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그 이상의 곳.
하몬드에 대해, 한 번쯤은 쓰고 싶었다.
아기띠에 안겨 넘던 문턱.
유모차로 넘던 문턱.
엄마 손잡고 아장아장 넘던 문턱.
혼자 걸어서 넘던 문턱.
어린이집 가방 메고 뛰어넘던 문턱.
아이는 하몬드의 문턱을 넘으며 자랐다.
단골손님은 물론 한번 본 사람을 기억하는 아이.
손님들이 타고 온 차도 다 기억하는 아이.
아이는 창가에 서서 보이는 사람마다,
자동차마다, 헬멧 아찌마다
그렇게도 손을 흔들어댔다.
아이는 하몬드의 터줏대감, 마스코트였다.
아이로 인해 하몬드는 사랑방이 되어 웃음꽃을 피웠다.
아이 덕분에 그곳에서는
나도 낯선 사람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자주 오는 강아지들까지 기억했다.
조심스럽게 털을 만져보며 교감하는 듯했고,
강아지들도 아이를 알아보는지
가만히 아이의 손길을 느껴주었다.
아몽이, 몽길이.. 그리고 오성이.
골든리트리버 13살, 오성이.
그곳의 또 다른 터줏대감.
주차장 옆에 있는 오성이의 집.
오갈 때마다 오성이한테 인사를 했다.
"오성아 안녕~ 우리 왔어."
"오성아 내일 또 봐~"
그렇게 자주, 아이와 나는 인사를 했다.
오성이는 나이가 많아서 걷는 게 불편했지만,
풀어놓으면 주차장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아이가 오성이를 보고 자란 지 2년 즈음 됐을까.
5월, 비가 온 다음 날.
늘 그랬듯
주차해 놓고 오성이 집 앞으로 갔다.
"오성아~ 오성아~"
불러도 가만히 엎드린 오성이는
눈을 감은 채, 온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비에 젖어 다 마르지 않은 털.
축 처져 널브러진 몸.
아이와 내가 여러 번 부르니
무거운 눈꺼풀을 살짝 움직이더니,
우리를 봤는지 미처 다 뜨지도 못한 눈을..
이내 다시 감아버렸다.
아이는 가까이 가서,
"오성이 아파? 오성아 힘내~"
두 돌 된 아이의 눈에도 많이 아파 보였나 보다.
오성이는 밤새 비를 맞아 저체온증이 왔었다고 했다.
그렇게 병원을 갔던 오성이는..
다시는 볼 수 없었다.
텅 빈 오성이 집을 보며 아이는
엄마 오성이 어디 갔어? 라고 물었지만,
나도 그땐 차마 오성이를 물어볼 수 없었다.
돌아올 그 대답을 회피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몇 주 후 겨우 물어보곤, 아이에게도 말해주었다.
"오성이 아파서 하늘나라 갔대.."
- "하늘나라가 어디야?"
"응. 많이 아파서, 아프지 않게 쉬러 가는 곳.
저기 봐, 저 하얀 구름 위에 오성이가 있는 거야."
내 손끝을 따라 하늘을 올려다보던 아이.
그 뒤로도 아이는 오성이가 없는 집을 보며,
"엄마 오성이 하늘나라 갔지?" 종종 물어보다가,
오성이 집이 사라지고,
흔적들이 사라지면서
아이의 물음들도 점점 사라져 갔다.
두 돌 아이도, 이별을 받아들인 걸까.
아니면, 엄마가 가리키던 손끝.
보이지도 닿지도 않는 그곳에서
이젠 아프지 않게 잘 쉬고 있다고 믿은 걸까.
하몬드 이모와 삼촌.
아이를 번쩍 안아 올려 비행기를 태워주고,
좋아하는 자동차를 같이 만들며 놀아주고,
아이만을 위한 쿠키도 만들어주었다.
아이가 혼자 해내는 일에 같이 박수 쳐주고,
아프면 같이 걱정해 주며
아이가 자라는 시간을 함께 해주었다.
생일선물, 어린이날 선물, 여행선물..
그리고 우리가 떠나던 12월,
미리 크리스마스 선물까지 챙겨주었다.
낯선 타지에서 마음을 두지 못했던 나.
집 근처라 자주 가던 그 카페는
아이와 내겐 사랑 가득한 사랑방,
유일한 위로의 공간이었다.
정 붙이지 못한 타지 생활을 접고,
그곳을 떠날 때
나는 모든 걸 과감히 정리하고 잊을 수 있었다.
하몬드.
그곳만 빼고.
이삿짐 차를 보내고 들른 하몬드.
부산 가며 먹으라며 챙겨준 아이 이름 쿠키,
눈물 훔치며 손 흔들던 이모,
떠나는 우리 차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삼촌.
그 마음만은 데려왔다.
이곳 부산으로.
*글 속 카페명은(하몬드) 실제와 다릅니다.