.

당당하고 담담한 척.


그 많은 생각 속에는,

소장님의 반응이 어떨지도 그려졌다.

그래서 나는 대응할 수 있었다.


어쩌면,

나는 소장님을 이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현재의 복지기관이 존폐 위기에 놓였을 때,

입사한 지 몇 년 되지 않은

서른 남짓의 소장님은

그 기관을 도맡아 살려냈다.


그런 책임감과 추진력,

그런 큰 결정을 내리는 강단과 카리스마는 어디서 나왔을까.

그 강직함, 그 카리스마를 닮고 싶었다.

나는 그분을 존경했다.

동시에,

원망도 했다.


임산부 검진휴가.

그것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소장님은 나의 예상을 빗나갔다.


그래서 평일에 병원 검진을 가지 못하고,

내 담당의사가 없는 토요일에

병원을 가게 되었다.


그리고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게 되었다.


"아기의 심장이 뛰지 않습니다."


내 담당의가 아니라서

잘못 진단했을 거란 생각만이 날 휘감아

믿지 않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뇌가 정지되었고,

내 심장도 멈추었다.


계류유산.

처음 듣는 말.

이해되지 않고 받아들여지지도 않은 채,

수술을 받았다.


아기는 어떤 모습으로

어디에 담겨 어디로 갔을까.


아기와 나의 심장은 멈추었는데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의사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 했다.


하지만,

나의 원망은 소장님에게 향했다.


소장님이 내가 원하는 날에

검진휴가만 줬어도,

그날 내가 병원만 갔어도,

아이가 이렇게 되진 않았을 것이다.


소장이기 전에

임신과 출산을 겪어 본 사람,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사람이.

왜 내 요청을 거절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이해하기도 싫었다.


휴가를 내고 일주일 쉬는 내내,

소장님을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회사로 복귀하는 날도

소장님을 마주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소장님 추천으로 표창장을 받게 된 나는,

표창장 수여식에 참석해야 했다.

정말 가기 싫었다.


표창장이 무어라고

나의 이 괴로움을 뒤로하고 그 자리에 가야 하는가.


하지만,

나는 그곳에 서서 표창장을 받고 있었다.


그렇게 원망을 품은 채,

또 다른 한 해가 밝아오고 있었다.


퇴사 후에도

나는 내가 소장님을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살다 보니 알게 되었다.


나는 소장님을 오래 동경해 왔던 것이다.


소장님을 보며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단 다짐을 했고,

때론,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며

마음을 다 잡았고,

나를 깨어있게 했다.


내 삶의 거울이자 기준이 되어준 어른.

원망하면서도 갈망했던 존재.

갈망했기에 원망할 수 있었던 존재.


소장님 젊은 나이에 내린, 큰 결정.

그 선택과 추진력.

20년 동안 한 기관을 지켜온 책임감을 보며,

최고의 기관으로 칭송받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매일 성장과 혁신을 꾀하는 노력, 그 고군분투.


'어른이라면 저래야지.

나였다면, 저렇게 할 수 있었을까..'


소장님은 나를 생각하게 했고,

나를 성장하게 만든 자극제이자

기폭제 같은 어른이었다.


고통이 따르거나, 미움받을지라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그 길을 당당히 걸어가는 어른.


그리고,

나의 강점과 장점을 알아봐 주셨던 분.

뒤에서, 밖에서,

내가 듣지 않는 곳에서

나를 인정해 주는 말을 해주셨던 분.


내가 나를 좀 더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분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소장님에 대한 믿음이 아주 컸던 것 같다.


기관 내에선

내가 넘어야 할 산 같았지만,

밖에선 누구보다 든든한 우리 편.

그래서 기대가 컸다.


나의 기대는 컸고,

실망도 원망도 컸지만,

나도 모르게

나는 기대고 있었다.

소장님이란 큰 나무에.

마음 둘 곳 없던 나의 마음을. 오래도록.


원망이란 큰 글자 뒤에 숨어있던

동경을, 존경을

이제야 찾아냈다.



어쩌면,
소장님은 어린 시절 내게
진정으로 필요했던 어른이었다.

강단 있고, 강인한 카리스마를 지닌 그런 어른.


어리고 무력했던 내 앞에 서서
온갖 비바람을 막아줄 그런 어른.

훗날 다가올 후폭풍 따위는 생각지 않고,
오직 나의 SOS에 응답해 줄 어른 말이다.


그래서 나는,
따듯함보다 강인함을 더 갈망했나 보다.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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